입력 | 2020-10-01 15:25 수정 | 2020-10-01 15:41
추석 이전부터 주식 투자자 사이에서는 정부가 새로운 안부 인사를 강요한다며 술렁였습니다. 그 인사는 이런 겁니다. ″부모님, 삼성전자 주식 얼마나 가지고 계세요?″ 정말 이런 인사가 필요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볍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투자자들은 훨씬 진지했습니다. 급기야 추석을 앞두고 청와대 게시판에 10만 명이 넘는 대형 청원으로 발전했습니다.
청원의 내용이 무엇이냐고요? 이런 불편한 안부 인사를 강제하는 소득세법의 폐지, 변경을 요구하는 겁니다. 올해 연말(12월31일) 기준으로, 3억 원 이상을 가지고 있는 ′대주주′들은 내년 4월1일 이후 주식을 팔 때, 전에는 내지 않았던 양도세를 내야 한다는 조항이 문제의 조항입니다. 왜 그런지 몇 가지 따져보겠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3천만 원 투자하는 개미′도 불만인 이유는?</strong>
3억 원 이상의 주식 보유자가 몇 명이나 될까요? 시가총액 수백조인 삼성전자라 하더라도 3억 원 이상을 가진 개인 주주의 숫자는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개미 투자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이 문제가 몇 년째 연말 주식시장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기억 때문입니다. 연말을 앞두고 과세 대상에서 빠지기 위해 한 종목에 3억 원 이상(작년에는 10억 원) 주식을 가진 큰 손들이 주식을 팔고, 이 때문에 주식시장이 하락했다는 겁니다. 내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남의 집 일로 방관했다가, 내가 투자한 주식에서 그보다 더 큰 손해를 봤던 쓰라린 경험이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주식에 이런 주주가 있는지, 얼마나 되는지 알 길도 없습니다. 세법에서는 ′대주주′라는 어마어마한 호칭을 쓰지만, 3억 원 정도 지분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는 주식 보유를 신고할 필요가 없는 소액주주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연말에 갑자기 주가가 떨어지는 기업들 가운데는, ″큰손이 과세를 피하려 주식을 팔았다″는 소문이 퍼지고 그 소문에 주가가 한 번 더 떨어지는 일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부모님 삼성전자 갖고 계세요?″…3억 원 보유하면 ′대주주′?</strong>
또 한가지 문제는 내가 대주주인지 아닌지,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내 주식 계좌만 열어 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 배우자뿐 아니라, 장인 장모(또는 시부모) 계좌도 열어봐야 합니다. 과세 대상이 되는 주식의 ′보유자′ 기준이 ′나′뿐이 아니라 나의 ′특수관계인′이 가진 주식까지 모두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추석 때 모여 앉아 주식 계좌를 열어봐야 한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거죠. 혹시라도 다른 가족 몰래 주식을 거액으로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국세청에서 탈세 통보를 받고 들통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일어날 수 있는 겁니다.
전에 없었던 조항이 올해 세법에 새로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2017년 개정된 법안에 들어 있던 내용인데, 처음에는 (한 기업에) 25억 원 이상의 주식을 가진 사람들만 대상이었다가 매년 대상이 넓어진 것입니다. 처음에도 새 세법에 대한 반발은 있었지만, 연말마다 주식시장이 홍역을 치르던 차에 대상이 ′3억 원 이상′으로 넓어지면서 반발의 정도가 커진 분위기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지키는 묘안은?</strong>
이 모든 난점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과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주식시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들어 과세를 하지 않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거나, ″3억 원 이상 보유한 투자자의 숫자가 크지 않다″, 또 ″연말에 주식을 매도해서 피해갈 수 있는 방법도 많다″는 등의 이유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문제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에 한발 다가간 조항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입장도 단호합니다. 이미 3년 전부터 예고했던 일이라 때문에, 반발이 크다고 시행을 앞두고 갑자기 법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3억 원 이상 보유 대주주에 대한 양도세 과세 시행을 결정한 2017년 법 개정 이후의 세법의 변화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주식 매매 차익에 대해서는 양도세를 물지 않는 ′비과세′가 ′기본′이었습니다. 비과세 혜택을 고액의 자산가들까지 누리는 것이 옳으냐는 문제제기 때문에, 예외적인 경우로 과세 대상을 정한 것이었습니다. 시작은 25억 원 이상 보유자였고, 올 연말 3억 원 보유자까지로 대상자가 차차 확대된 것이죠.
그런데 정부는 올해 세법 개정을 통해 2023년부터 5천만 원 이상의 주식 양도소득(등)을 올리는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기로 정했습니다. 주식 매매 차익에 양도세를 물리는 원칙이 ′기본′으로 바뀐 상황에서 주식 보유 규모를 가지고 과세 대상을 정하는 것이 맞을지, 한 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새로운 세법 개정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없을 때 만들어진 보완책의 필요성은 그것을 만들었을 때보다 떨어진 것은 분명합니다.
투자자들의 반발 강도와는 무관하게, 앞으로 2년도 채 적용되지 않을 규정을 강행하는 것의 손익 계산서도 따져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청원을 했던 그렇지 않든, 추석을 맞는 대부분 개미 투자자의 속내는 이럴 겁니다.
″세금을 내도 좋으니, 주식 3억 원어치 가져 봤으면 좋겠다.″
남은 추석 연휴 잘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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