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조국현
1980년 5월 17일, 대학생 문재인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체포돼 청량리경찰서에 구금됐습니다.
그런데 그 유치장 안에서 광주의 참상을 오히려 더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를 조사하던 경찰관들이 내부 정보망에 올라오는 실시간 상황을 낱낱이 전해줬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5·18에 대한 단상들을 광주MBC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을 통해 상세히 밝혔습니다.
키워드는 크게 5가지로 정리됩니다.
′죄책감′, ′진상규명′, ′헌법′, ′개탄′, 그리고 ′노무현′입니다.
<b style=″font-family:none;″>죄책감: ″그때 서울역에서 회군하지 않았더라면..″</b>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광장, 계엄 해제와 민주화를 촉구하는 대학생 20만명이 운집했습니다.
집회열기가 절정에 다다른 가운데, 군이 투입될 수 있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총학생회장들이 격한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투쟁을 이어가자는 쪽과, 해산하자는 쪽으로 나뉜 겁니다.
당시 경희대 복학생 대표였던 문재인은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군이 투입되더라도 사즉생의 각오로 맞서야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또한 국제사회가 주시하는 상황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대학생들을 가혹하게 진압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혈사태를 우려한 해산파의 주장이 결국 결론으로 채택됐습니다.
당시 심재철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서울역 회군′을 공식 발표하죠. 문 대통령은 해당 결정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학생들의 대대적 집회로 군 투입의 빌미를 줬는데, 결정적 순간에 퇴각을 결정하면서 결과적으로 광주 시민들이 외롭게 계엄군과 맞서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진상규명: ″발포의 최종 책임자 누구인가?″ </b>
문 대통령은 5.18 이후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의문이 너무 많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발포′를 누가 지시했는지, 법적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학살당한 분들의 시신을 찾고, 헬기 사격까지 자행한 경위를 밝히고, 진실 은폐와 왜곡의 실상도 완전히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처벌의 차원을 넘어, 진실의 토대 위에서 진정한 화해와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입니다.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화해와 통합이 이뤄지는 것이며, 그 출발은 진실 규명″이라는 것입니다.
이같은 문 대통령의 인식은 국가폭력 문제에 있어서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4·3 등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확고하게 같은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헌법: ″언젠가 또 개헌이 논의가 된다면..″ </b>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4·19만으로는 민주화운동 이념의 계승을 말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시기 순서로 보면 부마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 그것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이 6월항쟁이었고 미완된 부분이 촛불혁명으로 표출돼 지금의 정부에 이르렀다″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5·18과 6월항쟁까지 헌법에 담아내야 대한민국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고 국민적 통합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2년 전 문 대통령은 개헌안 발의를 통해 이를 추진한 바 있습니다.
당시 개헌안을 보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돼 있습니다.
이 개헌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죠. 문 대통령은 언젠가 국회 차원에서 개헌이 다시 논의가 된다면, 반드시 이 취지가 되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개탄: ″역사의 평가 끝났다. 그런데도..″</b>
문 대통령은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고 했습니다.
해방 이후 현대사를 보면 국가 발전의 과정에서 독재가 있었고, 그 독재에 맞서 항쟁하다 희생한 민주화운동이 있었고, 그런 운동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켰고, 그와 함께 경제 발전도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발언들이 있고, 일부 정치권에서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에 대해 문 대통령은 큰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5·18 폄훼는 민주주의 파괴 행위로 단호한 대응해야 하며, 이 고리를 끊어내야 통합적인 정치로 발전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또 보수정부 시절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임을 위한 행진곡′조차 제창하지 못하게 해 유족들이 따로 기념행사를 갖는 모습에 분노와 아쉬움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5.18을 광주만의 행사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행사로 승화시키겠다는 약속을 실천해 뿌듯하다″고 말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노무현: ″광주의 주역은 아니지만 광주를 확장한 분″</b>
′5.18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뜻밖에도 ″노무현 변호사″였습니다.
문 대통령은 ″80년 이후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알리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87년 5월, 참상이 담긴 한 시간 분량의 이른바 ′광주 비디오′를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상영했는데 문 대통령 자신과 노무현 변호사가 함께 주도했다는 게 문 대통령의 설명입니다.
문 대통령은 ″그 영상이 부산 지역 6월항쟁의 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일들을 함께 했던 그 노무현 변호사를, 광주 항쟁의 주역은 아니지만, 광주를 확장한 분으로서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