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나세웅

[외통방통] 이번에도 새우등? 미중 갈등 속 한국의 해법은?

입력 | 2020-05-28 13:16   수정 | 2020-05-28 13:54
미중 갈등이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진원지 공방에서 시작된 긴장 관계는 홍콩보안법 표결이 임박하면서 나날이 더 팽팽해지고 있습니다.

오가는 말이 거칠어지더니 곧 주먹질도 벌어질 분위깁니다.

미중 갈등, 말싸움에서 주먹질로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직접 제정하겠다고 나선데 대해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악랄한 독재 정권″이라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또라이″, ″얼간이″란 원색적인 표현까지 썼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비난하는 표면적 이유는 이렇습니다.

홍콩보안법 제정은 영국이 홍콩을 반환할 때 중국이 약속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위란 겁니다. 홍콩식 자본주의는 사라지고 중국식 사회주의만 남을거란 주장입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선거때문이란 분석입니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 정부로선 중국때리기 만한 호재가 없습니다.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미국인 66%가 중국에 대해 비호감을 표시했는데, 2005년 중국에 대한 호감도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부정적인 결과입니다.

공화당 지지자 중에선 72%, 민주당 지지자 중에선 62%가 중국에 부정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지금 미국에서 ′반중′은 정치 성향과 상관없는 대세라는 겁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면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이용해 홍콩 통제를 관철시키는게 이득일 수 있습니다.
′고래 싸움′에 떠는 중견국들

곤혹스러운 것은 나머지 중견국들입니다. 영국·캐나다 등 영연방 국가들이 즉각 중국을 비판하고 나섰지만 아직까진 침묵하는 국가들이 많습니다. 늘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일본도 공개적인 비난을 삼갔습니다.

한국 역시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홍콩보안법 표결을 하루 앞두고 미국은 동맹국 외교관계자들을 불러 법안의 문제점을 설명했습니다. 물론 한국 관계자도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중국도 여론전에 나섰습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24일 중국 관영 CCTV와의 화상인터뷰에서 ″한국은 전통적으로 핵심 사안에 대해 입장을 존중해 온 우호국″이라며 ″홍콩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이 이해와 지지를 보낼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냥 흘려듣긴 어려운 은근한 압박이 느껴집니다.

지난 26일 주한 중국대사관도 ″지난 주말 홍콩보안법 진행 상황을 외교 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를 포함한 각계와 공유했다″며 사실상 한국 정부에 지지를 요청했음을 공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단계마다 미중이 팃포탯(tit for tat 맞대응)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홍콩 자치정부가 움직였던 작년과 달리 이번엔 베이징이 직접 나섰다. 천안문 사태 기념일(6월 4일)을 앞두고 더 이상 밀릴 수 없다고 본 것″이라고 사안의 민감성을 설명했습니다.
미국 편들다 ′보복 폭탄′맞은 호주…남일 아닐 수 있다

최근 호주의 사례를 보면, 한국이 왜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호주 역시 한국처럼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 미국을, 가장 큰 무역 파트너로 중국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코로나19의 기원을 국제적으로 조사하는 미국의 제안을 지지한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중국은 곧바로 무역보복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지난 12일 4개 호주 육가공 업체의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어 일주일 뒤엔 앞으로 5년간 호주산 보리에 약 8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작 코로나19의 근원을 조사하기 위한 WHO 결의안은 정치적 타협 끝에 중국을 포함한 전 회원국의 동의로 채택됐습니다.

결과적으로 호주는 괜히 미국편을 들겠다고 앞장섰다가 중국에 두들겨 맞은 본보기가 된 셈입니다.
동맹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그렇다고 미국의 보호를 받게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난 주말,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호주 정부에 폭탄을 던집니다.

지방 정부인 빅토리아 주정부가 중국의 통신 사업에 참여하기로 한 것을 문제 삼으며, 호주·영국 등 5개국 정보기관 네트워크인 ′파이브아이즈′에서 호주를 ′끊어버릴 수 있다″고 한 겁니다.

<i>″민간 통신망과 국방·정보당국의 안보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우리는 그냥 끊어버릴 것(simply disconnet). 분리시킬 것(simply separate)이다.″</i>

호주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호주 정부는 ″중국의 통신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호주 내부에선 미국이 우리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불만도 터져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언제 이런 폭탄이 떨어질 지 모릅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중국의 교역 비중이 33%에 달한다. 호주처럼 보복을 당하면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미중 갈등′ 언급도 조심…′낀 나라′ 한국

이번 미중 갈등은 장기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중이 ′신냉전′을 시작했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최근 미국 정부는 한국에 ′반중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크워크(EPN) 동참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PN은 세계 경제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중심의 경제연합체를 만들자는 구상입니다.

외교부 내에서는 의견이 팽팽합니다. ″미국이 중국과 완전히 결별해 별도 공급망을 만든다고 하면 한국에게 손해는 아니″라는 입장이 있고, ″미국 주도의 공급망이 완성될 때까지 중국의 ′때리기′를 한국 경제가 버틸 수 있겠냐″는 우려가 맞서고 있습니다.

오늘 외교전략조정회의…과연 결론은?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오늘 ′외교전략조정회의′를 엽니다. 오늘 회의에서는 그간의 논의를 종합하고 코로나 19 이후 상황을 반영해 전략을 조정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외교부가 회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공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말로 포장해도 ″′한국은 이 이슈에서 누구 편이구나′가 드러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미중 갈등을 다루는 회의 이름에 ′미중′이란 단어를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것이 한국의 처지입니다.

더 이상 관대하지 않은 동맹과 힘 자랑 하는 이웃 사이에서, 한국이 묘수를 찾아낼 수 있을지, 한국의 외교역량이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