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6-02 11:26 수정 | 2020-06-02 12:16
사회적 약자 먼저?…영 낯선 모습의 통합당
21대 국회 당론 1호 법안으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탈출 민생지원 패키지법′이 개원 첫 날인 어제 제출됐습니다.
이 패키지법에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 고등교육법,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 등 8개 법 개정안이 포함돼 있습니다.
법안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업에서 뛰고 있는 기초 생산, 서비스 산업 주체를 위한 대책이 마련됐습니다.
′의료기관이나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에 대해선 코로나19 방역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사업이나 영업 등을 중단해 손실이 생긴 경우 그 피해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긴급 지원정책이 담겼습니다.
학생들을 위한 지원책도 들어있습니다.
대학생들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대학 등록금 환불 규정이 마련됐고, 무상급식 지원 중단에 따른 취약계층에 푸드 쿠폰을 계속 지원할 수 있는 방안 등이 포함됐습니다.
맞벌이 부부 등 육아를 걱정하는 근로자를 위한 법안도 있습니다.
유치원 휴원 및 학교 휴교 등으로 아이 돌봄이 필요한 근로자를 위한 아이 돌봄 활성화 제도가 강화됐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갑자기 일을 못 하게 됐거나 물건을 구매하지 못하게 되는 등 불가피한 계약 파기로 인한 과도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시키는 약관 조항의 무효, 급격한 판매 부진이나 수입 감소로 임차건물에 관한 차임·보증금에 대한 감액청구권 보장 등 다양한 일상생활과 직결된 경제 관련 법률에 대한 보완 지원책들이 포함됐습니다.
이런 서민·사회적 약자 중심의 법안을 제출한 정당은 다름아닌 보수 정당의 적자 ′미래통합당′입니다.
물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은 모든 정당의 일이지만, ′사회적 약지와 동행′을 가장 먼저 내건 미래통합당은 그리 낯익은 모습은 아닙니다.
′보수′ 묻고 ′진취적, 선도적′ 더블로 가!
통합당은 지난달 29일 당선인 총회에서 이들 법안을 설명하고, 의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관련 법안을 보완한 다음 개원 첫 날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첫 비대위 회의에서 ″통합당이 진취적인 정당이 되게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당 대표 격인 김 위원장이 비대위원들을 국회로 불러 내놓은 첫 일성입니다.
김 위원장은 회의에 앞서 첫 외부 공식일정으로 찾은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식에서도 방명록에도 ′진취적으로 국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김 위원장으로서 회의에서도 ′진취적′이란 표현을 다시 강조하며 ″정책 측면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더 큰 규모의 추경도 협조할 수 있다″…′경제·경제·경제′!
심지어 정부가 야당의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꺼낸 추가경정예산에 대해서 김 위원장은 ″지금보다 엄청나게 큰 추경 규모가 나올 수도 있다″며 선뜻 협조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합리적인 근거″를 전제로 하긴 했지만 ″추경안이 만들어지면 협조해 줄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국민들이 미래에 대해 굉장히 불안한 심정을 갖는 것 같다″며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다고 보지만, 이로 인해 파생될 경제·사회 제반의 여러 상황이 아주 엄중하게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을 모셔오는데 많은 공을 들인 주호영 원내대표는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습니다.
″과거 비대위의 실패는 일하지 않고 말만 했기 때문인데, 현장 중심으로 법안과 정책을 만드는 비대위가 되도록 원내대표로서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김 위원장을 모시고 꼭 성공해서 재집권 기반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여기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여야가 큰 틀에서 협치와 합의를 하며 국회가 순조롭게 진행될 같은 기대감마저 듭니다.
특히 보수야당과 진보여당 같은 구시대적 구분은 더 이상 적용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이게 도대체 어느 당이냐?″
미래통합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산하에 ′경제혁신위원회′를 두고 ′포스트 코로나′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당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보수′에서 ′경제′로 탈바꿈하겠다는 겁니다.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이 같은 방침은 ″김종인 위원장이 4·15 총선 선대위원장 시절부터 코로나19 사태 및 경제 위기와 관련해 선제적인 대응을 강조해 온 연장선상″이라며 ″출산·양육 정책도 논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당내 상황을 보면 그리 녹녹치만은 않습니다.
′이심전심′, ′대동단결′, ′일사분란′과 같은 수식어가 어울리는 상황은 아니라는 겁니다.
당장 지난 금요일 당 지도부의 이런 변화에 초선 당선인들을 중심으로 절차와 내용 양 갈래에서 비판이 쏟아졌던 겁니다.
표면적으론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당 1호법안을 정해도 되는 것이냐′는 절차를 문제 삼았지만 속내는 따로 있었습니다.
법안 내용이나 당론이 ′기존 여당이 해온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반발의 주된 이유였습니다.
젊어진 정당을 표방하려면 20대 국회 당시 1호법안인 ′청년기본법′ 정도의 주체적인 상징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부터, ′백화점식 법안으로 메시지가 부정확하다′거나 ′당 정체성을 살리지 못한 법안′이라는 등의 지적들이 이어졌습니다.
5일 개원…′진정성′ 첫 시험대 될 듯
결국 통합당이 주창하는 ′변화, 그 이상의 변화′는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이 흐름을 이끌어 갈 수 있느냐로 판단 받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첫 단추는 오는 5일 국회 개원입니다.
민생고 해결과 경제 살리기는 촌각을 다투는 이슈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떤 식으로든 관련 법안이 미뤄지면 그 진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거대 여당의 인해전술식 힘의 논리에 마냥 끌려다닐 수도 없는 노릇일 겁니다.
따라서 당 지도부가 남은 며칠 동안 얼마나 긴밀하게 여당 지도부와 물밑 협상을 이끌어 나갈지에 많은 기대와 우려의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