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조재영

[국회M부스] "태호 군을 처음 보았습니다" -'어린이안전처법' 취재후기-

입력 | 2020-06-30 11:22   수정 | 2020-06-30 11:30
태호 군의 얼굴을 처음 보았습니다

′태호·유찬이법′, 2019년 5월 인천 축구클럽 차량 사고 당시 숨진 두 명의 어린이의 이름을 딴 법안입니다. 색깔만 노란색으로 칠해놨을 뿐, 법적으로는 ′어린이 통학차량′이 아니어서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차량들의 안전을 강화하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 법안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태호 군의 얼굴은 몰랐습니다. 전혀 몰랐던 건 아닙니다. 태호 군의 어머니, 이소현 씨가 국회에 와서 제발 이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울면서 국회의원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안고 있던 영정사진 속에서 태호 군을 얼핏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를 위해 인천의 댁에 직접 찾아갔을 때 태호 군의 얼굴을 처음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활짝 웃고 있는 태호 군의 사진들, ′태호네 집′이라는 장식이 여전히 소현 씨 집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태호 엄마, 이소현 씨는 국회를 ′셀 수 없이′ 찾아왔습니다

기자 : ″국회에 몇 번 정도 오셨나요?″
이소현 : ″셀 수가 없어요. 사고 이후 한 대여섯 달 됐을 때부터 해서는 내내 왔어요. 행안부 소위가 열린다, 국토부 소위가 열린다, 이럴 때마다 유가족들(다른 희생자 어린이 가족들)이 같이 모여있었으니까요. 가능한 사람들은 매일 아침마다 같이 온 거예요. 출근하듯이.″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도움을 받아서 처음 국회 기자회견장에 섰습니다. 당시 국회에선 어린이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법안들인 해인이법, 한음이법, 하준이법, 태호·유찬이법, 민식이법이 모두 통과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정미 의원 :
″제가 몇차례나 ′이건 쟁점 법안이 아니지 않나. 주차장 내리막길 안전장치 하는 것, 스쿨존 제대로 지키는 것, 어린이 보호차량을 확대하는 것, 이게 뭐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데 이게 안 되나′ 했는데 오늘 소위에서 이 안들이 다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들이 이런 이야기를 국회에 와서 사정을 해야 합니까? 국회가 먼저 이 어머님들 아버님들 찾아가서 손을 잡고 이거 해결해 드린다고 하는 게 순서입니다. 거꾸로 됐습니다.″ (2019년 11월 14일 국회 기자회견)

관련법들은 그 뒤 언론과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행안위를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선거법, 검찰개혁법 등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국회 본회의 개최가 무산되면서, 다시 법안 처리가 불투명해지고 맙니다.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아이들 법안까지 여야 간 협상카드로 쓰려 한다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부모님들은 분노했습니다.

이소현 : ″왜 여야 간의 협상이 안 되는 부분에, 공수처, 선거법 관련해서, 거기에 왜 아이들 얘기가 나와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치의 ′정′ 자도 몰랐고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정치요? 정치인들이 해야할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국회 들어와서 국회의원님들도 만나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정치, 국민들이 해야할 것 같습니다.″(2019년 11월 29일 국회 기자회견)
임신 5개월, 이소현 씨는 민주당 영입인재로 총선에 출마합니다

기자회견 발언 때문이었을까요. 이런 일들을 겪던 와중에, 소현 씨는 더불어민주당의 영입 제안을 받았습니다. 2020년 4월에 실시하는 21대 총선, 국회의원 선거 후보가 돼달라는 거였죠.

이소현 : ″그때 아직 태호·유찬이법이 통과가 안된 상황이어서 민주당 쪽에서 그것 때문에 얘기를 하자는 줄 알고 갔어요. 오늘은 꼭 강하게 의사를 전달하리라, 하고 갔는데 영입제안을 받았을 때는 ′무슨 소리?′하고 아이 아빠랑 같이 앉아서 황당했어요. ′왜 그걸 내가? 왜 니들이 안 하고 내가?′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대한항공 승무원 일을 접어두고 시민단체 소속 어린이 생명안전 활동가가 됐지만, 본인이 국회의원에 도전한다는 건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그녀. 하지만 번번이 법 통과가 무산되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 순간 목소리를 더 크게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소현 : ″계속 국회에서 ′안됩니다′ ′안됩니다′ 할 때 제가 뒤돌아서면서 느꼈어요. 논의해 달라고 던져만 줄게 아니구나. 내가 스스로 해야겠구나.″

임신 상태로 지역구 선거운동도 할 수 있다며 의지를 불태웠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해 비례대표 출마가 결정됐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갑작스럽게 만들어지면서 원래 11위였던 영입 순번이, 비례 순번 21위로 밀렸습니다. 많이 아쉬웠다고 합니다. ″국회의원이 정말 꼭 돼야겠다, 그 생각이 든 건 정작 떨어지고 나서였어요.″

″무슨 법안 내고 싶었어요?″ 먼저 전화한 한준호 의원

선거 이후 딸아이가 태어나고, 소현 씨는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민주당 한준호 의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혹시 국회 들어오면 무슨 법안 내고 싶었어요?″

사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단박에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같은 영입인재로 몇 차례 얘기를 나눈 게 전부라는데, 한 의원은 왜 자신의 1호 법안을 굳이 태호 엄마의 법안으로 대신 내겠다 마음 먹었을까. 세 아이 아빠로 육아 서적까지 냈던 개인적인 경험이 작용했을까.
한준호 의원 :
″실은 제가 민주당 처음 정치 제안 받고 영입됐을 당시에 태호 엄마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아이를 잃은 얘기에 감정이입을 좀 심하게 했었어요. 국회에 들어오고 나서, 1호 법안을 뭘로 낼 것인가 고민을 하던 중에 민생과 관련된 법안으로 좁혀졌고 그런 와중에 태호 엄마가 생각나서 먼저 전화를 드렸죠.

그랬더니 어린이 안전처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어린이 안전과 관련된 법안들이 여러 부처에 나눠져 있는데, 이걸 주관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사실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어린이 보호를 위해 어린이 안전보장 전담컨트롤타워 설치를 공약하셨습니다.″

당연하게도, 어린이안전처를 만드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국무총리 산하 어린이안전처를 신설해 어린이 생명과 안전 관련 사안들을 다룬다는 법안 내용에 누군가는 찬성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취재했던 보건복지 분야 전문가 중 일부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안전이란 문제는 우리 생활 전반의 다양한 영역에 굉장히 포괄적으로 걸쳐져 있는데, 부처 하나로 합친다고 해결되겠냐?″는 의문, ″있는 법부터 제대로 지켜야지 모든 걸 입법으로만 해결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소현 씨에게도 물어 봤습니다. 태호 군 사고 이후, 소현 씨는 어린이들이 안전벨트를 맸는지 안 맸는지, 사고 차량이 어느 기관에 등록돼 있는지, 이런 비슷한 차량이 전국에 얼마나 더 있는지, 이런 것들이 가장 궁금했는데 어느 부처 하나 속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찰청도, 문화체육관광부도, 행정안전부도, 어린이 안전을 다루고는 있지만 그게 1순위가 아닌 현실.

이소현 : ″당연히 어린이안전처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모든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안 해요. 그냥 단 하나라도, 조금이라도 체계를 잡아놓는다면 한 건의 사고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안전처가 과연 필요할까?′라는 논의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어린이 안전에 좀더 관심을 갖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한다는 겁니다.

비난의 댓글을 읽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의외의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비난 댓글을 다는 분들은, 자신의 자식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뜨면 자신도 그걸 이용해 국회의원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일까요. 아니면 자신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지만, 뉴스에 나오는 희생자 가족들은 그런 사람일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그 누구라도 이소현 씨와 같은 일을 불시에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책임자는 제대로 처벌되지 않고, 관리감독은 이뤄지지 않고,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법이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단 이번 기사뿐만 아니라 참척의 고통을 겪은 분들을 근거 없이 공격하는 댓글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아직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싶어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