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8-29 09:08 수정 | 2020-08-29 09:28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국회 폐쇄 모르겠다고?″ 그래서 찾아봤습니다.</strong>
국회 상주 기자의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국회가 사흘간 폐쇄됐습니다. 올 들어서만 벌써 두 번째 국회 폐쇄인데요.
기사를 쓰면서 지금까지 국회가 몇 번이나 폐쇄됐었는지 국회에 물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군사정권 때는 몇 번 있었는데 제대로 살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MBC뉴스 아카이브를 뒤져봤습니다.
지난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사례들만 검색됐고요. 군사정권 시절엔 쿠데타와 비상계엄령 선포 등으로 국회가 해산되고 문을 닫은 내용이 몇 건 검색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취재 여건이 삼엄해서였는지 문 닫힌 국회 영상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엄혹했던 그때의 분위기를 느낄만한 자료들은 몇 가지가 있었는데요.
MBC 아카이브에서 확인한 국회 수난사, 함께 보시죠.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1961년 군사 쿠데타..제5대 국회 해산</strong>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양원제를 시행했던 제5대 국회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9개월 만에 해산됐습니다.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국회 기능을 대신했는데요.
1961년 5월 19일 오후 1시, 군사혁명위원회 회의실에서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국가재건최고회의 본회의가 열렸습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국회 기능을 대신한다기 보다 입법, 사법, 행정의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점령군의 공포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장도영 당시 의장의 ′반말′ 개회사가 인상적인데요.
장 의장은 ′군기′를 강조하며 쿠데타를 ′성스러운 과업′으로 표현했습니다.
1961년 5월은 MBC 개국 전이라 ′KTV 대한늬우스′ 자료로 대신합니다.
- ″군사혁명위원회의 중대한 사명과 조국을 재건하자는 성스러운 과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혁명 이후 힘써 준 각 지휘관, 참모 및 전 용사들의 노고와 업적을 찬양한다. 특히 박 장군 이하 여러 장군의 업적을 치하한다. (중략) 엄격한 군기를 확립하고 모든 능력과 지식을 총 망라하여 혁명 과업을 단시일 내에 완수하고 조국을 재건하는 역사적 시간을 이룩해야 한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장도영 의장, 국회 회의록 발췌)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1972년 유신헌법 비상계엄 선포..제8대 국회 해산</strong>
1972년 10월 17일. 청와대는 그 유명한 ′유신헌법′ 제정에 착수하기로 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합니다. 당시 김성진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 앞에서 브리핑을 했는데요.
- ″그러니까 여기에 시행 날짜가 들어가 있는걸 반드시 넣어주십시오. 그리고 그다음에 10월 17일 대통령 각하의 특별 선언 중에서 여러분들이 페이지 7을 들추면은 페이지 7 제일 밑으로 내려와가지구 굵~다란 글씨로 1항, 여기에 둘째 줄에 ′정치′, 여기에 글씨가 앞뒤로 뒤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정정하십시오. 그러면 지금서부터 발표합니다. 오늘 대통령 각하께서는 하오 6시에 청와대에서 긴급 국무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이하 생략)″ (당시 청와대 김성진 대변인, MBC 영상 아카이브 中)
이건 뭐.. 브리핑인지 지시 하달인지 모를 정도로 권위적인데요.
결국, 이 발언 직후 제8대 국회가 해산됐고, 중무장한 군인들이 한밤 중에 서울로 입성했습니다.
아쉽게도 문 닫힌 국회 그림은 찾을 수 없었지만 당시 트럭을 타고 서울로 들어오는 군인들의 모습은 MBC 아카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촬영은 박채규, 정진 두 분의 영상기자 선배님들이 해주신 걸로 기록에 남아있고요. 사진은 비상계엄을 브리핑 중인 김성진 당시 청와대 대변인과 서울로 입성 중인 군인들 모습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1980년 비상계엄 전국 확대..제10대 국회 해산</strong>
1980년 찾아온 ′서울의 봄′, 하지만 그 해 5월 17일,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됐습니다. 국회 역시 계엄령에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정치활동이 전면 중단됐고 국회 출입도 통제됐는데요.
이때에도 취재 여건이 녹록지 않았는지, MBC 아카이브에서 문 닫힌 국회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당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아카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사진은 계엄 선포 다음날인 1980년 5월 18일 ′정치활동 중단′이라고 적힌 호외와 이를 살펴보는 서울 대한문 앞 시민들 모습입니다. 이재은 영상기자 선배님이 촬영한 장면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2019년 12월 16일..태극기 부대 국회 난입</strong>
1987년 민주화 이후 국회 해산이나 폐쇄 기록은 검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30년 넘게 시대를 건너뛰어 지난해 12월 16일,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사람들이 국회로 난입해 국회가 봉쇄된 뉴스가 검색됐습니다.
이들은 공수처법 반대 등을 외치며 물리력까지 행사했고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함께 집회를 열었습니다.
국회 측은 황급히 국회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본청 건물을 봉쇄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이 시위대에 폭행당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당시 국회에서 나온 발언들입니다.
- ″문희상을 처단하자″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 ″우리의 뜻을 강력하게 전달했습니다. 여러분이 이겼습니다. 여러분이 승리했습니다.″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
- ″주인이 내는 세금으로 움직이는 국회에 들어오겠다는데 국회 문을 잠그는 행동, 잘못된 것입니다.″ (심재철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40년 정치 인생의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 날 ″국회가 유린당했다″고 말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2020년 잇따른 코로나 확진자 발생..국회 폐쇄</strong>
2020년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여파에 국회도 안전지대는 아니었습니다.
지난 2월 19일 국회의 한 토론회를 다녀간 외부인이 사흘 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고, 이 날 24시간 동안 국회가 폐쇄됐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감염병으로 국회가 폐쇄된 건 초유의 사태로 회자됐습니다.
이번엔 국회 상주하는 기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국회가 사흘간 폐쇄됐습니다.
국회 폐쇄는 6개월 만입니다. 폐쇄 기간도 2월보다 3배나 더 길어졌습니다. 국회는 또 폐쇄될 때를 대비해 원격회의와 원격표결까지 검토중입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이 계엄령을 선포해야 멈출 수 있었던 국회가,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신종 감염병 앞에서 속수무책이 돼버렸습니다.
6.25전쟁 때는 임시 의사당을 전전했고, 군사정권에선 해산을 반복하며 문을 닫았던 대한민국 국회.
당시 국회가 시대의 수난을 상징했다면, 지금 국회는 코로나 시대 인간들이 사는 법을 웅변하는 듯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