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곽동건
#. 손정우, 미국가면 최대 징역 20년도 가능?
세계 최대의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했던 손정우.
회원 규모 128만 명의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아동 성 착취물만 3천여 개를 유통시킨 혐의로 2018년 체포됐습니다.
체포 직전 10개월간 다운로드 건수만 36만 건, 암호 화폐로 받아 챙긴 범죄 수익만 4억 원 가량입니다.
심지어 손정우는 이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아동 성착취 음란물만 취급하겠다는 뜻으로 ′성인 음란물은 올리지 말라′고 대놓고 공지하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법원에서 확정된 형은 징역 1년 6개월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도 따가웠죠.
형이 확정돼버려 국내법으론 더 이상 추가 처벌은 불가능해진 상황.
이대로 지난달 형기를 마치고 풀려나는 줄 알았던 손 씨에게 미국에서 범죄인 인도 요청이 날아들었습니다.
성 착취물 유통에 비교적 가벼운 형을 내리는 우리 법원과 달리 손 씨가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못해도 10년 이하, 최대 징역 20년까지 받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죠.
손 씨에겐 미국으로 보내지느냐, 아니냐에 여생이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때문에 손 씨는 구속적부심을 신청해보기도 하고, 한국에서 수사를 받아보겠다고 아버지 이름으로 사실상 ′셀프 고소′까지 했는데요.
그러나 두 가지 카드 모두 별 소용이 없는 상태입니다.
결국 송환 여부에 대한 재판부 판단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바로 이런 손정우 ′범죄인 인도 청구′ 첫 심문이 어제(1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렸습니다.
#. 그는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심문 기일이 시작되는 오전 10시, 서울고법 403호 법정.
공개 진행되는 재판 시작 직전에 손 씨의 아버지 등 가족들이 먼저 방청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얀 마스크에 갈색 모자를 쓴 손정우의 아버지는 두 손을 모으고 재판정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법정 문 앞에는 취재진들도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는데요.
방청석은 금방 가득 찼고, 법원은 소법정 두 개를 더 열어 재판을 영상으로 중계해 추가 방청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같은 뜨거운 관심을 의식한 탓일까요.
정작 손정우 본인은 오늘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는데요.
″재판에 출석하는 건 본인의 권리″라며 출석 여부를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손 씨의 변호인조차도 ″(손정우) 본인의 참석 여부에 대해 듣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 ′추가 처벌 안 한다′ 보증부터 내놔라?
손 씨 변호인은 크게 두 가지 논리를 준비해 왔습니다.
가장 먼저 내세운 건, ′추가 처벌 우려′를 불식시킬 미국의 ′보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변호인은 국내에서 ′처벌되지 않은 혐의′이자, 범죄인 인도의 ′사유′가 된 ′자금 세탁 혐의′ 외의 다른 혐의로는 미국에서 추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보증′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럼, 손 씨 주장과 관련된 범죄인 인도법의 조항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범죄인 인도법 제10조](인도가 허용된 범죄 외의 범죄에 대한 처벌 금지에 관한 보증)
″…인도가 허용된 범죄 외의 범죄로 처벌받지 아니하고 제3국에 인도되지 아니한다는 청구국의 보증이 없는 경우에는 범죄인을 인도하여서는 아니 된다″
실제로 법령을 보면 손 씨가 자발적으로 미국으로 재입국하는 경우같은 몇 가지 예외 상황이 아니라면 ′인도 조건′으로 청구국인 미국의 ′보증′이 필요하다고 명시돼 있긴 합니다.
이 문구 그대로라면, 별도의 ′보증′이 ′송환′의 전제 조건처럼 보일 수 있겠죠.
그러나 검찰은 이를 손쉽게 반박했습니다.
먼저, 검찰이 제시한 범죄인 인도법의 다른 조항을 한 번 볼까요.
[범죄인 인도법 제3조의2](인도조약과의 관계)
″범죄인 인도에 관하여 인도조약이 이 법과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규정에 따른다″
이 법보다 미국과 체결한 ′범죄인 인도조약′이 우선이라는 거죠.
검찰은 ″한미 범죄인 인도조약에서 인도된 범죄 외의 추가 처벌을 금지하고 있다″며 ″그 자체로 보증의 효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또 ″실무적으로도 별도의 보증을 하고 범죄인을 넘겨주거나, 넘겨받은 사례가 없다″며 ″인도 이후에 추가 처벌이 이뤄진 사례 역시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니까, 추가 처벌 하지 않기로 조약이 다 맺어져 있으니 보증이 된 걸로 보면 된다는 말이죠.
이같은 검찰의 주장에 대해 변호인은 별다른 반박 논리를 제시하진 못했습니다.
#. 손정우, ″′자금 세탁′ 무죄″ 전격 주장
그러나 다음 이어진 변호인의 주장은 재판부를 고민하게 할 만했습니다.
손 씨 변호인은 ″범죄인 인도 요청 사유가 된 ′자금 세탁′ 범죄는 증거가 없어 무죄″라고까지 주장했는데요.
이런 주장은 앞서 변호인이 제출한 의견서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내용이어서 재판부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습니다.
만약 죄가 안 된다면 송환 이유가 사라지는 거니까, 가장 근본적인 쟁점을 건드린 거라고 볼 수도 있겠죠.
재판부는 ″이번 심사는 유·무죄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변호인이 오늘 법정에 와서야 무죄 주장을 해서 그 부분은 오늘 당장 심리가 깊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변호인이 오늘 전격 주장한 ′무죄′의 이유, 뭔지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사법당국이 보내온 자료에 따르면 손 씨의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거래내역을 장기간 추적한 결과,
아버지 이름이나 다른 사람의 계좌로 범죄수익금을 주고 받는다든지 도박사이트에 돈을 넣었다가 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세탁′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는데요.
변호인은 이같은 거래내역에 대해 우리 검찰이 이미 충분히 수사했음에도 기소하지 않은 걸 보면 ′증거가 불충분해 혐의가 적용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차명으로 암호화폐를 사고 판 것도 ′투자 목적이었다′, 도박사이트에 넣었던 돈도 ′실제로 도박을 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식으로 주장했습니다.
재판부 입장에선 이같은 주장이 맞는지 따져볼 수 있는 자료를 미리 받아놓지 않은 상황이라, 당장 오늘 심리가 어렵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나 검찰은 ″암호화폐 거래는 미국처럼 특별한 추적기법을 동원해 장시간 쫓지 않으면 밝히기 어려운 사안″이라며 ″당시 수사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아 기소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증거 수집이 어려워서 기소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 충분히 수사해놓고 ′죄가 안 된다′고 판단했던 게 아니라는 거죠.
또, 지금은 미국에서 상당 시간 특별한 기법으로 수사가 이뤄졌기 때문에 죄를 입증할 수 있게 됐다는 거고요.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검찰에 ′당시 범죄수익 은닉 부분을 기소하지 않은 이유와 당시 수사 수준 등을 확인해서 제출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 ′지푸라기라도 잡자′ 아버지의 고소 영향은?
재판에선 손 씨 아버지가 손 씨를 고소한 사건과 관련한 언급도 나왔습니다.
일단, 아버지가 손 씨를 고소한 사건은 검찰에 배당은 돼 있는 상태이고요.
만약 검찰이 손 씨를 기소할 경우 국내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고, 재판중일 때는 인도를 거절할 수 있다는 거죠.
관련 법 조항을 다시 한 번 보면요.
[범죄인 인도법] 제7조(절대적 인도거절 사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범죄인을 인도하여서는 아니 된다.
…
2.인도범죄에 관하여 대한민국 법원에서 재판이 계속 중이거나 재판이 확정된 경우
이 조항을 송환을 막는 데 이용하려는 게 사실상 아버지가 아들을 고소한 진짜 이유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죠.
그러나 검찰 측 반박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재판장] : …피고인 아버지가 피고인을 고발했다고 돼 있고, 검찰에서 수사 부서 배당했다는데 어떻게 되고 있나요?
[검사] : 중앙지검에 배당돼서 검토중입니다. 다만…(중략)…기소가 되지 않은 이상 수사는 거절 사유에 해당될 수 없고, 수사여부도 아직 검토중인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만에 하나 검찰에서 수사를 하기로 결정한다 하더라도 아직 재판엔 넘겨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인도심사에선 전혀 거절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거죠.
손 씨 변호인도 이같은 검찰의 주장에 대해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 송환 결론은 한 달 뒤로…
결국, 재판부는 잠시 의논 끝에 오늘 당장 결정을 내리지 않고 심문 기일을 다시 잡기로 했습니다.
변호인이 갑자기 내놓은 ′무죄′ 주장에 대해 추가 자료를 놓고 살펴봐야 한다는 건데요.
그러나 손 씨가 재구속 된 지난달 27일로부터 두 달 안에 결론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 여유가 많진 않습니다.
다음 심문 기일은 6월 16일 오전 10시.
재판부는 추가 자료 등을 검토한 뒤, 다음 기일에 손정우를 소환해 본인 입장을 직접 들어본다는 계획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결정을 내려 고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늘 재판이 끝난 뒤, 손정우의 아버지는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도망치듯 뛰어서 법원을 빠져나갔는데요.
손 씨 아버지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결정이 나지 않아 착찹하다″면서 ″죄는 위중하지만 아버지 입장에서 저쪽(미국)으로 보낸다는 것이 불쌍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6월 16일, 손 씨가 직접 법정에 나와 아버지 앞에서 듣게 될 결론은 과연 무엇이 될까요.
다시 또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