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버스에 탄 협력자 364명이 공항에 도착했고, 8월 25일 아침 공군 수송기 C-130J 2대에 나눠 타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으로 갔습니다.
앞서 카불공항에 스스로 도착한 협력자 26명은 이미 파키스탄에 도착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미라클 작전을 현장에서 총괄한 이경구 특수임무단장(국방부 국제정책차장)은 수송기가 카불을 뜨는 순간 기내에는 안도의 환호성이 들렸다고 전했습니다.
이 단장은 ″당시 카불 날씨가 30도를 넘어 굉장히 무더웠는데, 다들 대기할 때부터 땀을 많이 흘리고 있어 좁은 수송기 안에서 아픈 사람이 나올까봐 땀도 닦아주면서 파키스탄까지 갔다″면서 특히 ″일부 아이들이 더위에 열이 오르자 군의관들이 해열제를 처방해주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8월 25일 정오쯤 이들은 무사히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고, 이제 마지막 과제인 한국으로의 이송이 남았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빽빽한 수송기…″짐 위에 엎드린 채 11시간 버텨″</strong>
협력자 대부분은 가족 단위, 어린 아이들도 많아 가급적 한 수송기에 태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군수송기인 KC-330의 적정 탑승 인원은 270여 명에 233톤.
협력자 377명과 작전 승무원·군인, 외교부 직원 등 40여 명이 타고 나니 수송기는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는데, 다행히 한계 중량을 넘지는 않았습니다.
남은 중량은 겨우 260kg, 성인 3~4명만 더 탔어도 수송기는 아예 뜨지 못할 뻔했습니다.
이 단장은 ″우리 장병들은 협력자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짐 위나 짐 사이에 구겨져서 탔다″면서 ″거의 엎드린 채 11시간을 버틴 장병도 있고, 이·착륙시 짐이 사람들에게 떨어질까 봐 장병들이 몸으로 막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식사는 고기 대신 빵·음료수…분유·매트리스도</strong>
특수임무단의 세심한 배려도 있었습니다.
이슬람 문화를 존중해 고기 대신 빵과 음료수 등으로 세 끼 음식을 제공했고, 아기에게 줄 분유와 매트리스도 준비했습니다.
이 단장은 ″신생아들에게 준비해 간 분유를 타서 갖다 줬더니 어머니들이 상당히 감동하고 주변 사람들이 박수도 치고 감격스러웠다″며 ″급하게 이륙하면 신생아들의 고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봐 최대한 천천히 이륙하고 천천히 착륙했다″고 밝혔습니다.
덕분에 한국으로 오는 11시간의 비행은 아픈 사람 없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딸 넷′ 공군 특수임무요원 ″저희 애들이 생각났어요″</strong>
이번 작전에는 작전 참여자와 아프간 협력자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협력자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역할을 수행한 CCT 공군 특수임무요원 8명도 투입됐습니다.
그 중 한 명인 김 모 상사는 아이들을 보니 이번 작전에 더욱 진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딸 4명의 아빠인 둔 김 상사는 ″아이들이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한국에 있는 딸들이 떠올랐고 이 아이들을 꼭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불안해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계속 웃어줬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아프간 탈출 보름 전에 태어난 쌍둥이 신생아도 직접 수송기로 옮겼습니다.
그는 신생아가 있는 아기 요람을 들고 이동했는데, 생각보다 무거워서 덮개를 열어보니 쌍둥이 신생아가 있었다며 자신도 모르게 한참을 쳐다봤다고 당시의 소회를 기억했습니다.
8월 26일 첫 번째 수송기에 이어 8월 27일 나머지 13명의 협력자가 수송기도 한국에 도착하면서 미라클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이들은 입국하자마자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고 음성판정을 받은 후 진천의 공무원인재개발원에 머물고 있습니다.
미라클 작전이 성공적이었듯이 협력자들의 한국 생활도 평탄하길 바랍니다.
김 상사는 영어를 할 수 이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한 아이가 ″한국에 가니까 좋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