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9-15 15:33 수정 | 2021-09-16 10:07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MBC 찾아온 고문서 경매사‥′대외비′ 빨간 도장 찍힌 ′김대중 사찰 문서′</strong>
고문서를 취급하는 한 경매사의 직원이 지난주 MBC에 제보를 했습니다. ″안기부 파기 문서가 유출돼 저희 경매사에 왔습니다.″ 급히 찾아간 경매사에서 본 건 다섯 권의 낡은 보고서. 표지에서부터 한 사람의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金大中.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입니다.
문서 겉면엔 ′대외비/파기′, 한자 안(′安′)자가 빨간색으로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 서슬퍼런 신군부 정권 시절, 정보기관이 극비리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대중 사찰 문서′ 일부가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 겁니다. 경매회사에 따르면 이 문건들은 보관자측이 파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폐기 처분했다가, 고물상 등으로 넘어가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지금까지 남아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56쪽 분량의 첫 번째 보고서는 <金大中關聯資料 (김대중관련자료)>.
1984년 11월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보고서는 목차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원사항>, <재산관계>, <사상성분 및 전과관계>, <김대중의 간교.사술적 정치행적>, <재미활동 상황> 등으로 매우 세세하게 작성돼있습니다. 이 보고서가 만들어진 목적이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보고서 내용 일부만 봐도 김대중 개인, 그리고 김대중 가까이 있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집요한 사찰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i>5. 김대중 건강상태( 83.1.21 조지타운 대학병원 공식발표)
- 이명 증세는 있으나 고막이 정상이며, 특별치료 방법 없음
- 관절염 증세는 수술을 요할 정도는 아니며 더 이상 악화될 염려 없음
- 양하지 부종증상이 있으므로 가벼운 운동 및 혈액순환 추진이 필요
- 잇몸에 손상이 있으므로 수술치료 필요
- 그 외 전반적인 건강상태는 양호
※ 처 이희호는 지병인 관절염 증상(팔, 목, 머리, 등 통증)으로 고생</i>
해당 보고서에는 김 전 대통령 본인 뿐 아니라 이희호 여사와 세 아들, 당시 8살,6살,2살이었던 세 손녀와 1960년에 사별한 전 부인 가족까지 무려 82명 가족 정보가 적혀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가족들 명의로 된 아파트 주소와 시세, 생업은 무엇인지, ′미국에서의 생활비는 1만 달러′라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재산 중 현금 3억 원은 10·26사태 이후 경제인에게 받은 돈 중 일부′라는 자금 추적 기록까지 담겨 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대외비/파기′ 도장 찍혀 있는 문서엔 ″비열하고 간사한 모략가″‥김대중 ′음해 보고서′</strong>
같은해 말, 혹은 이듬해(85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두 번째 문서 <金大中關聯資料 (김대중관련자료)>는 116쪽으로 앞선 보고서의 두 배 분량입니다. 표지 상단에는 <대외비′/파기> 빨간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 목차를 보면 <김대중의 체미동향 및 귀국 기도 경위>, <김대중 재미활동 상황 개요>, <김대중의 간교 사술적 정치행적(사실왜곡, 허위 날조 사례)>, <김대중 뉴스위크 지 등 회견 대한 평가> 등 당시 미국에서 망명 중이던 김대중의 대외활동에 대해 수집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김대중의 간교 사술적 정치행적′ 부분을 살펴보면, 이 보고서는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을 ″비열하고 간사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유일무이한 선동, 모략가, 사기꾼″이라고 평가합니다.
<i>″일반적으로 김대중은 반독재 민주투쟁을 위해 매우 집요하고 과감한 정치행동을 해 온 것 같이 알려져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가장 비열하고 간사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 구사하여 민중을 기만하고 정상적 사고로서는 발상하기 어려운 간지(간사한 지혜)를 짜내어 대중을 선동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작하는 등 한국의 근대 정치사에서는 달리 유형을 찾아보기 어려운 유일무이한 선동, 모략가이며 사기한(사기꾼)인 바 그의 정치 행적을 통한 실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i>
<i>[사례6]
1971.3.23 (제7대 대통령 선거 시)
○ 김대중은 향리(고향)인 전남 목포에서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면서 심복분자를 시켜 사이다를 가져오게 하여 이를 받아들고
O 「이것이 정부기관에서 나를 독살시키려고 보내온 사이다병인데 독약이 들어있다」고 청중들을 선동한 다음
○ 사이다병 내에 들어있다는 독약을 감정치 못하도록 재빨리 사이다를 쏟아버렸다. 청중을 선동 흥분시킬 목적만 달성하면 족한 것이니까 내용물을 재빨리 버린 것이다.
[사례12]
1982.12.19. (서울대병원_이송 후)
○ 김대중은 병원 이송 후 첫날은 처 이희호가 준비한 융숭한 사식(숭어회, 찜)을 먹고 난 후 이희호가 출국 준비 관계로 바쁘므로 이후부터 아침은 관식(죽)을 먹겠다고 자청하였는데
△ 12.19 (일요일) 야식으로 쌀죽과 된장국의 병원식사를 제공한 바 집에서 가져온 은수저를 넣어 색깔이 하는 것을 보고는 「독물이 들었다」고 취식을 거부하며 소란을 피웠다.</i>
이런 식으로 김대중이 ′모략가, 사기꾼′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무려 열 두가지 사례를 동원하고 있는데,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한 뒤 수집한 정보라기 보다는 김대중이라는 인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려는 서술로 보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장신기 박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
″반대편의 가장 유력한 정치인 김대중에 대해 계속해서 잘못된 편견을 만들어내서 김대중 개인과 김대중이 대표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 진영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뿌리 깊게 만들기 위한 권력 집단의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 정치적 기획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strong>
겉표지에 한자로 안(′安′) 글씨가 새겨진 ′김대중 귀국 보고서′도 있었습니다. 국가 최고정보기관이었던 ′국가안전기획부′, 안기부의 ′안′, 혹은 ′보안′ 문서를 표시하기 위한 ′안′ 글씨로 추정됩니다. 이 문서는 당시 정권이 김대중이라는 정치인, 그것도 미국에 망명해 있는 한 사람에 대해 수년 간의 사찰과 분석, 견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김 전 대통령이 1985년 2월 총선을 앞두고 미국에서 귀국할 경우 그 정치적 영향력과 파급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기부를 의미하는 ′安′ 도장이 찍혀 있는 <김대중 귀국 관련 대미 협의 경위> 보고서 역시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85년 2월 12일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귀국은 당시 정권의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귀국하면 재수감을 하겠다고 압박했고, 김 전 대통령이 선거 이후 귀국하게 하기 위해 미국 측과도 긴밀하게 물밑 거래를 했던 상황이 보고서에 담겨 있습니다. 김대중이라는 거물 정치인의 귀환에 대한 두려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 다른 문서는 <민주정의당 당무보고>. 1981년 1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서에는 전두환의 친필 서명도 있어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갔던 보고서가 아닐까 추측됩니다. 목표 의석수와 선거 전략을 제시하면서, 민주정의당이 기호 1번을 차지하면 5-6%가량 더 득표할 수 있다며 등록 순서를 민정당에 유리하게 선거법을 개정하자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투표를 앞두고 김대중에 대한 견제와 더불어 당시 신군부 정권의 염려가 드러나는 보고서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새마을 성금′ 280억 원 영수증과 전두환 감사 편지‥문서 5개 이달 29일 경매</strong>
<새마을성금 출연 투자금융회사 영수증 사본>은 81년부터 87년까지, 당시 신군부가 투자금융기관 34곳으로부터 새마을 성금 명목으로 돈을 걷은 뒤 발행한 2백 장에 달하는 영수증 묶음집입니다. 7년 동안 걷은 금액은 약 281억 원. 초반에는 한 회사당 7억 원씩을 일정하게 걷은 것으로 보아 자발적인 성금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당시 시세 기준 7억 원은 강남아파트 수십 채 가격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부산투자금융′의 문성능 사장에게 보낸 전두환의 감사 친서도 동봉돼 있습니다.
″문성능 사장 귀하. 귀하께서 새마을운동을 위해 정성어린 성금 1억 5천 7백만 원을 보내주신 데 대하여 치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새마을운동은 우리 국민 모두가 적극 참여하고 서로 협력해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범국민적인 운동으로서 귀하의 참여는 높이 평가될 것이며 그 성금은 값지게 쓰여질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마을운동의 활성화와 국가발전을 위해 힘써주시기 바라며 귀하의 행운과 번영을 기원합니다. 전두환″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국가 정보기관 개입한 정치 기획‥보고서 존재 자체가 ′비극′</strong>
이 5개의 문건들은 이달 29일 경매사이트에 나오게 됩니다. 경매를 통해 세상에 나오기 전, MBC가 확보한 이 문서들을 먼저 본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과연 김대중의 동향이라는게 정권적인 차원을 떠나서 국가적 차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국가가 중요시하는 정보라는게 국격을 의미하는거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의 국격이란건 김대중이 누구 만나 무슨 얘기했느냐를 감시하는 데 다 들어가있다는 거죠.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이 예산과 인력을 써서 그 사람에 대한 보고서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비극인 거죠″</strong>
김대중이라는 한 명의 정치인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고서들. 정권에 위협적인 상대를 제거하기 위해서 국가 정보 기관을 동원해 불법적인 사찰과 음해도 서슴지 않았던, 후진적인 당시 정치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이 보고서의 실체를 오늘 <MBC 뉴스데스크>에서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