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11-07 21:17 수정 | 2021-11-08 06:30
오늘 저녁 8시 20분에 방송된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가 1조 원대로 추정하는 화물차 번호판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당거래를 추적했다.
현재 전국을 누비고 있는 화물차 50만대 중 약 10%인 5만 대가 ′가짜 번호판′을 달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b style=″font-family:none;″>시청에 등록도 하고 세금도 냈는데 내 번호판이 가짜?</b>
<스트레이트>는 ′가짜 번호판′ 피해를 당한 화물차 운전자들과 운송회사 관계자들을 만났다.
부산과 광주를 오가며 컨테이너 화물을 운송하고 있는 30대 김 모 씨는 얼마 전 양산시청에서 ′번호판이 가짜이기 때문에 운행을 정지시키겠다′는 경고장을 받았다. 번호판이 컨테이너 화물차용 번호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정부의 유류세 지원도 끊겼다. 황당한 건 김 씨가 양산시에 정상적으로 차량을 등록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왔다는 점이었다.
김 씨에게 번호판을 대여한 운송회사도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전남 담양의 운송회사에서 이 번호판을 사왔는데 마찬가지로 문제없는 번호판으로 알고 사왔다고 했다. 차량의 주민등록 등초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등록원부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스트레이트>는 한 지자체의 협조를 얻어 이 번호판의 전산 기록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랬더니 원래 번호판이 달려있던 차량이 견인차라는 것을 발견했다. 보통 시세가 1천만 원 정도인 견인차용 번호판이 누군가의 손을 거쳐 시세가 5천만 원이 넘는 컨테이너 화물차용 번호판으로 바뀐 것이었다.
<스트레이트>는 서울 영등포, 인천 강화, 경북 포항 등에서도 비슷한 피해가 반복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오랜 기간 화물차 운송업계에서 일한 제보자는 2004년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 발급이 허가제로 바뀌면서 규제가 강화됐고 그러면서 ′가짜 번호판′이 급증했다고 털어놨다.
마치 개인택시 번호판 같은 시장이 형성돼 번호판이 돈이 되자 ′가짜 번호판′을 찍어내는 세력들이 등장했다는 설명이었다.
<b style=″font-family:none;″>가짜 번호판 카르텔의 정체</b>
<스트레이트> 취재 결과, ′가짜 번호판′은 두 단계를 거쳐 탄생했다.
먼저 차종 바꿔치기였다.
총량 규제로 화물차 신규 번호판 발급이 어렵기 때문에 보통 화물차가 낡으면 운송기사들은 차량만 바꾸고 번호판은 유지한다. 차종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기존 차량을 폐차하고 이 번호판을 새 차량에 붙인다고 해서 이 과정을 보통 ′대폐차′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대폐차 과정을 지자체가 아니라 각 시도의 화물차 운송 사업자 협회가 위탁받아 맡고 있었고, ′가짜 번호판′ 업자들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예를 들어 폐차를 할 때는 번호판 시세가 5백만 원 정도인 청소차를 폐차한 뒤, 이 번호판을 새 화물차에 붙일 때에는 시세가 5천만 원 정도 하는 트랙터 화물차에 붙이는 식이다. 순식간에 10배 껑충 뛴 번호판이 탄생한다. <스트레이트>는 이 과정을 화물차 운송 사업자 협회가 묵인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 단계는 번호판 복제, 이른바 ′쌍둥이 번호판′이었다.
각 지역의 화물차 운송 사업자 협회에서 정보 공유가 잘 안되다 보니 한 지역에서 폐차를 하는 척 하며 이 번호판을 다른 지역 화물차에 넘긴다. 그리고 동시에 이 번호판을 원래 지역에서도 새 차에 붙인다. 이렇게 하면 한 번호판이 두 개의 번호판으로 늘어난다. 이런 식으로 번호판 무한 증식도 가능했다.
운송 사업자 협회들은 이제 시스템이 통합돼 ′쌍둥이 번호판′을 만들기가 어려워졌다고 해명했지만 <스트레이트>는 최근 강원도 고성과 충남 홍성에서도 ′가짜 번호판′ 업자들이 활개친 흔적을 발견했다. 고성에서 만들어진 화물차 번호판은 서울, 경기, 인천, 전남, 충남 등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2004년 번호판 허가제가 도입된 뒤 오히려 영업용 화물차가 35만대에서 50만대로 늘어났다. 운송업계는 50만대 중 10%인 5만 대가 가짜 번호판을 달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대략 1조 5천억 원 규모의 암시장이었다.
<스트레이트>는 이런 ′가짜 번호판′을 만든 법인의 주소를 찾아 나섰다. 이미 이사를 떠났거나 비어있는 시골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들이었다. 등기부 등본에 적힌 대표의 아파트를 찾아가 봤지만, 입주자 명부에 없는 인물이었다. 사실상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운송회사였다.
<b style=″font-family:none;″>운송업자 등치는 전직 검사</b>
이렇게 화물차 번호판 시장이 혼탁하다 보니, 운송업자들은 자기가 언제 법을 어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스트레이트> 취재 결과, 이런 상황을 이용해 거액을 번 전직 검사까지 있었다.
경북의 한 운송업자는 자신이 산 화물차 번호판 7개가 몽땅 가짜로 드러나는 피해를 보았다. 그래서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조사를 받으러 갔는데, 어떤 남성이 접근해 ′화물차 번호판 사건에서는 구 모 변호사가 최고′라고 바람을 넣었다고 <스트레이트>에 말했다.
이 사람이 검찰 직원일 거라고 생각한 운송업자는 구 모 변호사를 찾아갔고, 구 변호사는 사건이 없는 걸로 해주겠다며 2억 원의 수임료를 요구했다. 이 운송업자는 대출까지 받아가며 어렵게 1억 5천만 원을 마련해 구 변호사에게 건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자기가 그냥 단순 참고인일 뿐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죄도 없는 사람에게 거액의 자문료를 등친 구 변호사는 알고 보니 전주지검과 대구지검에서 여러 차례 ′가짜 번호판′ 사건을 직접 수사했단 전직 검사였다.
사건이 커지는 걸 막으려면 구 변호사에게 가라고 말한 사람은 검찰 직원이 아니라 검찰의 정보원 K씨였다. 구 변호사가 검사 시절 번호판 사건을 수사할 때에도 수사를 도와줬던 사람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의 운송업자도 서울 도봉경찰에서 자신을 수사하고 있다는 K씨의 말에 놀라 구 변호사에게 8천만 원의 돈을 건네기도 했다.
<스트레이트>가 구 변호사를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구 변호사는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답을 보내왔다.
경찰은 지난 2018년 구 변호사와 브로커 역할을 한 정보원 K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검찰은 지난 8월 구 변호사를 재판에 넘겼다.
<b style=″font-family:none;″>10년 이상 방치된 ′가짜 번호판′ 문제‥이제는 해결해야</b>
<스트레이트> 방송에 따르면 ′가짜 번호판′ 문제가 이미 10년 전부터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아왔다.
정부가 화물차 운송기사들의 기름값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원하는 매년 1조 원의 유가 보조금 중 얼마나 ′가짜 번호판′ 화물차에 새고 있는지도 파악이 안 되고 있다.
<스트레이트>는 무엇보다 ′쌍둥이 번호판′을 만드는데 악용되고 있는 대폐차 과정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시군구청, 등록사업소, 화물차운송사업협회로 분리돼있는 화물차 인허가와 등록, 대폐차 업무 문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방송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