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9-26 13:42 수정 | 2021-09-26 13:50
아프가니스탄 특수부대 소속이던 A씨는 지난달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하자 미국으로 탈출했다.
미군에 협력하며 지냈던 과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부인과 세 아이를 데리고 미국행을 택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아프간 탈출 가정에 ″월세 안 받겠다″</strong>
특별이민비자(Special Immigration Visa)를 받아 미국 버지니아주에 도착한 이들은 임시 수용시설에 머물다 자선단체의 알선으로 보금자리를 얻게 됐다.
워싱턴DC와는 포토맥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알링턴 지역에 방 2개 짜리 2층 타운하우스에 살게 됐다.
계약 기간은 1년, 월세는 한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아프간 탈출 가정을 세입자로 받겠다는 70대 노부부의 파격적 제안이었다.
코로나 이후 집값도 월세도 뛰었다는데, 한푼도 받지 않겠다는 집주인을 만나러 찾아갔다. 머그지라는 이름의 개와 함께 취재진을 맞아준 신시아 싯코브는 첫눈에 봐도 마음씨 좋은 할머니였다.
형편이 되니까 돕고 싶다는 평범한 답변을 하기에 선의를 베푼 이유를 되물었다. 신시아는 자신이 유대인이기에 오히려 돕고 싶었다고 했다. 유대인이 무슬림 가정을 품는다?
신시아의 조부모는 1900년대 초 러시아에서, 외조부모는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탈출한 유대인들이었다.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에서는 유대인 수만 명을 상대로 살인, 강간, 재산몰수 등의 ′대 박해′(포그롬, Pogroms)가 자행됐다.
그런 탄압을 피해 조부모들이 미국에 정착했기에 오늘날 자신이 존재하고 있으니, 이제는 그런 은혜를 자신이 갚을 때가 됐다고 했다. 인터뷰하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기부 물품 택배 쌓여, 문을 열 수 없었다″</strong>
실제로 유대인들이 이번 아프간 탈출자들을 돕는 데에 적극적이다. 워싱턴 유대인연합(The Jewish Federation of Greater Washington)이라는 단체는 최근 아프간인들의 미국내 정착을 돕기 위한 기부 캠페인으로 한 달 사이 65만 달러(한화 7억 7천만원)를 모금해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유대인뿐 아니다. 온정의 손길은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다. 월드 릴리프(World Relief)라는 복음주의 기독교 단체에는 최근 한 달 사이 아프간인들의 정착을 위한 기부액이 120만 달러(한화 14억원)나 모였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후원자가 15배나 증가했다.
워싱턴DC 인근의 천주교 자선단체를 찾아가봤는데, 그곳에도 기부 물품이 쇄도했다. 가톨릭 이민.난민 서비스(Catholic Charities Migration & Refugee Services)라는 단체에는 기부자들이 보내온 기저귀, 학용품, 부억용품, 매트리스, 침대 프레임 등 당장 생활에 필요한 살림살이들이 1층 회의실과 지하실을 가득 메웠다.
이곳에서 일하는 에밀리 우드는 최근 아프간 탈출자의 거처를 주선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려다 눈물이 쏟아졌다. 택배로 보내진 기부 물품이 복도를 꽉 채워서 문을 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아프간에 관대한 미국 여론‥″동맹에 보답″</strong>
전반적으로 아프간 탈출자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미국인들은 관대해 보인다. 아프간 철수 직전에 나온 워싱턴포스트-ABC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68%가 아프간 난민 수용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왔다.
미국이 개입한 전쟁, 미군이 철수하면서 생긴 위기라는 요소가 작용했을 터이다. 월세 한푼 받지 않은 집주인 신시아의 남편인 앤드루 세멜 박사의 경우가 그랬다.
유대인인 아내와 달리 그는 20년 간 테러와의 전쟁을 함께 수행한 동맹국에 보답해야 한다고 했다. 국제관계를 유독 강조한 그는 과거 저명했던 공화당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의 외교정책 보좌관이었다.
(루거 의원은 1991년 샘 넌 의원과 함께 ′넌-루거법′으로 유명하다. 소련의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이 과거 배치돼 있던 핵무기를 러시아로 이전하는 대가로 미국이 경제 지원을 하는 내용.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북핵 해법으로 검토되기도 했다)
그래서 ′동맹′ 아프가니스탄을 대하는 훈훈함은 좀 특별한 경우로 여겨진다. 미국인들이 보여준 인도주의적 손길을 뉴스로 전한 다음날, 그와는 확실히 구분해서 보게 되는 장면이 있었다.
텍사스주 델 리오에서 국경순찰대가 말에 탄 채 채찍을 휘두르며 아이티 난민들을 노예 다루듯 한 장면이 지난 한 주 세계인들을 경악케 했다.
결국 난민 심사 받는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아이티로 돌려 보냄으로써 마무리됐는데,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 정책이 트럼프때와 무엇이 다르냐는 비난이 나온다.
바이든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코로나 유행을 이유로 이민자들을 돌려보낼 수 있도록 한 공중보건법 42장(Title 42)을 유지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때 주택도시개발 장관을 했던 줄리안 카스트로는 ″트럼프의 정책이 바이든때에도 기본값(default)으로 설정돼 있다″고 하는 등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민정책을 완화하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어제(24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기자들도 이민 정책에서 트럼프 시절의 도덕적, 국가적 수치를 끝내겠다던 바이든의 대선 공약을 소환했다.
ABC의 레이첼 스콧 기자는 바이든에게 ″이번 주 국경에서 벌어진 일을 감안하면, 대선 때 한 약속 이행에 실패한 것 아닙니까? 이번 일은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 중에 일어났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혼란에 책임이 없습니까?″라고 따졌다.
그나마 바이든의 답변은 솔직했다. ″물론 제 책임입니다. 제가 대통령이니까요.″ 하지만 당장 이민정책을 변경할 뜻을 밝히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