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 경제부총리]
″그래서 저희들이 저희들 자체적으로 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KDI 등의 보고서를 인용하는 겁니다. KDI 연구 결과에 의하면 3%p의 최고세율 인하는 단기적으로 0.6%, 중장기적으로는 약 3.4%의 경제성장 효과와 세수증대 효과가 있다.″
여기서 추 부총리가 자신 있게 인용한 KDI 자료.
하루 전인 국정감사 첫날, KDI가 내놓은 보고서입니다.
′법인세 세율체계 개편안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정책과제′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
어떤 내용인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법인세 감세->주식 배당 증가, 모두가 이익?</b>
이 보고서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법인세를 내려주면 기업들이 세금을 아낀 만큼 더 투자할 것이고, 투자가 늘면 고용도 늘어나니 결국 경제가 성장한다는, 이른바 ′낙수효과′입니다.
여기에 추가로 새로운 논리가 등장했습니다.
기업 수익과 주식 배당을 연결한 겁니다.
′법인세 인하 -> 기업실적 개선 -> 주주 배당 증가′의 구조입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주식을 가진 개인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여기에 국민연금 수익까지 늘어난다고 강조합니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통해 기업실적이 중장기적으로 개선되어 보다 많은 배당소득과 주식평가차익이 개인과 국민연금에 귀속될수록 개인의 자산형성과 국민들의 노후는 보다 든든하게 보장된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법인세 감세가 일부 부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법인세 감세=부자 감세라는 주장은 정치 과정에서 제기된 구호에 불과하다.″
과연 그럴까요?
<b style=″font-family:none;″>경제성장 전망치 근거는 자기 복제?</b>
먼저 법인세율 3%포인트 인하로 경제가 약 3.4% 성장한다는 전망치에 대한 KDI 보고서의 근거를 찾아봤습니다.
″김학수(2017)는 산업별ㆍ연도별 특성 등 법인세 최고세율 이외의 다른 요인들이 미치는 영향을 일정 수준 통제한 후, 법인세 최고세율 1%p 인하(인상) 시 투자와 취업자 수가 단기적으로 각각 0.46%와 0.13% 증가(감소)한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KDI 보고서 작성자가 2017년에 쓴 논문이 근거입니다.
2017년 논문, 찾아보니 한국경제포럼 제10권에 수록된 ′새 정부의 법인세율 정책방향에 대한 제언′ 논문입니다.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법인세율 감세효과에 대한 분석결과는 미발간 원고 김학수 (2015b)에서 자가 추정한 결과이다.″
역시 동일한 저자의 2015년 논문에서 근거를 가져왔단 설명입니다.
2015년 논문을 찾아봤습니다.
″법인세율 인상의 경제 효과 분석,” 미발간 원고 학계의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한 논문입니다.
당연히 원문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학계에 발표하지 못한 본인의 논문을 근거로 다른 논문을 쓰고 그 논문을 근거로 KDI 보고서에서 법인세 인하가 경제 성장을 가져온다고 주장한 겁니다.
<b style=″font-family:none;″>법인세 인하의 경제 성장 효과는 평균 ′제로′…. 학계도 이견</b>
법인세 인하가 실제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학계에서도 그 효과를 놓고 여전히 치열하게 논쟁 중이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한 KDI와 같은 보고서와는 달리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논문도 많습니다.
지난 8월 유럽경제리뷰에 실린 논문입니다.
′법인세 인하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법인세 인하 효과를 분석한 42개 논문과 이들 논문 속 441개 사례를 검증했습니다.
이 논문은 법인세 인하의 경제 성장 효과는 평균적으로 제로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Our finding that the average effect of corporate tax cuts on growth is zero..″
법인세 인하가 긍정적인 효과를 낼 때도 있고, 부정적인 효과를 낼 때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연구개발 인센티브, 노동 공급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습니다.
법인세 인하 효과를 다룬 논문들은 성장률과의 순기능을 강조하면서 결과를 과대 보고해 긍정적인 영향을 강조하는 논문이 부정적인 논지의 논문보다 2.7~3배가량 많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배당소득 70%는 상위 1% 차지</b>
그러면 만약 KDI 보고서 주장대로 법인세 인하 효과로 배당금이 늘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개인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실제로 얼마나 될까요?
국세청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고용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입니다.
2020년 기준 배당소득의 94.6%는 주식 소유자 상위 10%에게 돌아갔습니다.
범위를 더 좁혀볼까요?
배당소득 73.7%를 상위 1%가 가져갔습니다.
좀 더 좁혀볼까요?
배당소득의 절반, 상위 0.1% 차지였습니다.
이런 비율은 지난 2016년부터 살펴봐도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배당금이 늘어난다고 해도 KDI 주장대로 모든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갈 일은 없다는 겁니다.
또한, 한국거래소 조사 결과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의 당기 순이익이 전년 대비 85%가량 증가했음에도, 순이익 합계 대비 배당금 합계의 비율, 즉 평균 배당성향은 오히려 4% 포인트 넘게 떨어졌다는 사실도 함께 말씀드립니다.
<b style=″font-family:none;″>정권 나팔수 우려의 현실화?</b>
다시 국감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법인세 인하 효과에 대해 객관적인 자료라는 인상을 주며 KDI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앞서 본대로 허점투성이 그 KDI 보고서입니다.
그런데 KDI는 석 달 전,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원장이 물러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홍장표 당시 원장은 사의를 밝히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총리께서 KDI와 국책연구기관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연구에만 몰두하고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국민의 동의를 구해 법을 바꾸는 것이 순리‥ 연구기관의 자율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홍 원장이 물러나고 두 달 뒤, 추 부총리는 KDI를 찾아가 ″KDI가 정부와 한팀이 돼 실질적인 정책 대안 발굴에 힘써달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