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 및 시위 입체분석′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입수한 건 지난 7월 말.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산하 시민소통비서관실에서 작성된 지 3주쯤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한 이래 용산 일대에서 열린 11건의 시위 현장을 일일이 다녀와서 기록한 이 보고서의 결론은, ′노동조합과 권력비판 시민단체의 결합을 차단해야 한다′였습니다. 차단해야 할 이유는, 광우병과 탄핵 촛불 등 대규모 동원 시위가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적 결론을 차치하고서라도, 문건에는 충격적인 표현들이 담겨 있었었습니다. ′권리요구 노동조합′으로 묶은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을 두고, ′최대 10만 명 예상 효과적인 설계 및 군사훈련 진행 중′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노조의 시위를 군사행동에 빗대 묘사한 겁니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노조에 적대적인 인식을 보인 건 이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12월에는 윤석열 후보 측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노재승 씨가 민주노총 시위를 두고 ″경찰의 실탄 사용에 이견이 없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또 비슷한 시기에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타결을 앞두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 특공대′ 투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보도에 앞서 일어났던 이런 사건들까지 고려하면, 문건의 내용을 가볍게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대통령실에서 만들어진 문건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집회와 시위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유출 경위′에만 집중한 대통령실</strong>
해당 문건이 작성된 경위를 묻는 취재진에게, 임헌조 전 시민소통비서관은, ″시민사회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전달받아 정리했지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파기했고, 윗선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느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MBC가 어떻게 문서를 입수했는지, 어떻게 대통령실 내부 문건이 흘러나간 것인지를 반복해서 물었습니다. 문건 전반의 문제적 인식은 설명하지 않고, ′유출′이라는 사고를 수습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었습니다.
MBC 보도 이후에도 문건 내용에 대한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대통령실 내부에서 강도 높은 감찰이 이뤄졌습니다. 대통령실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끝에, 문건을 유출한 것으로 알려진 행정요원은 해임됐습니다. 직원 관리 부실 등을 이유로 감찰에 넘겨진 임헌조 씨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면직처리가 된 비서관급 인사로 남았습니다.
사고가 터진 시민사회수석실에 대한 축소 개편도 예고된 상황입니다. 당초 새 정부에서 ′소통을 늘리겠다′는 취지로 강화됐지만, 디지털소통비서관직을 홍보수석실로 옮기고 공석이 된 비서관직을 당장 충원하지 않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실의 수습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해야 할까요?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대통령실이 말하지 않은 것들</strong>
MBC가 입수한 문건은 1개였지만, 실제로는 유출이 빈번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실의 감찰에서 국민의힘 의원실 출신 행정관과 행정요원들이 수시로 대통령실 내부 자료를 공유한 상황이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 ′문건 유출′이 만연했다는 게 확인됐다면, 이번 보도의 뜻밖의(?) 성과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색출′에는 열을 올린 대통령실은, 정작 해야 할 말은 아끼고 있는 모습입니다.
문건에서 ′입체 분석′ 대상이 됐고, 자신들의 본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매도당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식 사과는 지금까지도 없습니다. 민주노총,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즉각 성명도 내고, 대통령실 앞에서 항의 집회도 열었지만, 무응답으로 일관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대통령실 문건은 어떻게 나왔을까?</strong>
우연히 흘러들어온 문건이 있다면서 조심스럽게 다가온 제보자로부터 이 취재는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제보자는 처음 이 문건을 접했을 때, ″내가 뭘 잘못 본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민감한 내용의 대통령실 내부 문건을 언론사에 전달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시민소통비서관실′에서 헌법에 명시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무시한 문건이 버젓이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감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게, 결심의 계기였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문건 작성과 유출이, 단순한 일탈에 가까운 ′사고′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집회·시위를 바라보는 부정적 인식은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의 생각이 근본부터 바뀌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