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12일 오전 10시 35분. 긴급 환자를 이송하라는 임무를 받고 출동한 군 의무헬기 한 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헬기 조종사를 비롯해 모두 5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군의관이었던 김동근 씨도 크게 다쳤습니다. 추락한 헬기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약 5미터 높이에서 뛰어내리면서, 오른쪽 팔꿈치뼈가 조각나다시피 부러진 겁니다.
<b>″헬기가 이렇게 떨어진 상태면 엔진 과열에 의한 폭발로 2차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서, 빨리 탈출해야 하는데 낙상하면서 저 같은 경우에는 팔을 다쳤고요. 그때 다쳤을 때 한쪽 팔이 이렇게 덜렁거렸거든요.″ (김동근/당시 군의관)</b>
′팔을 움직이는 것이 기적′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큰 수술을 받은 김 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얻게 되면서 이른 전역을 하게 됐습니다. 사고로 인한 부상은 일상생활에서의 제약은 물론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인 김 씨의 업무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b>″저는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다 보니까, 심폐소생술이라든지 기관 삽관 같은 것을 잘 해야 하는데 이제 심폐소생술 같은 것을 할 때 또 100퍼센트 체중을 실어서 이렇게 압박을 해야 되는데, 각도도 이렇게 다 안 펴져요. 계속 재활 운동, 스트레칭으로 노력하고 있죠.″ (김동근/당시 군의관)</b>
김 씨는 지난 2월 보훈기관에 자신이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하는지 확인해달라고 신청했고, 6개월 뒤 대전지방보훈청은 그가 ′국가유공자′는 아니라며, 대신 ′보훈보상 대상자′로 인정했습니다.
보훈보상 대상자는 국가보훈제도 개편에 따라 국가유공자와 구분·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2년 7월 신설된 개념입니다. 단순한 공무 중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는 국가유공자에서 제외한다는 취지인데,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 대상자는 보훈 지원 급여 수준이나 국립묘지 안장 여부 등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 대상자를 나누는 기준은 ′대상자의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이 국가의 수호·안전보장이나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김 씨가 받은 결정 통지서에서도 이런 문구가 포함됐습니다.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입은 상이로 인정하지 아니하여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이를 다시 풀어본다면, ′환자를 넘겨받아 후송하라는 출동 지시에 따라 작전 대기 중이던 헬기에 탑승한 뒤, 환자를 실으려고 착륙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는 국가의 수호나 안전보장,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와 관련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김동근 씨가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 등을 통해 자신의 사건을 공론화하고, 보훈기관에 이의신청을 내고자 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자신이 당장 일련의 보상을 받게 되는지 여부보다는, 아직 부대에 근무 중인 옛 동료들과 앞으로 군에 몸담게 될 이들이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하고 싶었다는 것이 김 씨의 말입니다.
<b>″저는 단기 복무로 전역을 한 상황이긴 하지만, 거기서 계속 복무를 해왔던 분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환자들을 빠른 시간 내에 후송을 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열심히 해왔던 임무나 활동들이, 그렇게 임무를 하다가 나중에 본인들도 다치거나 문제가 생기게 되면 (저처럼) 국가유공자가 아니게 될 수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본인들이 계속 복무해 오면서 해왔던 사명감이라든지, 행위에 대한 그런 보람이라든지 이런 것들 전반을 부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고 해야 할까…″ (김동근/당시 군의관)</b>
과거 사례를 감안하면, 김 씨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다소 의아한 지점이 있습니다. 지난 2014년 나온 행정심판 결정 사례가 김 씨의 경우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군부대 환자를 수송하는 버스에 선탑 임무를 수행했던 간부가 이동 중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했는데, 이 경우 ′국가의 수호·안정보장 등과 직접적 관련성이 있는 직무수행′으로 인정을 받았던 겁니다. 현행 법령에 나온 기준이 다소 모호한 만큼, 일종의 ′회색 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b>″(법령에) 구체화해서 설명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은 들더라고요. 규정을 해석하다 보면 약간의 회색 지대가 있거든요. 조금 해석의 여지가 있다 보니까… 넓게 포함을 시켜주면 군 안에서 의료 응급 헬기가 떠서 환자를 구조하러 가야 하잖아요. 그건 항상 위험에 처해 있는 군의관들이나 의무 종사자들이 있는데, 제한적으로 규정을 하기보다는 조금은 폭넓게 그 규정을 좀 바꿔줬으면 더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이은수 변호사/前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b>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보훈기관 ″김 씨, 국가유공자에 해당″‥두 달 만에 바뀐 결정</strong>
김 씨의 사연을 보도한 지 석 달쯤 흐른 뒤,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대전지방보훈청이 재심의를 거쳐 ′김 씨가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한다′고 다시 결정을 내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달 대전지방보훈청이 새로 보낸 결정서에는 김 씨가 이의신청 당시 추가로 제출한 자료 가운데 육군항공사령부에서 회신한 자료가 언급됐습니다. 앞서 예시로 든 2014년 행정심판 결정 사례까지 포함하면 새로 제출된 자료는 2건, 나머지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번 결정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육군항공사령부 자료의 기록을 보면 직무수행의 긴급성이 확인된다″, ″헬기로 긴급환자 후송 임무는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으로 판단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보훈기관이 ′김 씨가 국가유공자가 아닌 보훈보상 대상자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던 내용을 다시 인용해보겠습니다: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 중 입은 상이로 인정하지 아니하여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동일한 사고에, 동일한 신청인인데도 두 달 만에 보훈기관의 결정이 바뀌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국가보훈처는 ′육군 측에서 추가로 회신한 자료를 확인한 결과, 일상적인 범주의 업무가 아닌 긴급 출동이었다는 점이 확인됐고, 이에 따라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씨에게 조심스럽게 소감을 물어봤습니다. 마침 병원에 출근 중이던 김 씨와의 전화 통화는 길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여운은 깊었습니다.
<b>″일단 결론이 이렇게 나오게 될 것이었으면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이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만약 이의신청 단계에서 끝나지 않았을 경우에는 행정소송이나 이런 것들까지 절차가 있을 텐데,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저 같은 경우는 이렇게 준비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나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는 경우는 그냥 (사건이) 끝나는 거잖아요.″ (김동근/당시 군의관)</b>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가 다치고 또 희생한 이들을 향한 대우를 보다 향상하는 것은 분명 필요합니다. 다만 현재 마련돼 있는 일련의 제도와 보상을 더욱 적확하고도 공정하게 적용하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보훈 제도가 미처 짚어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발생하지 않는지도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