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PD수첩팀

[PD수첩] '물박사' 교수의 '코로나 백신카드', 그가 믿는 물은 무엇일까

입력 | 2022-04-12 22:43   수정 | 2022-04-12 22:43
- “몸에 지니면 코로나를 피할 수 있다” 카드 홍보에 무료 배포까지 나선 교회들
- ‘코로나 백신카드’ 제작에, 수십 년 전 데이터 조작 논란 있던 ‘물의 기억’ 이론 활용돼

12일 밤 PD수첩 <물박사와 코로나 백신카드>에서는 교회에서 시작된 코로나 백신카드로 모습을 보인 물박사 김현원 교수에 대해 알아본다. 그는 이 카드를 병 나을 ‘유’, 알파벳 ‘N’을 붙여 ‘유엔카드’라 부른다. 이 카드를 몸 가까이 지니면 백신 못지않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코로나뿐 아니라, 각 질병과 관련한 3D 파형을 카드에 담으면 당뇨나 암등의 치료도 가능하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일까?
광주 안디옥교회, 이곳에서는 지난 7월 신도들과 관계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코로나19 예방 카드를 만든 김현원 연세대학교 원주 의과대학 교수를 초청했다는 내용. 그는 2002년부터 특별한 물로 병을 고친다고 알려졌다. 강단에 선 김 교수는 이 카드도 백신 못지않은 효과를 나타낸다며 “몇 천억 원의 돈이 없으니까 저는 (제대로 된 임상실험은 못 하고) 무료로 나눠주고 결과를 받는 거죠“라고 말했다. 박영우 담임목사와 신도들은 일명 ‘코로나 카드’를 신뢰하고 있었다. 박 목사는 “서울대 나온 의대 교수”라며 김 교수를 추켜세웠다.
코로나 백신카드가 처음 문제가 된 곳은 지난해 2월, 여의도 순복음교회다. 신도 수 56만여 명의 초대형 교회. 이영훈 여의도 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효능이 검증 안 된 카드를 예배 중에 홍보하면서 문제가 됐다. 카드 제작자인 김현원 교수는 순복음교회 신도들에게 50만 장의 카드가 기증됐다며 백신 임상 3상 실험에 비해 더 큰 규모라고 말해 논란을 키웠다. 이에 대해 최장용 식품의약품안전처 과장은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대상으로 허가 없이 임상시험을 하는 것은 위법행위라고 설명했다. 의료기기법 제10조에 따라서 의료기기 임상 시험을 하는 경우에는 식약처장에게 계획서를 승인받은 후 시험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 논란이 커지자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결국 사과했고, 카드 배포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회 관계자는 사과 이후 몰래 카드를 나눠주라는 교회 측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사과 이후 평택 순복음교회에서 코로나 백신카드를 신도들에게 나눠준다는 정보도 있었다. 강헌식 평택 순복음교회 담임목사는 예수의 초상까지 박힌 코로나 백신카드를 목에 걸고 다닌다고 했다. 교회에서 무료로 배포한 이 카드의 제작비는 누가 부담한 것일까. 오영교 평택 순복음교회 선교사는 교회에서 받은 강연비를 김현원 교수에게 줬다고 했다. 여태껏 ‘카드는 무료로 나눠준다’고 주장해왔던 김 교수. 강연비에 대한 PD수첩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국내에서 카드는 언제나 무료입니다. 내가 돈을 많이 쓴 것을 아니까 오영교 선교사는 본인이 받은 강연비를 제게 선물한 것입니다. 그게 내가 돈을 받은 것입니까?”
서울대와 옥스퍼드대 출신의 ‘화려한 스펙’을 가진 김현원 교수. 그의 백신카드는 희귀 질병을 앓던 딸 때문에 시작한 물 연구에서 비롯됐다. 호르몬 주사를 맞기 싫어하는 딸을 위해 서양의 과학 이론을 활용했다는 것. 그의 말에 따르면 딸에게 필요한 호르몬을 물에 녹인 뒤 희석하면 호르몬 약은 사라지지만, 호르몬 성분이 물에 파동 형태로 기억되어 약과 같은 치료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물의 기억’이라 불렀다. 김 교수는 ‘물의 기억‘ 이론으로 딸의 키도 조절했다고 주장했다. 성장호르몬을 기억시킨 물을 복용시켰다는 것.

김현원 교수가 활용한 ‘물의 기억’ 이론을 널리 알린 사람은 프랑스 과학자 벵베니스트 박사다. 1988년 과학잡지 <네이처>에는 ‘물의 기억’을 입증하는 그의 논문이 실렸다. 하지만 논문 발표되자마자 데이터 조작 의혹이 제기됐고, 당시 네이처지 논문 검증팀은 논문 데이터에 조작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후 노벨상 수상자인 몽타니에 교수가 이 이론에 대한 추가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유럽 주류 과학계에서 ‘물의 기억’ 이론은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지난 2006년경, 김현원 교수는 ‘물의 기억’을 활용해 사업에도 나섰다. 암, 당뇨 등 각종 치료제의 파동을 기억시켰다는 세라믹볼 제품과 물을 팔았던 것. 그러나 제품 제조사 관계자조차 세라믹볼의 특이점에 대해 “증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좋은 거면 그분한테만 팔겠어요? 세라믹볼 만드는 공장도 여러 군데가 있어요. 그게 의학적으로 의약품도 아니고 증거가 없어요.” 결국 2010년 김 교수는 의료기기법 위반과 사기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그에게 벌금 2천만 원의 유죄가 선고됐다.

그 뒤 김현원 교수가 들고 나온 것이 각종 질병에 효과 있다는 카드들이다. 그는 각종 치료제의 파동을 디지털화해 카드에 입력시켰다며 암, 염증과 자가 면역, 폐기관지 등 질병마다 특화된 카드를 팔았다. 실제로 ‘나름 효과를 봤다’는 카드 이용자도 있었다. “머리 뒤에 딱 대고 내가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 진짜 고급 오디오에서 듣는 것처럼 잘 들리는 거예요.” 김 교수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만든 온라인 카페에서, 코로나 백신카드를 소지한 덕에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PD수첩은 검증을 위해 사례자 소개를 요청했지만 김 교수는 거부했다.

한편, 이 카드를 수입해 판매한다는 독일의 다니엘 씨는 유엔카드의 치료효과를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단지 레저용품으로 팔 뿐이라는 것. 그런데도 김 교수는 독일에서 카드의 치료효과가 입증된 것처럼 홍보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논란을 일으킨 김 교수 탓에, 그가 소속한 연세대학교도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징계도 내렸지만 해결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 학교에서 김 교수를 징계한 건 모두 세 차례, 그중 정직 3개월이 최고 수위의 처분이었다.

지난 6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코로나 백신카드와 관련, 과장 광고 행위 금지 규정(관련법 제26조 7항)에 근거해 김현원 의과대학 교수를 형사 고발했다. 특허청 또한 특허 무효심판을 청구했다. 기존 이론을 넘는, ‘뉴패러다이머’를 자처한 김 교수. 그는 PD수첩의 수차례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다만 물의 기억력과 관련된 제품을 2016년 이후 공식적으로는 제공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종교재판의 관점에서 보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우려를 표한, 입증되지 않은 이 카드의 효과를 여전히 누군가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