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6-18 07:36 수정 | 2022-06-18 07:41
2008년 6월 17일 오후 8시 30분.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앞 골목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렸습니다.
[목격자]
″갑자기 사람이 쓰러지더라고요. 저 사람 좀 잡아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보니까 피 냄새가 진동하더라고요.″
전 부인과 그녀의 남자친구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찌른 황주연은 범행 직후 왕복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그대로 달아났습니다.
피해자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전 부인은 끝내 숨졌습니다.
그리고 1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황주연은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 탓에 사망설부터 밀항설, 성형수술설까지 각종 추측만 난무한 상황입니다.
엠빅뉴스는 당시 이 사건의 수사팀장이었던 천현길 서울 중랑경찰서 형사2과장과 함께 황주연을 추적해 봤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황주연은 왜?</strong>
황주연은 지난 1996년 결혼을 하는데, 결혼 초기만 해도 부부 사이는 좋았다고 합니다.
[황주연/어머니]
″내가 3년 동안 우리 집에서 데리고 살았으니까 좋았지. 그리고 며느리가 그 각시가 음식도 잘하고 내가 며느리하고 정이 안 떨어졌어‥ 그렇게 둘이 좋게 살았는데‥″
그런데 결혼 7년 만인 2003년 이혼합니다.
하지만 곧 재결합했고 2006년 다시 이혼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혼 배경을 두고는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
황주연 측은 건강이 안 좋던 부인이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혼해야 한다고 해 이른바 ′위장이혼′을 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부인이 좀 병이 있어서 생활보호 대상자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혼인 관계가 있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일단 우리가 임시로 헤어져 있자고 해서 이렇게 이혼하는 데 동의를 했는데, 그 이후에 이제 연락을 끊어버리고 하다 보니까 부인에 대해서 굉장히 큰 배신감이 있었다고 이렇게 주변인들이 얘기하거든요.″
하지만 전 부인 측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결혼생활 동안 지속된 가정폭력과 황주연의 외도가 이혼의 근본 원인이었다는 주장입니다.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부인 쪽 얘기를 들어보면 황주현이 평소에도 가정폭력이 심했고 결혼 생활 동안에도 폭력적인 상황을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황주연 입장에서는 지방에 있던 모 여자랑 만나서 사귀고 있던 관계에 있어서 이혼을 요구하기도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의견대립 있다가 가정 폭력을 참다못한 피해자 입장에서도 이걸 기화로 해서 헤어지자 했는데‥″
그래도 의문은 남습니다.
왜 이혼 직후가 아니라 2년이나 지난 뒤에야 범행을 저지르게 된 걸까?
천 과장은 당시 범행을 전후로 황주연과 전 부인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관계가 급격히 범행 직전부터 안 좋아졌던 것 같아요. 갑자기 이제 연락이 끊어지고 멀어지게 된 무슨 계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거리를 두고 연락이 안 되니까 그때부터 찾기 시작하면서 계속 복수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황주연이) 범행 직전부터 좀 이상했다는 말이 나왔거든요. 갑자기 혼자 중얼중얼하고 막 혼잣말도 하고 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이런 얘기가 나오거든요.″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치밀하게 계획된 범행</strong>
전 부인과 연락이 되지 않자 황주연의 집착은 점점 심해졌다고 합니다.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황주연이 부인의 소재를 찾기 위해서 (흥신소에) 전화번호와 IP를 주면서 부인의 위치 파악을 의뢰했죠.″
흥신소까지 동원했지만 전 부인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딸을 이용합니다.
전 부인에게 ″사업이 망해 더 이상 딸을 돌볼 수 없다″며 딸을 서울로 보낼 테니 마중을 나오라″는 메일을 보낸 겁니다.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부산에서 사업을 하다 망해서 곡성에 눌러앉았다. 곡성에서 딸만 버스 태워서 보낼 테니까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네가 맞이를 해라라고 해서 메일을 보내니까 그때야 이제 피해자가 부랴부랴 전화가 오는 거죠. 정말 딸만 보내면 안 되니까. 그런데 이게 사실 위장이었던 거죠.″
범행 당일 황주연은 딸을 태운 트럭에 위장용 가발과 흉기를 챙겨 전 부인을 만나러 갑니다.
트럭에서는 범행에 실패할 것을 대비해 플랜B까지 마련해 놓은 것으로 보이는 흔적도 발견됐습니다.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납치를 하거나 해가지고 트럭에 싣고 제3의 장소로 이동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옷장도 있고 거기에 김장용 비닐도 있고 한 게 그런 걸 준비한 것 같아요. 범행이 성공을 못 했으면 납치하거나 아니면 뭐 살해된 시신을 옮기려고 고려하고 온 게 아니겠나 이렇게 추정을 하는 거죠.″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도주도 계획된 범죄의 일부</strong>
황주연은 범행 다음 날인 2008년 6월 18일, 매형에게 전화를 걸어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했습니다.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내가 좀 사고를 쳤다. 그런데 딸이 거기 있으니까 딸하고 트럭을 좀 잘 챙겨 달라 나는 지금 숨을 끊으러 간다. 이런 딱 표현을 썼어요.″
황주연이 전화를 건 시간은 10시 49분, 발신지는 신도림역사 안에 있는 공중전화였습니다.
그 뒤 영등포시장역을 거쳐 강남역에서 다시 매형에게 같은 내용으로 전화를 한 뒤 사당역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시 삼각지역으로 이동해 약 40여 분간 머문 뒤, 14시 44분 범계역 CCTV에 포착된 게 마지막 모습입니다.
황주연의 동선을 보면 서에서 동으로, 다시 북에서 남으로 서로 연관성이 없는 장소를 옮겨 다니며 의도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노출한 듯합니다.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겁니다.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일부러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신도림 쪽에서 한번 (전화를) 하고 강남에서도 (전화를)하고 했는데. 이게 교통카드를 찍고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이 정확히 연결이 안 돼요. 역 하나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택시를 타고 갔는지는 확인 안 되지만 띄엄띄엄 끊겨 있거든요.″
경찰을 비웃듯 의도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선택적으로 노출하며 도주한 건데 황주연은 평소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자기는 범인들이 범행한 이후에 잡히는 거 보면 이해가 안 된다. 자기는 안 잡힐 자신이 있다.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성형수술을 한 뒤 어딘가에서 정체를 숨기고 살아갈 수는 있지만, 가능성 측면에서는 매우 낮다고 분석했습니다.
비용이 비싼데다가 당시에는 황주연의 얼굴이 공개수배 등으로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수술을 받는 자체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얼굴이)언론에 알려졌었고 해서 쉽지는 않을 것처럼 보여집니다. 또 금전적인 측면이나 그런 것도 많이 중요하고‥″
[배상훈/프로파일러]
″성형 수술을 할 수는 있습니다마는 그럼 살려고 하면 돈이 필요한 거잖아요. 성형수술을 해도 살아가려면 누군가의 신분이 있어야 하는 거고‥ 현실적이지 않은 거죠.″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밀항설</strong>
밀항설에서는 천 과장과 배 교수 두 사람의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천 과장은 당시 수사 결과 밀항은 거의 불가능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밀항은 거의 불가능해요. 여권 브로커라든지 이런 사람과 통화한 내역도 없고 (황주연은) 해외 경험이 전혀 없거든요. 여권을 만들고 뭐 하고 했다 하더라도 일단 밀항을 하게 되면 그쪽도 한국 커뮤니티가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 눈에 금방 띄거든요.″
하지만 배 교수는 14년 전 상황을 고려하면 가능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주장했습니다.
[배상훈/프로파일러]
″14년 전에는 비교적 밀항이라고 하는 것이 돈만 주면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준비만 하면 나갈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간 사람도 그때는 많았고요. 신분을 사는 것도 어렵지 않았거든요.″
그렇다면 황주연은 어디에 있을까?
천 과장은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의 사례를 주목합니다.
조력자, 특히 여성에게 의지해 어딘가에 숨어 살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신창원이 검거되지 않았던 케이스가 그런 케이스였거든요. 여자의 도움을 받아서 집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가스 수리하시는 분이 우연히 그 집에 갔다가 신고하는 바람에 검거한 케이스가 있었거든요. 황주연도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한 것 같아요. 평소에 언변도 뛰어나고 여자들에 대해서 굉장히 매너가 좋았다는 얘기가 있거든요.″
하지만 배상훈 교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배상훈/프로파일러]
″(황주연을)보조해줘야 하는 여성이 자기 인생 10년을 넘게 무슨 이유로 황주연한테 그걸 하겠냐 이 말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부분인 거죠.″
대신 신분을 세탁해 외국인의 모습으로 국내 어딘가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배상훈/프로파일러]
″황주연의 심리적 특성, 행동의 특성에 따르면 이제 외국인 신분으로 사는 형태가 가능하다고 봐요. 한국에 살아도 지금 모습이 아니라 외국인의 모습 예를 들면 조선족 몽골인 한족 중에 하나 형태 그 가능성이 저는 가장 높다고 봅니다.″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지금도 지방에 보면 인터넷이라든지 이런 TV나 그런 걸 안 보고도 사는 곳이 많이 있거든요. 이 친구는 또 포도 수매라든지 이런 농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일도 잘 도와주고 합니다. 누군가와 같이 이렇게 있으면서 그런 게 외부와의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으면 경찰의 추적의 손길이 미치지 않으니까‥″
두 전문가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황주연은 국내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지하거나 아니면 신분을 세탁해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황주연은 지금 우리 곁에 있다″</strong>
범행 전 점을 봤다는 황주연.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황주연) 통화 내역 중에 보니까 남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네 번 통화한 게 있더라고요. 혹시 이 절에 혹시 은신한 게 아닐까 싶어서 확인해 봤더니 그분이 황주연을 기억을 못 해요. 왜 기억을 못하시느냐 했더니 자기가 점을 봐주는 사람인데 내가 신수를 봐줬을 거다 아마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신의 전 부인을 잔혹하게 살해한 황주연도 불투명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시민은 황주연이 잊힌 기억으로 남지 않게끔 해달라는 당부를 남겼습니다.
[시민]
″그때 떠들썩했다고 해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기억이 나겠어요? 방송을 더 타야 사람들이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잊힌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황주연이 잊힌 기억으로 남지 않으려면 시민의 제보가 절실한 상황.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경찰이 못 잡은 것에 대해서는 저희가 수사팀 인원으로서도 드릴 말씀이 없지만..전혀 안 움직이고 (카드 같은걸) 전혀 안 쓴다고 그러면 신이 아닌 이상 그냥 잡을 수가 없어요. 시민 여러분께서 만두귀 모양이라든지 (황주연의) 신체적인 특징을 좀 기억하고 계셨다가 보시고 제보를 해 주시면‥″
천 과장은 관할인 서초경찰서를 떠나서도 14년째 황주연의 흔적을 쫓고 있습니다.
황주연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천현길/당시 수사팀장]
″범행 당시에 어떤 심정으로 그런 범행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1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지금이라도 자수를 해서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