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박소희

[World Now] 러, 우크라 정체성은 지우고, 비현실적 요구는 내세우고

입력 | 2022-03-29 11:47   수정 | 2022-03-29 11:47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문화 유산을 파괴해 우크라이나 정체성 지우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러, 우크라 전국 최소 39곳 역사·문화시설 파괴</b>

키이우에 있는 비영리 정치단체 `트랜스애틀랜틱 대화센터`에 따르면 러시아 침공이 시작된 이후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최소 39곳의 주요 역사·문화 시설이 파괴되거나 약탈당하고 폐허로 변했습니다.

하르키우 미술관 미즈기나 발렌티나 관장은 ″예술작품 2만5천여 점이 있는 미술관 주변에 러시아군이 쏜 포탄이 떨어져 건물이 흔들리고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면서 ″직원들이 작품을 안전한 장소로 옮겨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미술관보다 하루 먼저 포격을 받은 17세기 유산 하르키우 홀리 도미션 성당은 피해를 면치 못했습니다.

성당 안에 대피해 있던 민간인들은 다치지 않았지만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이 깨지고 일부 장식물들이 심하게 파손됐습니다.

또,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는 마리우폴 시의회는 sns를 통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 2천여 점이 전시된 아르히프 쿠인지 미술관을 파괴했다고 밝혔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80년만에 나치가 돌아왔다. 국제법상 전쟁범죄″</b>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지난 26일 sns를 통해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1만5천여 명이 학살당한 드로비츠키 야르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파괴했다면서 ″정확히 80년 만에 나치가 돌아왔다″고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7곳 있으며 1954년 체결된 헤이그협약은 역사적 기념물과 문화유산을 목표로 공격하는 행위를 국제법상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가 저지르고 있는 문화유산 파괴가 이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문화부 이리나 포돌랴크 전 차관은 ″러시아가 주택과 병원, 학교는 물론 문화유산까지 목표로 삼고 있는 것 같다″며 ″그들은 문화 유산과 역사, 정체성, 독립국으로서의 우크라이나를 지도에서 아예 지워버리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군의 역사문화 시설 파괴가 이들 시설을 표적으로 삼은 것인지 민간인에 대한 공격 중에 발생한 부수적인 피해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러시아군은 침공 이후 민간인 거주지역 등 비군사시설까지 장거리 포격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노스웨스턴대 요하난 페트로프스키-슈테른 교수는 ″러시아의 역사문화시설 파괴는 고의적일 가능성과 부수적인 피해일 가능성이 모두 있지만 `고의적인 파괴`로 볼 여지가 더 많다″며 ″러시아는 점령지 도서관에서 우크라이나 역사 교과서를 압수해 불태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러시아, 수차례 우크라이나 정체성 부정</b>

러시아는 침공 전후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월 21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는 독립국이라는 게 없다. 현재의 우크라이나는 전적으로 러시아, 옛 소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페트로프스키-슈테른 교수는 ″푸틴은 1860년대 러시아 관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크라이나어나 우크라이나 국민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는 없기 때문에 주권도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리나 포돌랴크 전 차관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러시아의 주장은 순전히 허구이고 아픈 사람의 상상일 뿐″이라며 ″이는 푸틴이 선택한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의 한 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중재자′ 터키, ″러의 돈바스 독립 요구 비현실적″</b>

이런 가운데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는 터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돈바스 독립 요구는 비현실적이라는 반응을 내놨습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최측근 아브라힘 칼린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27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요구들은 크름반도와 돈바스에 사는 우크라이나인에게는 타협할 수 없는 선″이라면서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 주권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세계 각국처럼 터키도 크름반도의 합병을 승인하지 않았다. 중국조차도 그렇다″면서 ″러시아는 다른 요구안을 생각해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칼린 대변인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날 준비가 됐지만 푸틴 대통령이 지금까지 거절해왔다″고 전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든 다른 곳에서든 두 정상이 만날 자리를 마련할 준비가 돼있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터키 대통령, 푸틴과 오랜 관계로 소통 가능</b>

에르도안 대통령은 특히 푸틴 대통령과 오랜 관계를 토대로 소통이 가능하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칼린 대변인은 ″분명히 푸틴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조언, 제안에 귀를 기울인다″면서 ″누군가는 러시아와 대화를 해야 하고, 러시아가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대화 상대가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대화가 이뤄지지 못하면 전쟁은 수개월, 수년간 이어질 것이고 세계는 이같이 길어지는 전쟁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터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협상의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섰으며, 오늘 터키에서는 5차 평화 회담이 열릴 예정입니다.

회담을 앞두고 지난 25일 러시아군은 ″`1단계 작전`은 대부분 이행했다″며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역의 완전한 해방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두고 러시아 목표가 개전 초 우크라이나 전역 장악·친서방 정권 교체에서 축소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으로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러시아가 목표를 축소해 출구전략을 마련하려는 포석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