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손구민

[서초동M본부] "공수처를 운영하지 말라는 거냐"‥공수처장의 '민주당 저격'

입력 | 2023-08-24 15:30   수정 | 2023-08-24 15:34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국회 법사위 구석‥김진욱 공수처장도 앉아있었다.></strong>

지난 8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여러 피감 기관의 2022년도 결산 보고를 받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거센 설전이 뉴스를 장식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이 자리에는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도 출석해 앉아있었습니다.

김 처장은 법사위 회의실 가장 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관장마다 뒤에는 참모 수십 명이 무리지어 앉아있었지만, 김 처장을 보좌하러 온 공수처 참모는 단 1명 뿐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진행된 회의 내내 김진욱 처장은 법사위원들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어서야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이 ″여태까지 구속영장과 체포영장 1건도 발부받지 못했다″며 공수처를 비판했습니다. 민주당 소병철 의원이 ″그래도 성과가 있으면 적극 알리라″고 조언한 게 사실상 전부입니다.

이날 법사위의 풍경은 마치 공수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김진욱 ″도대체 공수처를 운영하라고 만든 법이 맞느냐″></strong>

김진욱 처장은 이렇듯 국회를 나와도 무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혹은 두드려맞기만 했습니다. 결국 김 처장 본인도 답답했는지 김도읍 법사위원장에게 발언권을 요청했습니다. 김 처장이 내놓은 발언은 상당히 이례적이었습니다.

″공수처법 명칭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설치가 문제가 아니라 운영을 할 수 있게 최소한의 인원이 돼야 되는데요‥ 저는 공수처를 운영하라고 만든 법인지, 운영하지 말라고 만든 법인지‥ 이건 운영하지 말라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김도읍 위원장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공수처법 만들어지는 과정 다 보지 않았냐, 민주당이 밀어붙쳐서 만든 것 아니냐, 그 결과를 지금 보는 거다.″ 2020년 공수처법을 만든 건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니 공수처장을 거들며 민주당을 겨냥한 겁니다.

김 처장은 김도읍 위원장의 말에 ″그래도 위원장님께서 알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답했습니다. 자신의 발언이 민주당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해도 좋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임기 내내 중립성 논란을 피하려고 정치적인 발언은 하지 않았던 그가, 노골적으로 민주당을 저격한 겁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김진욱의 민주당 ′저격′ 이유는?‥인건비가 남는 공수처></strong>

김 처장이 이토록 강경한 발언을 한 이유는 뭘까. 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을 통해 공수처 2022회계연도 결산 보고서를 받아 봤습니다.

2022년 공수처가 쓴 세금은 183억 200만원입니다. 편성된 예산 237억 2천1백만원 중 77.2%를 집행했습니다. 예산의 4분의 1을 안 썼다는 겁니다. 내년 예산을 더 받아내기 위해서, 받은 예산은 다 쓰는 게 보통 기관일텐데 예산이 남은 겁니다. 이마저도 60%대를 기록한 재작년 예산 집행율보다는 나아진 겁니다.

일부는 내년으로 넘겼습니다. 전자형사사법시스템, ′킥스′ 운영 비용 16억원은 내년 회계연도로 이월시킨 겁니다. 하지만, 37억 7천 6백만원은 단순 불용, 그냥 안 썼습니다. 불용 예산 37억 중 인건비가 14억원, 물건비가 18억원입니다. 결론적으로 돈을 줄 사람도, 돈을 쓸 사람도 없었던 겁니다.

실제 공수처는 직제상 인권감찰관이 국장 직급인데 아래 직원이 1명, 방대한 킥스를 운영해야 할 부서 직원도 1명입니다. 수십 개 언론사를 대응해야 하는 대변인실도 대변인과 직원 1명이 전부입니다.

더군다나 검사는 정원 25명 중 21명만 있고, 수사관도 정원 40명 중 39명이라 정원 미달입니다. 개별 검사들의 수사 능력은 논외로 하더라도, 국가의 고위공직자 비리를 도맡아 수사하라고 만든 수사기관 규모를 지역 소규모 검찰청 수준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정원 좀 늘려주세요″‥국민의힘은 반대·민주당은 방치></strong>

공수처가 인력 문제를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사실 출범 직후부터 꾸준히 국회에 ′어필′ 해왔습니다. 그렇다고 김도읍 법사위원장의 말대로 모든 게 민주당 탓은 아닙니다.

공수처 출범 초기인 2021년 6월, 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공수처 수사관 정원을 50명으로, 행정 직원을 40명으로 늘리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가장 최근으로는 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작년 12월 공수처 검사를 4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반대로 공수처 인원 증원 관련 개정안은 모두 계류 상태며, 올해부턴 민주당도 관심이 없습니다.

임기 약 다섯 달을 남겨둔 공수처장은 다급할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이제 올해 연말이 다가오면 신임 공수처장 후보 하마평이 오르내리기 시작할 겁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판사 출신 김 처장과 반대로 검사 출신 처장을 임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임기 5달 남겨 둔 초대 공수처장‥국회 내밀 성적표는?></strong>

김진욱 처장 입장에선 임기를 마칠 때까지, 초대 처장으로서 어떻게든 인원을 늘려 조직을 안정화하고 싶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수사 성과가 필요합니다. 뭐라도 국회에 말을 할 게 있어야 하니까요.

공수처가 맡았던 사건 중 가장 사회적 관심이 컸던 ′고발 사주′ 의혹 재판은 재판부가 공소 사실부터 하나씩 문제를 제기하는 등 전망이 밝진 않아 보입니다. 감사원의 전현희 전 귄익위원장 표적 감사 의혹도 지난 2월 사건 접수 뒤 사실상 아무런 진전이 없습니다.

최근 공수처의 가장 큰 현안인 고위 경찰 간부 뇌물 의혹도 당사자인 김모 경무관 구속영장이 기각됐습니다. 그나마 영장전담판사가 ″김 경무관이 사업가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취한 건 인정된다″고 하며 범죄 사실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한 게 다행입니다.

오는 10월, 공수처는 출범 두 번째 국정감사를 받게 됩니다. 지금대로라면, 아마도 다른 법사위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찬밥 신세가 될 것 같습니다. 국감이 끝나면 본격적인 총선 국면에 접어듭니다. 그러면 공수처의 인력 증원 숙원 사업은 적어도 다음 국회가 출범할 때까지 아무 진전이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김진욱 처장의 타임 라인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