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곽동건

암 투병 중 은행 갔다가 "어?!"‥여지없이 발동한 그 남자의 '촉'

입력 | 2023-08-30 11:12   수정 | 2023-08-3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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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의 한 은행.

사람들로 북적이는 현금인출기 앞에서 한 30대 남성이 ′먼저 하시라′며 다른 고객에게 차례를 양보합니다.

기기를 누르다가 다른 고객이 오자 또 양보합니다.

그런데 이 남성, 휴대전화를 꼭 쥐고 두리번거리기도 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때 검은 모자를 쓴 A씨가 재킷을 벗어든 채 은행으로 들어왔고, 남성은 이번에도 ″입금이 오래 걸리니 먼저 하시라″며 양보하려 합니다.

그 순간 A씨, 뭔가를 직감한 듯 갑자기 손가락으로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다가갔고, 남성은 다급하게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숨깁니다.

그런 남성에게 A씨는 지갑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줍니다.

바로 경찰 공무원증이었습니다.

사실, A씨의 정체는 청주상당경찰서 소속의 3년 차 경찰관인 정세원 순경.

지난해 10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암 투병을 위해 휴직을 한 상태였습니다.

항암 치료를 위해 고향인 익산에 내려왔다가 우연히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겁니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한 정 순경이 신분을 밝히고 돈을 어디로 입금하는지 묻자, 남성은 ″잘 모르니 담당 직원과 통화해 보라″며 휴대전화를 건넵니다.

그러나 정 순경이 통화를 시작하자마자 전화로 연결된 상대방은 ″금 거래를 하는 것″이라는 등 말을 얼버무리다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보이스피싱을 확신한 정 순경은 112에 신고한 뒤, 남성이 도망치지 않도록 계속해서 말을 걸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당시 정 순경은 항암 치료를 위해 가슴에 약물 투여 장치를 달고 있어서 거동이 여의치 않은 상태였습니다.

곧 다른 경찰관들이 도착했고, 도주까지 시도했던 남성은 얼마 못 가 경찰관 다섯 명에게 둘러싸여 현행범으로 체포됐습니다.

경찰은 송금책인 이 남성이 갖고 있던 보이스피싱 사기액 1천7백만 원을 회수해 피해자에게 무사히 돌려줬습니다.

정 순경은 ″보이스피싱 범죄를 수사한 적 있었는데, ′먼저 하시라′는 한마디에 느낌이 왔다″며 ″휴직 중이지만 경찰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정 순경이 병마를 물리치고 다시 힘차게 경찰의 꿈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응원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습니다.

(화면 제공 : 충북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