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김상훈

[서초동M본부] 4년 소송 끝에 '패소'‥어머니는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입력 | 2023-10-21 08:21   수정 | 2023-10-29 09:51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박미숙씨 돌아가셔도 됩니다″‥법정 떠나지 못한 원고</strong>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1단독 재판부의 법정. 판결 선고는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원고석에 앉아있던 박미숙씨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박미숙씨 돌아가셔도 됩니다″ 판사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박미숙씨는 법정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왜 대한민국 법원이 자신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는지, 너무나 답답하다는 듯, 몇 번이고 반복했던 호소를 다시 쏟아내며 재판부에 물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군이 그렇게 아이를 죽여놓고, 명예롭게 보내주는 책무는 안 해 놓고, 몇년 내내 이 재판에 서게 한다는 건 아이 고통을 저희에게 되새김질 하는 겁니다. 이제 그런 행위를 멈춰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strong>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입대한 아들이 영정사진으로 돌아왔다‥4년 걸린 법정다툼</strong>

아들 홍정기 일병이 입대한 뒤 부대는 군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의 사진 99장을 보내줬습니다. 사진들은 고스란히 어머니 핸드폰에 저장돼 있습니다. 그 사진 중 한 장이 아들의 영정사진이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습니다.

지난 2016년 3월초 입대 7개월차 홍 일병은 제2보병사단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랑니를 뽑은 뒤 구토와 알 수 없는 멍 자국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군 병원은 감기약과 두드러기약을 처방해줬지만, 병세는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외출을 나가 찾아간 민간병원은 혈액암이 의심된다며 검사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부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3월 22일, 새벽 2시쯤 홍 일병은 구토 증세를 호소해 의무대로 이송됐습니다. 하지만, 의무대에선 날이 밝은 뒤 외진이 예약돼 있으니 일단 자라며 홍 일병을 돌려보냈습니다. 밤새 토하며 한숨도 못 잔 홍 일병은 오전 11시 반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불과 3일 만에 숨졌습니다. 백혈병에 따른 뇌출혈이었습니다.

[박미숙/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살릴 수 있던 기회를 다 놓쳤습니다. 나라를 지키러 간 내 아들을 우리 군이 죽였습니다.
우리 군이 죽인 죽음에는 더 책임감을 느끼고‥″

홍 일병의 죽음은 순직으로 인정됐지만 순직 3형으로 분류됐습니다. 위험을 무릅쓴 직무 도중 숨졌거나 국가 수호나 안전보장과 관련이 있다면 1형과 2형으로 분류돼 국가유공자로 지정됩니다. 순직 3형은 처우수준이 낮은 보훈보상대상자가 됩니다. 당시 군사망사고진상조사위원회는 훈련 도중 홍 일병이 숨졌으니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봤지만 국방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국방부는 8년이나 지난 이달초, 뒤늦게 슬그머니 홍 일병을 순직 2형으로 올렸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군 스스로 인정한 ′무책임한 방관′‥그런데도 ″과실이 없다″?</strong>

아들이 숨지고 3년 뒤인 2019년. 박미숙 씨는 군 인권센터 등의 도움을 받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고 박미숙 씨 등 유족, 피고 대한민국, 법률상 대표자 법무부 장관.

피고 대한민국은 두가지 이유로 위자료를 줄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먼저, 국가배상법상 이중배상금지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홍일병의 순직으로 유족이 사망보상금이나 보훈급여금을 이미 받거나 받고 있어서 다시 이중으로 배상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박정희 정권이 베트남전 희생자들에게 배상금을 주지 않으려고 만든 제도를 들고 나온 겁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이중배상 금지조항 (1967년 도입)</strong>
국가배상법 제2조: 군인·경찰공무원 등이 직무 집행으로 전사·순직한 경우 본인이나 유족이 연금 등 보상을 지급받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또, 피고 대한민국은 두명의 군의관과 국군춘천병원에서 적절한 진단과 처치를 해 의료상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실이 없으니 국가배상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는 겁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재판 과정에서 군의관들이 징계를 받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됐습니다. 홍 일병이 숨진 2016년 11월, 홍 일병을 제대로 진료하지 않은 군의관 2명은 각각 감봉 1개월과 감봉 3개월 징계 처분을 받았다는 겁니다. 군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일부 인정한 건데, 그런데도 국가는 황당한 주장을 펼친 겁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카메라 앞에 선 한동훈 장관 ″법 바꿔서라도 배상하겠다″</strong>

올해 초, 법원은 국가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흐지부지 재판을 끌지말고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화해하자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국가는 현행법, 이중배상 금지조항을 근거로 이마저 거부했습니다.

지난 5월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한 장관은 홍정기 일병 재판의 핵심 쟁점인 국가배상법을 개정하겠다고 했습니다. 특히 홍일병 유족도 배상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보통 법을 고치면 소급 적용이 안 되지만, 이번에는 부칙으로 이미 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라면 개정 내용이 적용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
″현재 대한민국 국력이 커지고 다른 참사 희생자와 형평성 생각할 때 개정할 때가 됐습니다. 아울러 개정안은 부칙을 통해 시행 이후 국가배상사건에 적용하되 시행 당시의 법원에 계속 중인 국가 배상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박미숙 씨는 그제야 웃었습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8년 만이었습니다. 국가가 이제는 잘못을 인정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박미숙/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 가족이 온전하게 살지 않겠습니까? 아들 낳은 부모가 더 이상 죄인이 되면 안 되잖아요.″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법 바꾼다″ 다섯 달 지났지만‥결국 1심 판결은 패소</strong>

다시 첫 장면, 지난 13일의 법정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단독 재판부는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한 장관의 공언 5달이 지났지만, 아직 법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10.13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 재판부
″유족 입장에서 많이 안타까운 사건이고 군 의료 자체 문제에서 사망한 것이 여러 곳에서 증명돼 다퉈볼만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미 군인연금법, 사망보상금 등 다른 제도에서 보상 체계를 마련했기 때문에 이중배상 문제가 있습니다. 이중배상금지원칙이 헌법도 규정하고 있고 국가배상법 2조 1항에도 규정돼있어 현행법 체계에서는 일단 중복해서 다시 위자료를 청구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게 1심 재판부의 입장입니다. 항소입장을 14일 내로 제출하시면 됩니다. 선고를 마치겠습니다.″</blockquote>

원고석에 앉은 박미숙 씨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미 선고를 마친 재판부도 5분간 귀를 기울이며 박씨를 위로했습니다.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재판부 ″박미숙씨 돌아가셔도 됩니다″

박미숙 씨 ″군대에서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건데‥ 한동훈 장관도 법이 잘못됐다고 개정하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 그게 어떻게 하나도 적용이 안되는지‥ 국가에서 돈을 받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아이 죽음에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중략)‥이렇게 판단돼 너무 안타깝습니다.″ (중략)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최소한 건강한 아이를 보냈으면 그대로 돌려받아야 저희의 의무가 있는 겁니다. 군이 그렇게 아이를 죽여놓고 명예롭게 보내주는 책무는 안해놓고 몇년 내내 이 재판에 서게 한다는 건 아이 고통을 저희에게 되새김질 하는 겁니다. 이제 그런 행위를 멈춰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strong>

재판부 ″판사는 재판으로 말하는 것이라 더 들을 말이 없고, (중략)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박미숙 씨의 말씀대로 군대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이런 취지의 판결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strong> 뒤에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아 마치겠습니다.″</blockquote>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또 다른 홍정기 일병이 없도록‥″이 싸움을 끝내게 해 주세요″ </strong>

국가인 정부가 불합리하다며 법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또 다른 국가인 법원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결국 박씨는 싸움을 계속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패소 이후 법무부는 MBC의 질의에 대해 ″그 동안 입법예고 절차와 관련 부처 의견 조회, 법제처 심사를 거쳤고, 조만간 국무회의를 거쳐 10월 중에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해왔습니다.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부칙상 소송을 진행 중인 경우여야 개정내용을 적용받습니다. 결국 박 씨는 항소를 해서 재판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항소심 선고까지 법 개정 절차가 완료된다면 박씨는 위자료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지난 19일, 피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법정다툼은 그래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고 박미숙씨는 이번엔 법정 밖 기자회견장에서 다시 한번 호소했습니다.
10.19 박미숙 씨 기자회견 중

″제가 법과 재판을 통하여 얻고 싶은 것은 배상금 얼마가 아닙니다. 우리 정기의 죽음이 국가의 과실로 인한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인정하고 책임을 통감하라는 것, 그리하여 다시는 그러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단지 그 뿐입니다. 정기가 떠나고 8년, 소송을 시작한 이래로 벌써 4년.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이제 이 싸움을 끝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홍정기와, 홍정기를 닮은 수많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끝내주십시오. 간곡히 요구합니다.″</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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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 김상훈, 김지인 영상취재:고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