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11-11 09:25 수정 | 2023-11-11 10:10
지난 2020년 1월, 데이트 폭력과 악성 댓글 등으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진 고 구하라씨의 자택에 한 남성이 침입했습니다.
구 씨의 장례 절차가 끝나 가족들이 집을 비우자마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CCTV에 찍힌 범인의 행동을 보면 석연찮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가 하면 가방 등 다른 고가품은 건드리지도 않고 마치 필요한 물건을 찾으러 온 듯 금고만 들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CCTV속 남성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 채 미제 사건으로 남게됐습니다.
엠빅뉴스는 고 구하라씨 4주기를 앞두고 배상훈 프로파일러 등과 함께 범인의 실체를 추적해 봤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새벽의 침입자</strong>
2020년 1월 14일 새벽 0시 15분.
고 구하라 씨의 청담동 자택에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담장 위에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CCTV를 발견한 듯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남성.
챙이 없는 모자에 안경과 마스크를 써 얼굴을 가렸고, 손에는 장갑을 끼고 있습니다.
이후 CCTV 화면 속에서 사라진 남성은 15분 뒤 마당에서 포착됐습니다.
자세를 낮춘 채 현관문으로 향하더니, 마치 자기 집처럼 비밀번호를 누릅니다.
문이 열리지 않자 약간 당황한 듯 유심히 문쪽을 바라보다 처음 들어온 길로 발길을 돌립니다.
이후 이 남성은 벽을 타고 2층 베란다를 통해 집으로 들어간 뒤, 가로 세로 약 30센티미터로 추정되는 구하라 씨의 금고만 훔쳐 달아났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범인의 정체는?</strong>
구하라 씨의 지인들은 범인이 면식범일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금고가 도난당한 시점은 14일 자정 무렵.
구하라 씨의 오빠가 49재를 마치고 본가로 내려간 게 13일입니다.
마치 집이 비길 기다렸다는 듯 범행을 저질렀다는 겁니다.
범인이 자연스럽게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침입을 시도했다는 점도 면식범일 가능성을 높여 줍니다.
[노종언 변호사/고 구하라씨 가족 법률대리인]
″(구하라 씨 사망 후에) 오빠가 비밀번호를 바꿨다고 알고 있어요. 왜냐하면, 구하라씨 지인 분들이 구하라 씨 집의 비밀번호 알고 생전에 출입을 많이 했기 때문에‥″
집 내부 구조를 손바닥 보듯 훤히 꿰고 있었다는 점도 근거입니다.
범인이 침입한 2층 베란다와 연결된 다용도실은 금고를 보관 중이던 옷방으로 이어지는데 외부인은 이 구조를 알기 힘들다는 겁니다.
[노종언 변호사/고 구하라씨 가족 법률대리인]
″금고로 통하는 최단 경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되게 신속하게 이동을 하거든요. 모르는 사람이면 가가지고 막 다 뒤져야 되잖아요.″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범인의 진짜 목적은?</strong>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금고가 있던 구하라 씨의 옷방에는 고가의 가방과 옷들이 있었는데 범인은 다른 고가품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유독 금고만 훔쳐갔습니다.
때문에 금품을 노린 단순 절도가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노종언 변호사/고 구하라씨 가족 법률대리인]
″평소에 구하라 씨가 거기(금고)에 목걸이나 귀걸이 같은 값어치가 나가는 것들 또 본인이 재테크하면서 했던 계약서 그리고 예전에 썼던 휴대폰들 그런걸 보관 했다고 합니다. (휴대폰 같은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들이죠. 예전 휴대폰도 본인의 개인 정보들이 많이 들어가 있으니까요.″
범인이 진짜 훔치려 한 물건은 무엇이었을까?
[노종언 변호사/고 구하라씨 가족 법률대리인]
″거기(금고)에 뭐 이거(귀금속) 외에 뭐 되게 더 중요한 게 있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구하라 씨와 구하라 씨의 지인만 아는 되게 중요한 게 뭐가 들어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경찰 수사 결과는?</strong>
이 사건은 9개월 넘게 수사가 진행됐지만 경찰은 결국 CCTV 속 남성을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현관 비밀번호와 집 구조를 훤히 꿰고 있을 정도로 구하라씨와 친한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들이 알아볼 법도 한데 구 씨의 가족과 지인 등 주변 사람들은 CCTV 속 용의자의 모습을 보고도 떠오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범인은 구 씨를 잘 알고 있는 지인의 사주를 받은 제3의 인물일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노종언 변호사/고 구하라씨 가족 법률대리인]
″구하라 씨랑 아는 사이거나 적어도 구하라 씨와 아는 사이인 사람에게 사주를 받은 사람이고 (범행시)어떻게 이동할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숙지한 후 범행을 해서 분명히 관련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범인은 최측근‥휴대폰 노렸을 것″</strong>
CCTV 영상을 분석한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범인의 복장과 침입 과정 등을 봤을때 범인은 전문 절도범이 아니고, 평소 신체 활동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직업에 종사할 것으로 봤습니다.
[배상훈/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전문 절도범이라든가 이런 (절도)경험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입은 옷 같은 경우도 야광 같은 게 번뜩이는데 (전문가라면)저러면 안 되죠. 사람들 눈에 금방 띄잖아요. 덩치가 그렇게 큰 사람 같지는 않은데 하체가 조금 부실하네요. 육체 노동자보다는 비육체적 노동을 하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범인은 구하라씨 집에는 처음 와본 사람이고, 구 씨 최측근의 사주를 받았을 거라 분석했습니다.
[배상훈/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범인이 와본 장소면) 이렇게 조심스럽게 들어갈 이유가 없겠죠. 아는 데라면 (최단거리로)쭉 가거나‥그런데 지금 범인은 (동선이)이쪽으로 갔다가 이렇게 가잖아요. (범인은) 여긴 처음이겠다.″
범인은 교사범과 절도범 2명으로, 교사범은 매우 급하게 금고를 훔쳐야 하는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배상훈/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범인이)세 명 이상이라고 하면은 굳이 한 명을 (집으로) 들여보낼 이유가 없죠. 두 명을 들여보내도 되잖아요. 빠르게 하려고 다른거 손 안대고 필요한 것만 가지고 바로 나오는 형태라고 보면 금고 속에 무언가가 진짜 시급한 사람에 의한 절도일거다.″
그럼 무엇을 그리 급하게 가져와야 했던 걸까.
[배상훈/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금전 목적은 아닐 거예요. 왜냐하면 금고에 뭐가 있는 줄 알고 들고 나옵니까 그 안에 비어있을 수도 있고. (단순) 절도범이라고 하면 당연히 다른 것도 확인을 하겠죠. 때문에 실제로 의미 있는 건 핸드폰, 문서.″
배 교수는 휴대전화를 노린 범죄일 가능성을 높게 봤습니다.
[배상훈/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사실 휴대폰 같은 경우 요즘 사설에서도 포렌식 되거든요. 옛날 사진, 동영상 지웠다해도 남거든요.구하라 씨의 세컨폰이라든가 아니면 다른 어떤 개인적으로 썼던 사적인 폰 같은 거라고 하면 그게 중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 시킨 거잖아요. 그걸 가져와라 이런 거죠.″
배 교수의 프로파일링을 종합해 보면 범인은 교사범과 실행범 2명이고, 교사범은 구 씨의 최측근으로 금고 속 구 씨의 휴대전화를 노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구하라가 남긴 것들</strong>
화려한 무대 위에서 찬란하게 빛났던 한 20대 여가수의 안타까운 죽음.
생전에는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였고 악성 댓글에 시달려 왔습니다.
비극적인 죽음 뒤엔 20년 만에 나타난 친모가 유산 상속권을 주장했습니다.
[노종언 변호사/고 구하라씨 가족 법률대리인]
″평소 연락을 하거나 그런 사이는 아니었는데 친모 측에서 연락이 옵니다 하라 씨의 유산을 반반으로 나누자고. 장례식 끝나고 이제 한 달 정도 내외 정도 한 49세 전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자식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도록 한 ′구하라 법′ 제정 여론에 불을 붙였습니다.
엠빅뉴스는 취재 과정에서 구하라 씨가 생전에 작성한 다이어리의 일부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i>″엄마가 그립고 느끼고 싶다″ ″누구보다 간절하고 느끼고 싶다″</i>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부터
<i>″하고자 하는 욕심과 꿈은 큰데, 왜 이렇게 벅차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i>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의 고단함까지
<i>″언제부턴가 혼자 버티기가 힘들다″ ″외로움이 싫다″</i>
구하라 씨는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스타였지만 동시에 지독한 외로움에 힘겨워 하고 있었습니다
[고 구하라 씨/마지막 SNS 라이브방송(2019년 10월)]
″열심히 살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힘든일 있으면 여러분들한테 얘기도 하고 같이 소통할 수 있게끔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구하라 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모두가 슬픔에 빠져있는 틈을 타 고인에 집에 침입해 금고만 가져간 남성.
유족들은 이 남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구하라 씨의 오빠는 ″고인이 된 동생 집에 도둑까지 들어 아직까지 화가 나고 씁쓸하다″며 ″잘못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든 돌려 받기를 기도하겠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