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7-24 12:55 수정 | 2024-07-24 12:55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오늘 아침 소극장 학전이 있던 서울 종로구 아르코꿈밭극장 앞 골목에서 눈물 섞인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故 김민기 학전 대표의 마지막 모습을 보러 온 추모객들이었습니다.
유족들은 장지를 향하기 전, 고인의 영정을 들고 옛 학전 건물에 들렀습니다. 그곳은 김민기가 33년 동안 문화예술인을 가르치고(학·學) 키워낸 밭(전·田)이었습니다.
학전은 ′배우 사관학교′라 불리기도 했고, 수많은 가수의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검은 옷을 입은 추모객 속에는 설경구, 장현성, 배성우처럼 우리 눈에 익은 배우들과 가수들이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옛 학전 앞 좁은 화단에는 고인을 기리는 시민이 놓고 간 흰 국화와 막걸리, 소주 등이 빼곡했습니다.
유가족이 학전을 둘러본 뒤 운구차가 장지로 향하자 한 색소폰 연주자가 김민기의 곡 ′아름다운 사람′을 연주했습니다. 고인의 연출작 ′지하철 1호선′에 출연했다는 그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 당신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 연주했다″고 했습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아침이슬>, <상록수> 남긴 김민기… 아름다운 노랫말과 곡엔 인간에 대한 애정</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김민기는 서울대학생이던 1970년 <아침이슬>을 작곡했습니다. 이듬해 자신의 1집에 수록했고, 이 노래에 이끌린 양희은에게 편곡도 해줬습니다. 가수 양희은 버전의 <아침이슬>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유신체제는 1975년 금지곡으로 지정했습니다. ′긴 밤 지새우고′에서, 긴 밤이 유신정권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거리에서 거리로 전해졌습니다. 노래는 청년 정신의 원형이라 불렸고,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상징하는 것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1987년 이한열 열사의 노제가 열리던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선 백만 명의 시민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자리에 실제로 있었다는 고인은 훗날 M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i>″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 걸 보고 상당히 좀 소름도 끼치고 난생처음 봤죠, 얘기로만 듣던 그 현장을... 그 순간에는 이건 내 노래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2001년 8월) </i>
고인은 70년대 섬유 공장에 취업해 노동자로 생활했습니다. 이때 공장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만들었던 노래가 바로 <상록수> 입니다. 힘든 생활이지만 부부가 함께 손잡고 어려움을 잘 견뎌내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하는데, 가사에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i>″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 기리라″</i>
<상록수, 작사·작곡·노래 김민기>
1978년 유신정권 말기 노동자의 삶을 노래굿으로 풀어낸 ′공장의 불빛′.
가수 송창식 씨의 녹음실 창문을 담요로 가리고, 몰래 테이프 2,000개를 복사해 대학가로 공단으로 퍼트렸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i>″죽여도 어쩔 수 없다, 이건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심장으로 했었으니까요″ (2004년 10월)</i>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4,257회 달린 뮤지컬 <지하철 1호선>…서민에 대한 연민, 아동극에도 몰두</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91년 소극장 학전을 만든 고인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연출했습니다. 94년 초연 이후 4,257회 공연, 관객 동원 73만 명. 한국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연주를 선보였고, 모든 배우를 오디션으로 캐스팅했습니다. 실직 가장과 가출소녀, 잡상인… 옷이 허름해도, 몸이 불편해도, 술에 취해도, 이방인이어도 탈 수 있는 지하철 1호선. 고인은 지하철이라는 공간으로 서민들의 삶을 이야기 했습니다.
자신을 ′학전 1기′라 소개한 배우 설경구와 황정민, 장현성, 방은진, 조승우 등이 모두 <지하철 1호선>에서 연기의 기본을 갈고 닦았고 성장했습니다.
전국 순회공연을 하고 매진 행렬을 이어갔지만 2008년 고인은 돌연 <지하철 1호선>을 중단했습니다. 돈이 되는 걸 하면 돈이 안 되는 것을 못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후 고인이 매달린 건 정말 돈이 안 되는 아동극이었습니다.
여느 아동극처럼 모험이나 환상, 판타지가 아닌 주변의 소소한 일상과 현실의 고민.
슈퍼맨이 되고 싶은 장애 학생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보험설계사 엄마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환상이 아닌 현실의 세계에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습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33년 만에 문 닫은 학전… 김민기 없는 학전은 없다.</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김광석, 들국화, 윤도현에게 무대를 내어주고 뮤지컬과 아동극을 올렸던 학전은 올해 3월 15일 문을 닫았습니다. 만성적인 경영난과 고인의 투병 때문이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학전의 정체성을 계승해 새로운 공연장으로 재탄생시켰지만 고인은 한사코 ′학전′이란 이름은 남기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없으면 학전은 없다″고 말했던 고인, 쟁이의 고집이었습니다.
무대 위에 서는 ′앞 것′들을 빛나게 해줄 뿐이라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민기. 콘솔 박스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던 그는 스스로를 ′뒷 것′이라 칭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앞 것′처럼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