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윤상문

"KBS 보도에 한국노총 삭발 투쟁"‥SPC 노조파괴 보도 이후 벌어진 일 [서초동M본부]

입력 | 2024-09-26 16:11   수정 | 2024-09-26 16:11
″한국노총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공영방송 KBS에 위원장이 항의하는 삭발식 등 주목도 높은 이벤트를 진행한다″

성명서와 삭발식. 언뜻 보면 노동조합에서 작성한 투쟁 방안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측 임원끼리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입니다.

2022년 5월, SPC그룹 홍보실 임원으로 있던 백 모 전무와 다른 임원이 이런 내용의 문자를 주고받았습니다.

검찰이 어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노조파괴 혐의 재판에서 이 메시지를 공개했습니다.

발단은 바로 전날 있었던 KBS 보도였습니다.

2022년 5월 13일, KBS 시사프로그램 ′시사직격′은 ″앞으로는 상생, 뒤로는 노조 파괴? 두 얼굴의 SPC″라는 제목으로 SPC그룹의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 대한 파괴 공작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SPC그룹 측이 대응에 나섰습니다.

백 전무는 이튿날 아침 6시 반쯤, 황재복 SPC그룹 대표와 통화합니다.

″가맹점주와 한국노총을 동원하는 안인데, 여론의 추이를 봐야 된다″며 ″강력하게 KBS 앞에서 삭발 투쟁을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보고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가 당일 오후, 앞서 언급한 성명서와 삭발식으로 구체화된 겁니다.

실제로 보도 엿새 뒤인 5월 19일에는 한국노총 명의로 ″한국노총을 매도하고 민주노총을 찬양한 KBS의 편향 보도에 심히 유감을 표명한다″는 성명서가 발표됐습니다.

검찰은 SPC 측이 성명서를 발표하게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근거는 뭘까요?

백 전무와 다른 임원이 주고받은 메시지에는 ″민주노총과의 협상내용을 공개해 민주노총의 이중성을 부각한다″, ″회사 발로 공개될 경우 노사 갈등 프레임이 강화돼 실제 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기자가 한국노총을 취재해 보도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같은 내용도 오갔습니다.

그러니까 한국노총을 활용해 민주노총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회사는 뒤로 빠지는, 이른바 ′노노 갈등′ 프레임을 활용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백 전무는 한국노총을 SPC그룹이 동원한 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백 전무는 법정에서 ″협조를 구하는 차원″이라며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이 다양하게 나와 언론들이 중립적으로 보도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하자는 취지″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백 전무 스스로도 이런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듯한 대화 내역도 같은 재판에서 공개됐습니다.
시사직격 보도 사흘 뒤, 홍보실 직원은 백 전무에게 ″파리바게뜨 천막농성 장기화에 노노갈등 불거졌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했습니다.

그러자 백 전무는 ″앵글 좋네″라면서도 ″어찌 맨날 하는 패턴이 똑같은지 한 발짝 나가지 않으신다″며 ″10년 전 회사 그대로 굴러간다″, ″리더가 전부다″라고 답했습니다.

백 전무가 ″한 발짝도 나가지 않으신다″는 분은 누굴까요?

재판에서 검사가 백 전무에게 ″허영인 회장을 지칭하며 ′노노갈등′으로 대응하는 패턴이 똑같다고 말한 것이냐″고 묻자 ″′노노갈등′은 언론이 뽑은 것이고 저희가 터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며 ″일이 터지거나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임원들이나 현업 팀장들이 세밀하게 일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또 ″′리더가 전부′라는 말은 무슨 의미냐″는 검사의 이어지는 질문에 대해서도 백 전무는 ″회장도 리더지만, 임원도 리더고 팀원도 리더″라며 허 회장을 겨냥한 말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앞서 검찰은 2021년에서 2022년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에게 민주노총 조합을 탈퇴하고 한국노총에 가입하도록 종용한 혐의로 허 회장 등 18명과 제빵기사들을 관리하는 SPC 자회사 피비파트너즈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허 회장은 범행 과정에 개입해 노조 탈퇴 공작을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를 두고 다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