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하나. 성인 5명이 술자리를 갖고 536만 원을 결제했다면, 1인당 술값은 얼마일까요? 536만 원을 사람 수(5)로 나누면 107만 원이겠죠. 그런데 여기서 ′성인′을 ′검사′로 바꾸면 답도 달라집니다. 정답은 96만 원입니다.
검사 술접대 사건은 ′라임 사태′를 일으킨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2020년 10월 옥중 편지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자신이 2019년 7월 1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룸살롱에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1명(이주형 변호사), 현직 검사 3명(나 모, 임 모, 유 모 검사)과 거액의 술자리를 가졌다는 겁니다. 검찰은 김 전 회장 폭로 두 달 만에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검사 선배 이 변호사의 주선으로 현직 검사 3명이 김 전 회장으로부터 술접대를 받았고, 접대 비용은 총 536만 원이었다는 겁니다.(기본 술값 240만 원, 접객원 팁과 밴드 비용 55만 원, 기타 비용 241만 원) 참고로 올해 우리나라 4인 가구 월소득 중간값, 즉 중위소득이 572만 원쯤 됩니다. 4인 가족 한 달 전체 수입이 누군가에게는 하루 술값밖에 안 됐던 겁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에 따르면 공직자가 1회 100만 원 넘는 접대를 받으면 형사처벌됩니다.(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 술값이 500만 원이 넘었으니 1인당 접대 비용이 당연히 100만 원 이상일 것이고, 그럼 현직 검사 3명이 모두 재판에 넘겨질 것이라 예상됐지만 기소된 검사는 나 모 검사 1명뿐이었습니다.
그날 술자리는 저녁 9시 반부터 다음 날 새벽 0시 50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임 모, 유 모 검사 2명은 밤 10시 50분경 먼저 자리를 떴기 때문에 나중에 부른 밴드 비용 등 55만 원은 나 검사와 이 변호사, 김 전 회장 3명에게만 적용해야 한다는 게 검찰 설명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 검사의 향응액은 114만 원으로 청탁금지법 기소 대상이 되지만, 임 검사와 유 검사는 96만 원으로 기소 대상에서 빠집니다. 4만 원 차이로 검사 2명이 기소를 피한 겁니다. 이 같은 ′계산법′ 덕분에 한동안 ′검사 불기소 세트′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애초 뇌물죄는 적용하지도 않았습니다. 나 검사가 술접대 7개월 뒤인 2020년 2월 서울남부지검 라임 수사팀으로 이동하긴 했지만, 접대는 그 전에 이뤄졌으니 술접대 자리의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나 검사와 이 변호사, 김 전 회장에 대해 1, 2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옆방에 있던 김 모 전 청와대 행정관이 술자리 도중 합류했으니, 술을 5명이 아니라 6명이 나눠 먹은 걸로 봐야 한다는 피고인, 즉 전·현직 검사들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겁니다. 이렇게 계산했더니 나 검사의 접대 금액은 114만 원이 아니라 94만 원으로 내려갔습니다. 100만 원이 안 되니 형사처벌 대상에서 빠지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제(10월 8일)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대법원이 1, 2심 재판부의 계산식이 틀렸다고 본 겁니다. 기본 술값 240만 원은 술자리가 시작될 때 이미 제공된 것이니 중간에 들어온 김 전 행정관을 빼고 5명(김 전 회장, 이 변호사, 검사 3명)이 나눠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술자리는 김 전 회장이 검사 3명에게 향응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점을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이 술자리의 주인공, 그러니까 검사 3명이 모인 시점이 술자리 시작 시점이라는 겁니다. 이러면 나 검사가 접대받은 액수는 최소 101만 9천 원이 됩니다.
대법원은 ″이 같은 방식으로 피고인 나 씨가 제공받은 향응 가액을 산정한다면 1회 100만 원을 초과할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향응 가액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결국 1,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상식적인 판결′이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 검찰이 기소 안 하면 법정도 못 세운다</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그럼 대법원이 정의구현을 한 걸까요? 아쉽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파기 환송심에서 나 검사가 설사 유죄 선고를 받는다 해도, 4만 원 차이로 기소 대상에서 빠진 나머지 검사 2명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애초에 검찰이 이들을 재판에 넘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른바 기소독점주의입니다. 형사소송법 246조, 그리고 247조 1항이 그 근거입니다.
제247조(기소편의주의와 공소불가분)
①검사는 형법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있다.</blockquote>
2021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으로 일부 고위공직자 범죄에 한해 공수처 검사의 직접 기소가 가능해지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수처가 기소한 사건은 ′스폰서 검사′ 김형준 전 부장검사, ′고발사주′ 손준성 검사장, ′고소장 위조′ 윤 모 전 검사, ′7억 원대 뇌물′ 김 모 경무관 등 4건뿐입니다.
재판정에서 죄의 유무를 가리는 사람은 판사이지만, 재판정에 세울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검사입니다. ′검사 불기소 세트′라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검사 2명을 재판에 넘기지 않을 수 있는 것도 검사요, 대법원으로부터 ′공소권 남용′이라는 판단을 받을 정도로 ′보복성 기소′를 할 수 있는 사람도 검사(안동완 검사 사례)입니다.
물론 일부러 누군가를 기소하거나 불기소하는 일은 없다는 게 검사들의 설명입니다. 최근 디올백 사건에서 김건희 여사 불기소를 결정하면서도 서울중앙지검은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고 ′비공개 브리핑′을 통해 밝혔습니다. 검찰은 2018년 기소독점주의의 폐해에 대한 자기반성으로 수사심의위를 도입했지만, 이번 디올백 사건에서 수사심의위 ′기소 권고′를 처음으로 거부하면서 자기들 스스로 수사심의위를 무력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 알고보니 ′무(한)관용′..심우정 총장 선택은?</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이런 건 우리 조직에서 무관용이고 대가성이 있든 수사 착수 전이든 우연히 얻어먹었든 간에… ′김영란법′ 위반 하나도 검찰이 지금 어떤 입장인데 이런 거 봐주고 하겠습니까?″</blockquote>
2020년 10월 22일 국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검사 술접대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못이 드러나면 사과하겠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해 공식 사과한 적은 없습니다.
징계도 감감무소식입니다. 대검찰청은 2021년 8월 술접대 받은 검사 3명에게 최고 면직 징계를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3년 넘게 징계 절차는 법무부에서 멈춰 있습니다. 법원의 결론을 지켜보겠다는 이유였습니다. 무관용이라더니 ′무한관용′이었습니다. 참여연대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핑계는 사라졌다″며 ″술자리 검사 3명에 대한 징계 처분을 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지난달 취임한 심우정 검찰총장은 독특한 이력을 가졌습니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로 시작하는 ′검사 선서′의 초안 작업을 주도한 겁니다. 검찰 창설 60주년을 기념해 2008년 만들어진 ′검사 선서′는 서울중앙지검 등 각 검찰청사 로비에서 매일 검사들을 맞이합니다. 검사 선서에 등장하는 4가지 검사의 표상 중 가장 마지막은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입니다. 자기 스스로 했던 선서를 지키지 못한 3명의 검사들을 보고 검사 선서 ′원작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취임사에서 ′국민 신뢰′를 강조한 심 총장의 선택이 자못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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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술접대′ 무죄 뒤집은 대법원‥″검사는 1명만 처벌″(2024.10.8 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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