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신지영

고물가 못 피해 간 日 '하나미'‥물가 대책 '평가한다' 응답은 고작 19%

입력 | 2026-03-30 17:24   수정 | 2026-03-30 17:52
지금 일본 도쿄는 벚꽃이 한창입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은 지난 29일 벚꽃 개화가 공식적으로 선언됐지만, 도쿄는 이미 지난 19일 개화가 선언됐습니다. 일본 기상청이 도쿄 벚꽃 개화 선언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왕벚나무는, 우리에겐 다른 이유로 잘 알려진 장소인 야스쿠니 신사에 있습니다. 이 나무에서 5~6송이 이상 꽃이 피면 개화가 선언됩니다. 참고로 서울의 개화 기준은 종로구의 서울기상관측소(국립기상박물관 ) 내 관측 표준목의 한 가지에 세 송이 이상 꽃이 활짝 피었을 때입니다.

한국 역시 벚꽃 명소마다 인파가 몰리지만, 일본의 꽃구경에 비하면 비교적 얌전한 편인 듯합니다. 일본어로 ′하나미′라 부르는 꽃놀이 철이 되면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 거나하게 펼쳐지는 ′술판′을 볼 수 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밤은 물론 낮에도 연회가 가능한 야외 공간마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실컷 볼 수 있습니다. 곳에 따라선 간혹 꽃향기보다 술 냄새가 먼저 느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 이 정도면 꽃은 술을 마시기 위한 핑계가 아닐까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 듭니다. 대표적인 벚꽃 명소인 우에노 공원에선 줄지어 선 포장마차에선 연신 꼬치구이를 구워내느라 연기를 피우고, 일본인은 물론 일본 문화를 체험하러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취기에 붉어진 얼굴로 삼삼오오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귀족 문화였던 ′음주 꽃놀이′가 서민 문화로 자리 잡게 된 직접적인 기원은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을 지배했던 에도 시대(1600-1868)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막부가 벚꽃을 대량으로 심으면서 귀족이 아닌 일반 서민들도 꽃그늘 아래에서 음주 가무를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절 민중들에게 꽃놀이란 막부의 엄격한 단속에서 벗어나 교외에서 노니는 1년에 한 번뿐인 즐거움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에도 연구가였던 미타무라 엔교의 저서 ′에도연중행사′(1927)는 ′하나미′를 두고 ″에도 시민은 따로 즐겁고 유쾌한 세계를 갖고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국 각지의 명소와 이름난 나무, 심지어 주점 안내까지 포함된 안내서가 활발하게 출판됐다고 하니 이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꽃놀이에 진심이었는지 짐작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에도 시대에 뿌리내린 ′하나미′ 문화는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까지 일본인의 봄을 대표하는 연중행사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도 해마다 벚꽃철이 되면 방송사마다 앞다투어 전국 각지의 벚꽃 명소를 소개하고, 오늘은 꽃이 얼마나 피었는지 생중계를 통해 열정적으로 전달합니다. 이를 보고 있으면 마치 꽃을 보러 어디라도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마저 느껴집니다.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1년에 한 번 치르는 초대형 이벤트, 그것이 바로 일본의 ′하나미′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고물가의 영향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가 주먹밥, 맥주 등 필수 품목 14개를 대상으로 산출한 ′하나미 비용 지수′가 1년 전보단 4%, 2020년에 비해선 무려 2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마노 히데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등을 이유로 ″식료품 관련 물가는 아직 더 오를 것이며, 내년에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얄팍해진 지갑 사정 탓에 올해 ′하나미′ 예산이 내림세로 돌아섰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날씨 전문 기업인 웨더뉴스에 따르면 올해 1인당 평균 예산은 작년보다 9% 감소한 2,730엔, 약 2만 6천 원으로 나타났으며 멀리 가는 대신 가까운 곳에서 꽃놀이를 즐기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합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와 TV도쿄가 지난 27일부터 29일 사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우선 처리해줬으면 하는 정책 과제를 묻는 질문에 ′물가 대책′이란 답이 50%로 가장 많았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의 조사에선 다카이치 내각의 고물가 대책을 ′평가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39%에 달한 반면, ′평가한다′고 답한 비율은 19%에 불과했습니다.

여전히 총리의 지지율은 외교 안보 분야에서의 성과를 기반 삼아 닛케이 기준 72%, 마이니치 기준 58%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측면에선 여전히 국민이 만족할만한 성과를 아직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일제히 피었다가 가장 아름다울 때 한순간에 떨어지는 특성 때문에 일본에서 벚꽃은 허무함, 덧없음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권력의 운명에 곧잘 비유되기도 합니다. 고공 행진 중인 다카이치 내각의 지지율이 위태로워 보이는 건, 고물가에 지쳐가는 민심이 언제 강풍이 되어 불어닥칠지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