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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표의 작심마이크] 정의당 장혜영 당선인 "내가 명문대 자퇴한 이유는…"

입력 | 2020-05-06 14:13   수정 | 2020-05-0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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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로 장애 차별 없는 인권사회로″
″모든 생활에서 유린당한 장애인들의 인권″
″대학 자퇴를 하는 두려움 보다 세상이 바뀔 수 없다는 생각이 더 두려웠다″
″발달장애 동생을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자세″
″약속을 지키지 않는 위정자들의 모습에 절망하던 시민이었다″
″지금은 직업 정치인 장혜영이다″
″심상정 대표일지라도 잘못된 것은 비판하는 것이 당연″
정의당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 ″불평등에 고통 받는 모든 국민의 삶을 지킨다″
″청년 정책은 더 이상의 세습을 막는 것″

◀ 앵커 ▶

모든 국민의 권익 향상을 위해 가장 불평등한 사람들의 권리를 대변하겠다. 남다른 각오를 밝힌 장혜영 당선인은 정의당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 지도자로 대표되는데요. 먼저 준비된 영상 한번 보시죠.
영화감독이나 장애인 인권활동가로 활동하다가 21대 총선에 당선된 국회의원 장혜영은 과연 어떤 정치를 보여줄지 궁금한데요.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영화 본인이 만드신 것 맞죠?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맞습니다.

◀ 앵커 ▶

뭔가요? 제가 죄송하지만 아직 못 봤습니다.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부제를 한 번에 말씀을 드리면 중증 발달 장애 동생과 함께하는 좌충우돌 탈시설 생존기라는 부제로 어른이 되면이라는 제목의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 앵커 ▶

어른이 되면요. 동생의 영향을 컸죠, 이 영화를 만드는데, 제가 듣기로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맞습니다. 중증 발달장애라고 하는 거는 발달장애는 자폐성 장애 지적 장애를 둘 다 합쳐서 발달장애라고 하는데 동생한테는 어렸을 때부터 둘 다 장애가 있었고 그 이유로 어릴 적에 집 근처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가서 오랜 세월을 살아야 했는데 그런 동생의 삶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어렸을 때는 생각했는데 자라서 사회 속에서 불평등이나 이런 것들을 구조적으로 어떻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지 그런 가능성들을 보면서 시설 밖으로 나와서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더 많이 보게 됐어요.

◀ 앵커 ▶

데리고 나오신 거죠, 동생을?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3년 전에 그렇게 나왔습니다.

◀ 앵커 ▶

그러면 거기 계신 장애인분들하고 동일한 곤란을 겪으신 건가요 아니면 동생이 특별한 곤란을 겪으신 건가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장애는 사실 똑같은 장애는 없어서 같은 발달장애라고 하더라도 그 양상이 사람에 따라 좀 많이 다르지만 시설에 살아간다고 하는 점에 있어서는 같은 부분이지만 일단 구조적으로 모든 사람이 탈 시설을 할 수 있는 게 궁극적인 목표이지만 일단 한 사람을 탈시설하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게 그다음 사람, 그다음 사람의 탈 시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미디어 작업으로 그 목소리를 처음 내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 앵커 ▶

왜 탈 시설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동생이. 가만두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이시겠죠? 뭔가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여러 가지 계기가 있는데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제 동생이 있었던 시설에서 일어났었던 어떤 인권 침해 문제가 내부 고발을 통해서 수면 위로 올라왔고 그 문제가 공론화돼서 잘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서 굉장히 충격적이기도 하고 이게 왜 해결이 안 되는지를 추적하다 보니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함께 살아갈 수 없어, 지역사회에서라고 하는 사람들의 많은 생각, 그것을 바꾸지 않고서는 이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런 관점에서.

◀ 앵커 ▶

어떤 인권 침해였는지 구체적으로 여쭤봐도 되나요, 짧게?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마음 아픈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예를 들면 그런 거죠. 지역 사회에서 그런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누구라도 당장 그것은 확대이고 인권 침해라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시설이고 시골에 있고 인력이 없고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뭔가 이래도 되지 않을까라는 방식의 굉장히 일상적인 침해가 많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식사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지 대신에 관리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든가 말을 듣지 않으면 가둬놓는다든가 체벌이 있다든가, 아니면 약간 이것은 조금 더 끔찍한 이야기이긴 한데 여성 이용인의 생리를 하잖아요. 그 생리대를 다른 성별의 관리자가 갈아준다든가 이런 종류의 일까지도 있었습니다.

◀ 앵커 ▶

짐작이 가서 더 여쭤보지는 않겠습니다. 가장 당선인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게요. 이게 무슨 세간의 호기심을 많이 불러일으키는데. 소위 말하는 명문대 아니겠습니까? 다니시던 데가 연세대죠?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맞습니다.

◀ 앵커 ▶

왜 그만두셨습니까? 거기 계신 게 동생을 돌보기도 낫고 여러 가지 사회 활동하기에도 분명히 유리할 텐데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많은 비장애 형제자매 분들께서는 공감하시는 부분이지만 언젠가 부모가 없으면 내가 돌봐야 한다, 형제자매를 돌봐야 한다라는 책임감을 굉장히 일찍부터 갖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도 동생을 책임질 수 있는 언니가 되고 싶어서 소위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인 성공을 개인적으로 이루어서 그래서 동생을 돌보겠다고 생각을 하고 열심히 그런 길을 가고 있었는데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스스로 의문이 들었어요. 이렇게 무한히 경쟁하는 이 안에서 사실 저는 동생이 시설에 보내진 이후에 부모님께서도 일찍 이혼하시고 굉장히 일찌감치 홀로서기를 한 사람으로서 언제까지 이 쳇바퀴를 굴릴 수 있을까라는 부담도 있었고 과연 이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는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경쟁이라는 게 그런 게 있잖아요. 한 번 올라타면 그걸 멈추기가 어려운 거예요.

◀ 앵커 ▶

그렇죠.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그래서 이걸 더 굴려서 나중에는 멈추고 없어도 멈추게 되기 어렵기 전에 일단은 멈춰놓고 내가 정말로 이 사회에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해보고
싶었습니다.

◀ 앵커 ▶

겁은 안 났어요? 그 나이 대에 학교 그만두는 게 겁이 나는 선택일 텐데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겁이 났죠. 겁이 났지만 더 두려운 것은 세상이 사실은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더 두려운 일이었으니까요.

◀ 앵커 ▶

보통 많은 사람들은 겁이 났건 안 났건 그냥 겁이 안 나는 쪽을 선택하거든요. 그 부분은 두려움이 더 컸나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행복해지고 싶어서요.

◀ 앵커 ▶

행복해지기 못 할 가능성도 컸었을 거 아닙니까? 객관적으로 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그렇죠.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제가 힘들 때마다 책을 읽는 습관이 있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주인공들은 주변에서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거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게 있으면 어쨌든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혹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삶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종류의 이야기를 저는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저의 마음속의 영웅이 저는 옳다고 생각했고 저도 가능하다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 앵커 ▶

그러면 그전에 다른 이야기 여쭤보기 전에 외국 대학은 안 다녀보셨죠?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교환학생을 다녀왔습니다.

◀ 앵커 ▶

그러면 다녀왔으니까 비교가 가능하시겠다. 우리 대학하고 우리 대학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외국 대학도 마찬가지의 문제입니까? 자퇴를 결심할 때 구조적 모순은.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단적으로 이야기하기에는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했는데요. 어쨌든 저는 일본에서 교환 학생을 1년 정도 하고 그 이후에 연이 닿은 친구들하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아무래도 한국에서 봤던 것보다는 조금 더 다양한 삶이 있구나라고 하는.

◀ 앵커 ▶

일본만 해도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네.

◀ 앵커 ▶

일본도 상당히 경직된 사회기는 마찬가지인데.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맞습니다. 하지만 대학을 가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관념은 그래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또 다른 어떤 아예 분화된 계급의 존재일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 저에게는 그런 분위기가 조금 더 큰 용기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 앵커 ▶

지금 당선인이 규정짓기는 어려우시겠지만 대학이 어떻게 돼야 합니까? 너무 어려운 문제라서.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그렇지만 저는 대학은 가고자 한다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어느 곳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일정한 이상의 훌륭한 질을 보장받는 교육을 보장받는 곳이어야 한다.

◀ 앵커 ▶

그런데 우리 대학은.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그렇지 않죠.

◀ 앵커 ▶

누구도 갈 수가 없고 누구나 갈 수는 물론 없고 또.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그리고 교육의 질 또한 일정하지 않고 정말로 교육 그 자체를 목표로 한다기보다는 사실상 취업 기지로 전락해 있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제가 학교를 그만두면서 대자보를 쓰고 그만둔 데에는 정말 당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이런 것이라기보다는 진짜로 학우들 그리고 학내의 구성원 교수가 됐든 아니면 교직원 분들이 됐든 물어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정말로 학교를 사랑해서 이 공간이 너무나 가치 있고 좋아서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건지 아니면 무언가가 두려워서 여기 있는 건지 그거를 물어보고 화두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거는 지금도 여전한 질문이고요.

◀ 앵커 ▶

사적인 친구들은 대답을 했을 거 아닙니까? 뭐라고 그럽니까? 두렵다고 그럽니까?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사적인 친구들은. 그렇죠. 두렵다고 했던 친구들이 조금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원하는 것이 있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 앵커 ▶

그렇죠.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여기에서 자기는 보람을 느끼고 희망을 보고 있는 친구들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아주 단칼에 뭐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 앵커 ▶

그렇죠. 자퇴하고 어떻게 사셨습니까?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한동안 방황을 좀 했죠.

◀ 앵커 ▶

그래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가장 중요한 것은 저는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동생을 돌보는 데 필요한 건 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 내가 시간을 투자해서 돈 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돈을 벌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뿐더러 내 시간이라고 하는 게 없는 삶이라는 게 어떤 의미일까 한 인간으로서. 그런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었기 때문에.

◀ 앵커 ▶

돈 버느라고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네. 돈 버느라 사실은 자기 삶을 위한 시간이 없는 것이 굉장히 이런 경쟁 사회의 특징이잖아요. 그래서 일단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가야만 하는 수업이었고 내야만 하는 과제였고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학자금을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세상의 모습도 보고 싶고 그래서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 세상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떻게 동생의 삶을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안에서 제가 가장 중요했던 건 저 자신을 실험해보는 것이었는데요. 내가 이렇게 동생을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그냥 한순간의 감상이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왜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한국이 아니라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아보고 내가 그게 더 좋은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충분히 자기 자신을 실험해보기 위해서 시간을 좀 보냈는데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정말 새로운 삶을 다른 나라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순간에 제 마음 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동생 얼굴이었어요. 그래서 돌아가야겠다 싶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던 것 같습니다.

◀ 앵커 ▶

그런데 아까 방황이라는 건 어느 부분이 방황이라는 거예요. 정상적인 부분 같은데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맞습니다. 모두 한 시기에는 방황을 하지 않습니까?

◀ 앵커 ▶

그런데 어떤 부분이 자퇴하고 난 다음에 방황이라고 표현하신 부분이에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삶을 어느 방향으로 설정해야 할지를 이리도 가보도 저리도 가보고 그런 면에서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 앵커 ▶

유튜브에 감독하신 건 그것은 세상을 조금 바꿔보고 싶다, 이런 종류인가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그때는 확실히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좀 섰을 때였어요. 그래서 제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시점에 동생의 시설에 굉장히 열심히 관여를 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그 시설의 학부모회의 회장이 되고 부모도 아니지만 인터넷을 할 줄 알아서 회장이 되고는 했는데 그 시점에서 문제가 일어났던 것이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잘 풀리지 않는 과정 이런 것들을 겪으면서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방법, 그리고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실은 영상 작업을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방법을 통해서 목소리를 내는 연습을 했었던 겁니다.

◀ 앵커 ▶

아까 어른이 되면 말씀입니다. 많은 상 받았어요. 그러면 그쪽으로 굉장히 능력 있는 유망한 감독이신데.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감사합니다.

◀ 앵커 ▶

그런데 정치로 들어왔단 말이에요. 정의당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겠죠?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맞습니다.

◀ 앵커 ▶

그때 흔쾌히 수락했었습니까?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한 달을 고민했습니다. 한 달인을 고민하고 나서 입당을 한 셈인데요. 입당 제안을 받고 나서 아무래도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문화적인 방법으로 바꿔서 그게 제도로 올 수 있고 제도가 바뀌어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처음에는 전자가 제 역할이라고 느꼈어요. 창작을 해서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감화가 돼서 이렇게 생각했고 분명히 그것도 유효한 방법이지만 정말로 힘을 가지고 있는 정책 위반자들과 결정자들이 약속을 해놓고도 지키지 않는 상태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하는 게 굉장히 절망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그러던 타이밍에 심상정 대표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그렇게 만나자고 해서 아주 쿨하게 제안을 하셨고 그리고 충분히 생각을 해 보고 나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사실 따로 있는 게 아니잖아요. 모든 선거권을 가진 국민들은 우리는 나이 차이가 있어서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피선거권도 15세부터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나는 선거권은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피선거권에 대해서는 굳이 행사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이렇게 원하는 세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이렇게 기회가 왔고 내가 이걸 절실히 원한다고 한다면 다른 그 누구라도 내 곁에서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싸웠던 그 누군가가 나간다고 할 때 박수를 쳐줄 수 있는 것처럼 나 또한 한 번 해보겠다, 삶을 걸어보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앵커 ▶

그러면 직업 정신으로 끝까지 남으실 수도 있는 건가요 아니면 언젠가는 혹은 조만간 다시 원래 영화감독 외의 어떤 길로, 예술가의 길로 가시는 건가요? 아직은 모르나요, 혹시.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제가 삶의 시간을 생각할 때 먼 시간을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눈앞에 있는 시간을 통해서 다른 결과를 이뤄내면 그때는 전혀 다른 선택지가 또다시 눈앞에 있기 때문에 지금의 저는 직업 정치인 장혜영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앵커 ▶

사적으로는 그런 삶의 태도에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감사합니다.

◀ 앵커 ▶

그리고 정의당 심상정 대표 만나셨을 때요. 기억나는 게 무슨 말씀 드리는지 아시죠? 한국은 미국의 패권을 위해 돈 대주고 몸 대주는 속국이 아니다. 이렇게 심 대표가 말씀하시니까 반대했어요. 비판했어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비판했습니다.

◀ 앵커 ▶

뭡니까? 그게.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왜냐하면 그게 잘못된 표현이고 여성 혐의적인 표현이 다분히 있기 때문에 비판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비판을.

◀ 앵커 ▶

그 취지에 대한 비판입니까? 표현에 대한 비판입니까?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표현에 대한 비판입니다.

◀ 앵커 ▶

취지는 동의하시는 건가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취지는 동의합니다.

◀ 앵커 ▶

쉽지 않았을 텐데요. 가장 정치판에 그런 용어가 어울리나 모르겠지만 하여튼 새내기 의원 후보가 당 대표에게 그런 말을 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오히려 새내기라서 할 수 있는 측면이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앵커 ▶

그럴 수 있습니다. 유튜브 볼 시간이 있을까 모르겠는데요. 정의당 선거 운동하실 때 유튜브로 활동하셨죠?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맞습니다.

◀ 앵커 ▶

한번 볼까요, 잠깐?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청년 선거 대책본부 본부장 장혜영입니다. 더 나은 쪽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시민 여러분께서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

◀ 앵커 ▶

제가 다른 걸 여쭤보려고 했는데 지금 시간이 다 돼서 더 중요한 질문을 좀,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정의당 이번에 선거 결과 자체만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원인 뭐라고 보십니까?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구조적인 요인들에 대해서 더 이상 제가 강조를 드리지는 않아도 이미 많은 분께서 알고 계시겠지만 가장 뼈아픈 부분은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인가에 대해서 국민 여러분께 부족한 설명을 드렸다는 생각을 합니다.

◀ 앵커 ▶

짧게 대답이 가능하신 문제인지 모르겠는데요. 왜 민주당이 아닌 정의당입니까? 왜 미래통합당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성향상 사람들이 할 텐데 왜 유권자들이 민주당이 아닌 정의당에 투표해야 합니까?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정의당에 제가 입당한 이유하고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저는 정의당이 가장 불평등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것이 곧 모든 국민의 삶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정당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이 당에 입당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이 아니라 정의당이어야 했다고 강력하게 호소를 드렸었습니다.

◀ 앵커 ▶

하나만 더 직구인데 깊이 들어가면 그런 정의당의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서 더 큰 여당에 표를 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국민의 선택에 대해서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총선 이후에 말씀을 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변화할 정의당의 모습에 더 많은 기대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 그 말씀드립니다.

◀ 앵커 ▶

알겠습니다. 마지막 하나 질문 드리겠습니다. 청년 정책이 없다는 이야기 많이 합니다. 뭐가 제일 필요한가요, 정책? 정치권이 청년을 위해서 해줄 정책 중에 가장 시급한 게 뭔가요, 그것만 짧게.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저는 아주 간단하고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습 불평등을 해결하는 겁니다. 뭔가 청년만을 위한 정책을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시지만 모두의 삶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저는 그런 접근보다는 정말로 이런 우리 사회에 누적돼 있는 부와 사회의 불평등 그리고 그로부터 누적돼 있는 문화적인 불평등들이 이 모든 것이 더 이상 세습되지 않도록 그런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들이 곧 청년 정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앵커 ▶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

감사합니다.

◀ 앵커 ▶

지금까지 정의당 비례대표 장혜영 당선인과 이야기 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