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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원
여전히 웃고있는 '그 날'의 책임자…"가슴에 피멍"
입력 | 2020-01-01 19:43 수정 | 2020-01-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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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5.18이 우리 민주주의가 가야할 길을 밝혀준 등대 역할을 했지만 4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당시 누가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라고 지시했는지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5.18의 남아있는 과제들은 뭔지 김철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서 일어난 집단 발포.
국민의 군대가 자국민을 조준 학살한 이 충격적 비극의 진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미궁 속입니다.
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은 5.18은 ′우발적′ 사건이라며 얼버무렸고,
[이희성/5.18 당시 계엄사령관 (1988.11.18. 국회 광주청문회)]
″(어느 부대가 언제 어디에서 발포했는가) 그와 같은 세부사항은 제가 파악할 수 없는 조그만 말단 부대의 사건입니다.″
실질적으로 군을 이끌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자신은 지휘계통에 없었다며 발뺌했습니다.
[전두환/2003년 SBS 인터뷰]
″군대라는 것은 지휘계통에 의해서 딱 움직이는 거요. 나는 계엄사령관 부하요. 보안사령관은 보안사만 지휘하지, 그 외에는 지휘권이 없잖아.″
수천명의 광주 시민이 죽거나 다치고, 혹독한 고문 후유증에 목숨을 끊은 사람만 수십명이지만, 광주에 투입된 2만명 넘는 계엄군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사라진 가족의 흔적이라도 찾고 싶다는 유족들의 애타는 바람에도, 4백명 넘는 시민들은 시신마저 행방불명입니다.
그러는 사이 5.18을 폄훼하는 망언이 국회에서까지 들려오는가 하면, 전재산이 29만원이라는 전두환씨는 5.18 증언자들을 대놓고 비웃으며 경찰의 경호 속에 호화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7일, 강원도 홍천군 00골프장]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 광주 5.18 학살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시죠.″)
″전두환: 광주학살에 대해서 모른다, 나는.″
신군부에 목숨으로 맞선 광주시민들의 용기는 87년 6월항쟁으로 계승돼 우리 민주주의의 등대가 됐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까지 인정받았지만, 광주시민들의 한이 여전히 풀릴 수 없는 이윱니다.
[임근단/5.18 유족 (지난해 3월 11일, 전두환 광주재판 직후)]
″사죄하는 말 한 마디라도 있을 줄 알고 우리는 기다렸는데 그것마저도 기회를 놓치고 간 것은 마음이 아프고, 정말로 사람 같으면 망월동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죠.)″
그래서 이제 막 출범한 5.18 진상조사위원회에 거는 기대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5.18 책임자를 제대로 밝혀내야만 그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 : 이정현 / 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