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이명노

실전 이상의 훈련이 무기…오직 실력으로 쓴 신화

입력 | 2021-07-25 17:36   수정 | 2021-07-2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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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여자 양궁 단체전이 올림픽에 처음 등장한 건 88년 서울올림픽 이었습니다.

이때 첫 금메달을 차지한 우리 대표팀은 이번까지 9번의 올림픽에서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외에는 여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따본 나라가 전세계에 하나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야말로 신화라고 할 수 있죠.

30년 넘게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우리 여자 양궁 선수들의 기적같은 신화의 비결은 뭘까요.

이명노 기자가 분석했습니다.

◀ 리포트 ▶

신화의 시작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단체전이 처음 도입된 서울올림픽에서 전설이된 김수녕을 필두로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워낙 압도적인 기량에 적수가 없다보니, 한동안은 상대 보다는 우리가 세웠던 기록과 스스로 싸우는 일이 더 관심일 정도였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중계]
″하나 남겨놓고 이미 점수는 한국이 더 많은 236점!″

한국 지도자들이 전세계로 진출하며 기술은 점차 상향 평준화 됐지만, 살얼음판 상황에서의 강심장은 따라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한발로 금메달이 갈렸던 아테네와 런던.

마음 졸이는 순간 짜릿한 1점차 우승을 차지한 건 매번 우리 차지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견제도 심했습니다.

대놓고 우리를 겨냥해 아예 경기 방식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2016년 리우올림픽부터 점수제를 지금의 세트제로 바꿨지만, 여전히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엔 태극기가 걸렸습니다.

비결은 현미경처럼 정밀하고 철저한 대비입니다.

관중 소음을 대비한 야구장 적응 훈련은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바닷가 경기장과 환경이 비슷한 전남 신안 자은도를 찾아갔고, 유메노시마 양궁장을 선수촌에 그대로 재현해 훈련을 소화했습니다.

금메달보다 태극마크 달기가 더 어렵다는 대표 선발의 공정성도 큰 무기입니다.

이름값과 경력은 모두 배제하고, 오직 선발전 결과에 승복합니다.

이번에 처음 도입된 혼성 단체전에도 남녀 예선 1위 선수를 내보내기로 했고, 결국 두 막내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어느새 ′세계 최강′이 당연한 수식어가 된 한국 양궁.

넘볼 수 없는 신화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MBC뉴스 이명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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