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김현지

하루 10번 울리는 '재난문자'‥무뎌지고 불신만 키워

입력 | 2023-08-07 20:39   수정 | 2023-08-0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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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갑작스런 재해가 닥쳤을 때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늦기 전에 재해 지역에서 대피하는 거겠죠?

정부나 지자체가 긴급 재난 문자를 보내는 이유인데요.

그런데 정작 어디로, 어떻게 대피하라는 건지 구체적인 방법은 빠져있고, 심지어 잘못된 내용을 보내는 경우도 있어서 효과는 떨어지고, 부작용만 키운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김현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달 11일.

수도권 주민들에게 10개가 넘는 긴급재난문자가 왔습니다.

1시간에 1개꼴, 모두 비 피해를 조심하라는 내용입니다.

심지어 행정안전부, 경기도청, 고양시가 1시간 안에 거의 같은 내용의 문자를 각각 보내기도 했습니다.

장맛비가 한창이던 지난 달 12일부터 8일동안 전국에 발송된 재난문자는 2천 건이 넘었습니다.

발송 오류도 잇따랐습니다.

지난 5월 북한이 서해로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날, 서울시는 대피문자를 오발송했습니다.

[김민영·강율(지난 5월)]
″집에 있는 생수랑 햇반, 라면 정도를 챙겼죠. <죽을까 봐 무서워서 울었어요.>″

지난달엔 기상청이 ′극한 호우 문자′를 해당 지역이 아닌 주민에게도 보냈고, 중앙재난본부는 지진 발생지를 ′전남 장수군′이라고 잘못 보내기도 했습니다.

수시로 울리는 알림에 경각심이 무뎌진데다 불신까지 더해진 겁니다.

[한수연/서울 동작구 주민(지난달 12일)]
″저는 못 믿겠다고 생각해서 그냥 재난문자 기능을 꺼놨거든요.″

여론조사에서도, 재난문자를 받아도 확인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약 23%였고, 8%는 아예 수신을 거부해놨다고 답했습니다.

구체적 행동요령이 없어 효과도 떨어집니다.

문자에는 ′안전한 곳′, ′침수 대비′처럼 막연한 표현만 있을 뿐, 어떻게 행동하고 어디로 가라는 자세한 지침은 없습니다.

[박 건/서울 동작구 주민(지난달 12일)]
″일단 놀라서 봤는데 호우가 되게 예상이 돼서 대피하라고 하니까, 그게 막 그렇게 실효성이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지난해 산불 당시 재난문자를 분석한 결과, ′대피장소′라는 모호한 표현이 아닌 ′동해체육관′처럼 구체적으로 장소를 명시했을 때, 수신자들이 대피를 위해 더 많이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피 가능성이 높아진 겁니다.

[박근오/강남대 스마트도시공학과 교수]
″구체적으로 대피 장소 이런 것들이 명기가 됐을 때는 사람들이 그쪽으로 대피하려고 하는 그런 심리에 좀 더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대피 방안도 필요합니다.

문자 수신이 어려운 지역이나 심야 시간, 글자를 읽기 힘든 고령자나 외국인에게 재난문자는 무용지물입니다.

일본의 경우, 대피 방송이 잘 안 들리고, 휴대전화가 끊길 경우를 대비해 고령자에게 재해 시 자동으로 켜지는 라디오를 보급했습니다.

[오윤경/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MBC 재난자문위원)]
″대피 못하시는 분들 또 고령이신 분들 계신 곳들은 또 빨리빨리 확인 안 되고 이러는 부분들도 있어서 방송도 활용하고 직접 방문도 하고 하는 그런 다양한 수단들을 활용하도록 (해야합니다.)″

급증하는 기후재난의 첫 번째 대비책은 ′골든타임′ 안에 안전하게 대피하는 것이라는 게 방재 전문가들 일치된 조언입니다.

MBC뉴스 김현지입니다.

영상취재 : 손지윤 / 영상편집 : 류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