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류현준

[기후위기 목격자들②] 드넓은 백사장이 사라지고 바닷물이 밀려드는 해변 마을

입력 | 2023-08-15 20:16   수정 | 2023-08-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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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기후 위기를 몸소 겪은 사람들의 목격담을 전해드리는 연속 기획, 오늘은 강원도의 한 바닷가 마을 주민들이 겪은 이야기입니다.

삶의 터전이었던 해변이 불과 10여 년 사이에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기후환경팀 류현준 기자가 만났습니다.

◀ 리포트 ▶

거친 물결이 밀려오는 강원도 주문진읍 소돌해변.

해안 턱밑까지 들이닥친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집니다.

을씨년스런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고, 몇 안되는 파라솔도 접혀있습니다.

15년 전만 해도 소돌해변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가족 단위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넉넉한 백사장을 벗삼아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65살 김광용 씨.

바다를 볼 때마다 옛 풍경이 꿈만 같습니다.

[김광용/강원도 주문진읍]
″좀 아쉽죠. 이게 백사장이 죽었다는 것 자체가요. 이걸 좀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30여 년 전 김 씨가 직접 찍은 사진을 보면 넓은 백사장에 피서객들도 여럿 보입니다.

사진 속 피서객들이 앉아있던 바로 그 지점에 들어가 봤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피서를 즐기던 백사장에 지금은 침식 방지시설이 설치돼 있고요.

바닷물이 들어찬 상태입니다.

백사장은 왜 사라진걸까.

이곳은 MBC 뉴스센터에 XR 가상현실로 재현한 15년전 소돌해변입니다.

맑은 바닷물 앞으로 500미터 길이의 백사장이 길게 뻗어있습니다.

폭도 가장 좁은 곳이 10미터가 넘고 넓은 곳은 50미터에 달합니다.

여름이면 파라솔도 많이 보였고, 피서객 행렬이 이어졌다고 하죠.

그러던 해변에서 언제부턴가 모래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고, 2010년엔 침식이 가장 심한 D등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기후위기로 파도가 강해지고 해수면은 상승하는데, 해안 개발은 계속됐기 때문인데요.

소돌해변 외에도 동해안을 중심으로 전국의 많은 해안이 비슷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해안마을에 바짝 가까워진 파도를 막기 위해 방파제를 만들었지만, 다시 모래가 깎여나가면서 소돌해변은 ′침식관리구역′으로 지정됐습니다.

이제 주문진 사람들이 기억하는 소돌해변은 추억 속에만 있을 뿐입니다.

열일곱에 결혼과 함께 소돌해변 주민이 된 일흔네 살 장경옥 씨, 잠수부인 남편이 채취해온 미역이나 해산물을 팔아 생계를 꾸려오다 지금은 민박집을 하고 있는, 마을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누가 왜 찍었는지도 아득한 사진 한 장이,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그 시절 해변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장경옥/강원도 주문진읍]
″여기가 엄청 넓었거든요. 맨발로 나오면 이 모래 때문에 그러면 뜨거워서 안에까지 뛰어가서 물에 담궈야 돼요. 발바닥이 뜨거우니까요.″

사라진 건 모래뿐만이 아닙니다.

바다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년 넘게 횟집을 해온 남궁배 씨.

모래가 사라지면서 손님 발길도 끊기다시피 줄었다고 말합니다.

[남궁배/강원도 주문진읍]
″해수욕장은 모래가 많이 있어야지 사람들이 와서 놀고 (할텐데)..점점 없어지니까 그게 이제 타격이 엄청 큰 거죠.″

한때 여덟 곳이던 횟집들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거리는 한산할 따름입니다.

주민들은 수중 방파제 건설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모래 유실을 막아 백사장을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는데, 지난 2019년 국가사업으로 전환되면서 아직 착공도 못한 상태입니다.

그 사이 해안 침식은 계속 진행되고 있고, 이제는 마을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지복규/강원도 주문진읍 주문리 이장]
″안쪽에 주민들도 해일이나 이런 걸 걱정을 하고 있어요. 기후변화에 대한 그런 걱정이죠. 저도 실감합니다.″

MBC뉴스 류현준입니다.

영상취재 : 장영근 / 영상편집 : 류다예 / XR 그래픽 : 신용호, 박광용, 남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