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동경

[스트레이트] 쌍용차 노동자 짓누르는 100억원대 손해배상소송

입력 | 2021-11-14 20:56   수정 | 2021-11-14 20:58

Your browser doesn't support HTML5 video.

◀ 허일후 ▶

날벼락 같았던 정리해고를 겪고, 10년의 기다림 끝에 꿈에 그리던 직장으로 돌아갔지만, 회사는 다시 위기에 빠진 모습‥참…드라마보다 더 하네요…

◀ 김효엽 ▶

그렇습니다.

작년에 쌍용차 전원 복직이라는 뉴스를 듣고 아 이제는 정말 다 해결됐구나 싶었는데...

현실은 첩첩산중이군요.

◀ 이동경 ▶

네, 그런데 이들을 짓누르고 있는 ′현재 진행형′인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 허일후 ▶

아니 뭐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 이동경 ▶

네, 지난 2009년 정리해고 사태로 인한 파업 뒤, 쌍용차 노동자들은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손해를 물어내라는 소송을 당했는데요,

최종 판결에서 패소하면 이들이 갚아야 할 돈, 100억 원이 넘습니다.

◀ 리포트 ▶

2009년 8월 5일,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이날 경찰은 쌍용차 노조원의 마지막 보루였던 옥상 점거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기중기에 실려 건물 위로 접근하는 시위 진압용 컨테이너.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최루액과 물이 노동자들의 접근을 막는 사이, 방패와 진압봉, 다목적 발사기로 중무장한 경찰특공대원들이 한꺼번에 옥상으로 뛰어듭니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저항하던 노조원들은 이내 밀려 도망칩니다.

붙잡힌 노조원들은 경찰의 방패에 사정없이 찍힙니다.


이미 실신한 듯 엎드려 꼼짝 못하는 노조원에게도 끊임없이 방패가 내리꽂힙니다.

[쌍용차 노동자(뉴스데스크 2009년 8월 5일)]
″세 군데에서 특공대 애들이 내려오는 바람에 조합원들이 순식간에 몰렸던 거죠.
우왕좌왕하면서 밑으로 떨어진 사람이 있고요.″

이날 강제해산 작전을 계기로, 77일 간 이어졌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옥쇄파업′은 사실상 종결됐습니다.

경찰은 파업이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파업을 중단하면 노동자들을 선처하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내비쳤습니다.

[조현오 / 당시 경기경찰청장 (2009년 8월 5일)]
″비록 불법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내일까지 자진 이탈하면 최대한 선처를 하겠다.″

그러나 8월 6일, 파업이 완전히 끝나자 그 말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조현오 / 당시 경기경찰청장 (2009년 8월 7일)]
″경찰은 물론이고, 사측 직원들까지 생명과 신체의 안전까지 위협한 이런 사람들은 철저하게 밝혀내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것입니다.″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습니다.

2009년 10월.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벌였던 경찰은 파업 종료 두달만에 쌍용차 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파업 당시 노조원들의 공격으로 헬기와 크레인 등의 장비가 부서지고 경찰들이 부상을 당했다며 17억 원을 물어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쌍용차 사측이 파업 중 공장 파손과 조업 중단으로 인한 손실에 책임을 물어 10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13년과 2016년 진행된 1,2심에서 법원은 잇따라 경찰과 회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쌍용차 파업은 정당성을 잃은 불법·폭력 파업이라는 겁니다.

판결로 쌍용차 노조가 경찰과 회사에 배상해야 하는 돈은 각각 11억과 33억원.

만약 대법원에서 이대로 배상 판결이 날 경우, 물어야 할 돈은 이자까지 100억 원이 넘습니다.

[김득중 /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1억이라는 돈이 직장생활하면서 사실 현금으로 만져보기 어려운 돈이잖아요. 저희가 만져볼 수도, 또 볼 수도 없는 돈이거든요. (대법원에서) 정말 그렇게 (배상하라는)선고가 된다고 하면…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끔찍한 일들이 많을 거라고 하는 이런 불안감을 여전히 가지고 있어서···″

그런데 2018년, 반전의 계기가 찾아옵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용산 참사, 쌍용차 파업 등, 과거 경찰권 남용과 부당한 인권침해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 만든 경찰청장 직속 기구로, 2017년 발족됐습니다.

1년 조사 끝에 나온 쌍용차 파업 사건 보고서.

먼저 조사위는 2009년 쌍용차 파업 진압을 당시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최종 승인했다고 명시했습니다.

강희락 경찰청장이 강제 진압을 반대하자, 관할 지휘관인 조현오 경기경찰청장이 강 청장을 건너 뛰고 직접 청와대에 연락해 진압 승인을 받았다고 결론 내린 겁니다.

또 노조원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테이저건, 최루액, 경찰특공대 등 대테러 장비와 인력을 투입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심지어 경찰이 쌍용차 노조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일으키기 위해, 비난 댓글을 다는 50명 규모의 인터넷 댓글팀까지 운영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파업 당시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위법했다는 조사위의 결론.

조사위는 경찰에 쌍용차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을 취하하고 관련자들에게 사과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유남영 /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장(2018년 8월)]
″경찰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인해서 노동자들도 피해를 많이 입었는데요. 이 피해에 관해서는 노동자들이 그 당시에 사회적인 정황상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었던 여건에 있었고요. 이런 점을 감안을 해서, 국가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와 관련 가압류 사건을 취하할 것을 권고하고요.″

민갑룡 경찰청장은 조사위 결과에 따라, 사건 관련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민갑룡 / 경찰청장 (2019년 7월)]
″과거 경찰의 법 집행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큰 고통을 받았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선, 대법원 판결을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민갑룡 / 경찰청장 (2019년 7월)]
″쌍용자동차 관련 그 당시 상황 관련해서 여러 가지 불법적인 요소들이 있고 또 그에 대한 또 경찰의 대응에 있어서도 인권침해적인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에 법원에서는 그러한 점 등을 양면을 다 살펴서 거기에 맞는 그런 법적 판단을, 판결을 내려주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조사위에 이어 국가인권위도 경찰의 손배 청구에 정당성이 결여됐다는 의견을 냈지만 경찰 입장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손배소송 취하를 위해 국회가 나섰습니다.

국회는 지난 8월 여야 의원 142명 명의로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한 데 이어, 같은 달 국회의원 117명이 이름을 올린 결의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이은주 / 정의당 의원(올해 8월)]
″쌍용자동차 사태로 인해 발생한 경찰장비 파손 등과 관련하여 국가가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등에 대하여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 취하 의견을 대법원에 제출하도록 촉구하고···″

결의안까지 통과됐지만, 경찰은 이번에도 별 입장을 내지 않았습니다.

[송영섭 변호사]
″경찰 입장에서는 이것을 하나의 어떤 사례로 만들어서 이후에 이와 유사한 사례를 방지를 하겠다. 이것을 활용을 하겠다. 이런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 노동자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아무래도 주장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다수의 사람들에 대해서 (국가가 낸) 거액의 손해배상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공포거든요.″

결의안과 별개로 노동자와 가족에 대한 무분별한 손배 소송을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안′도 발의됐습니다.

거액을 배상할 처지에 놓인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시민들이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건넨 데에서 이름을 따 온 법안입니다.

노란봉투법안은 지난 19대, 20대 국회에서 잇따라 발의됐지만,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