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취재해보니, 법무법인이나 각종 이익단체에 퇴직한 고위 관료가 가는 건 행정부나 법원, 검찰만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전문위원 시절 쌓아놓은 방대한 인맥, 그리고 아직 현직에 있는 동료 전문위원을 통한 티나지 않는 로비가 가능할 거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 리포트 ▶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
코로나가 한창 확산되고 있던 지난해 7월 이곳에 한국토지주택공사 LH, 한국도로공사, 국토교통진흥원 등 공공기관 16곳의 기조실장과 국회협력관 등이 모였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장 모 국회 수석전문위원.
일종의 환송회 자리였습니다.
장 수석전문위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운영위원회로 자리를 옮기게 되자 국토교통위와 관련이 있는 국토부 산하기관 간부들이 우르르 한 자리에 모인 겁니다.
[국토부 A 산하기관 직원 (환송회 참석자)]
″아무래도 이제 친분을 유지해놓으면 다음에 가서 이렇게 만나서 대화할 때도 조금 유하지 않겠습니까.″
[국토부 B 산하기관 직원 (환송회 참석자)]
″그냥 자연스럽게 가서 어느 기관에 누구라고 인사도 드리고 이렇게 하는 거죠.″
이들은 돈을 모아 70만원 상당의 2돈짜리 황금 열쇠를 장 수석위원에게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저녁 자리가 끝난 뒤에는 스크린골프장에서 접대가 이어졌습니다.
[서복경/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
″환송식이라고 하고, 선물도 준비하고 그걸 갹출도 하고 이랬다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정도 관계라고 얘기하면 이거는 업무상 관계를 넘어서는 관계거든요. 행정부처 공무원들하고 담당 소관위원회의 공무원들의 사이가 일상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를 첫 번째 방증해주는 사례인 거고.″
공공기관 간부들이 업무상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회 상임위 수석위원을 접대하고 금품을 제공한 사건.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국회사무처와 국토부는 부랴부랴 감사에 나섰습니다.
장 수석전문위원은 황금열쇠 값부터 참석자들에게 돌려줬습니다.
〈스트레이트〉가 입수한 국토부 감사결과 보고서입니다.
당시 모임에 참석한 16개 공공기관 직원 총 26명에 대한 감사가 진행됐는데, 환송회를 주도한 2명에게만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다른 참석자들은 경고와 주의 처분만 받았습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
″그냥 모임에 참가하고 스크린 골프나 이런 거 안 하고 식사만 하신 분들도 있네요. 그런 분들은 주의 처분이 된 걸로 확인됐습니다.″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국회사무처 판단을 근거 삼아 솜방망이 징계에 그친 겁니다.
[한상희/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엄밀히 본다면 일종의 사후 뇌물에 해당되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국회의 윤리심사 과정에서 이미 소관 상임위원회를 옮겼기 때문에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이 판단은 잘못된 것이죠.″
그렇다면 수석전문위원 장씨는 어떻게 됐을까?
지난해 9월 징계위원회가 열렸는데, 결과는 품위유지 위반에 대한 불문경고였습니다.
불문경고, 그러니까 경고는 하는데, 그렇다고 징계를 할 정도의 비위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
″당시 국회의장께서도 ′안타깝지만, 책임을 져야 되지만 여러가지 고려해서 결정하라′고 그래서 국회 중앙징계위원회에서 그렇게 결정한 거예요.″
장 수석전문위원은 이 징계가 나오고 이틀 뒤 퇴직했습니다.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한 대형 법무법인의 홈페이지.
장 전 수석전문위원이 현재 입법전략자문팀 고문으로 소개돼있습니다.
올해 1월 1일 이 법무법인에 상임고문으로 취업한 겁니다.
장 전 수석전문위원이 소속된 입법전략자문팀에 대해, 해당 법무법인은 고객의 정책수요가 입법안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고객이 원하는 최선의 입법결과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광고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입법 로비스트인 셈입니다.
그러나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문제없이 통과했습니다.
장 전 수석전문위원에게 법무법인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장OO/A법무법인 고문(전 국회 수석전문위원)]
″법무법인 내부분들한테 국회가 이렇게 돌아가고 이럴 때는 지금 같으면 이제 정기국회고 그다음에 예산 심사 등등하고 있다. 이런 도움을 드리고 있는 거죠.″
국회 전문위원 후배들을 직접 만나거나 이권 단체들을 대변해 로비를 하는건 아니라고 해명합니다.
[장OO/A법무법인 고문(전 국회 수석전문위원)]
″저희는 그런 건 없습니다. ″
(입법 일정이나 절차에 대해서, 로펌 자체가 필요한 이유가 있어요?)
″그거는 이제 법인의 문제니까요.″
전직 수석전문위원들에게 이렇게 법무법인이나 이익단체에서 전문위원을 데려가는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주저없이 ′로비′라는 대답이 나옵니다.
[전 국회 수석전문위원]
″로비하는 거지. 로비. 로비라는 게 뻔하잖아요. 전문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인맥으로 ′그래, 네가 이 사람들 소개시켜′ 다 그런 거잖아.″
[정재룡/전 국회 수석전문위원]
″어떤 법안이 이해관계자들 입장에서, 그 법안을 이해관계자들이 보면 불리한 법안에 대해서 무슨 반대 로비를 하거나‥″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료를 접촉하는 건 외부로 티가 날 수 있지만 전관 전문위원이 현직에 있는 선후배 전 문위원을 접촉하는 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계산입니다.
[정재룡/전 국회 수석전문위원]
″결국 국회 후배들에게 법안 관련이든 기타 또 국정감사든 뭐든 해서 뭔가 좀 후배들한테 연락을 하고, 부탁을 하고 후배들한테 부담을 주는그런 역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국회사무처가 공개한 퇴직공직자 취업 현황.
최근 5년간 20명의 국회 고위 공직자가 법무법인이나 이익단체, 기업 등에 재취업했습니다.
대부분 전문위원이나 수석전문위원을 거쳐간 인물들입니다.
[서복경/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
″′이 의안은 어느 단계에서 막을 수 있다′거나, ′이 의안은 어느 단계에서만 넘어가면 일사천리로 간다′거나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로비를 해야 되는가′라는 정보가 필요한데 국회 대상 로비에서 이 3가지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아는 게 이제 사무처 공무원 퇴직자들이죠.″
특히 수석전문위원에서 승진해 사무차장, 입법차장, 예산정책처장 등 차관급 최고위직에 올랐던 인물 4명은 5대 대형법무법인으로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