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저희는 개인투자자, ′동학 개미′들을 떠나게 만드는 한국 주식시장의 문제점을 보도했습니다.
◀ 허일후 ▶
그 문제점 중 하나가 ′물적분할′이었는데요, LG화학에서 물적분할된 회사, LG에너지솔루션 주식 청약에 무려 114조원이 몰렸죠?
◀ 손병산 ▶
네, 그런데 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인 LG화학은 지난주에도 약세였습니다.
1년 전보다는 주가가 30% 넘게 떨어져 ′공매도보다 물적분할이 더 무섭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 김효엽 ▶
이렇게 주주와 투자자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은 기업들의 의사 결정을 잘 보면 흔히 ′오너′라고 부르는 지배주주, 총수 일가에게는 유리한 결정인 경우가 많습니다.
◀ 손병산 ▶
네. 현대차와 CJ그룹도 이유가 궁금한 자회사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역시 총수 일가를 위한 상장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입주한 위례신도시의 힐스테이트 아파트.
현대엔지니어링이 지은 곳입니다.
′힐스테이트′는 원래 현대건설의 아파트 브랜드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5년부터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1년에 수십억씩 브랜드 사용료를 내고 같이 쓰기 시작했습니다.//
주택 수요자들의 선호가 높은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현대엔지니어링의 아파트 사업은 급성장했습니다.
[현대엔지니어링 홍보 영상]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 2만여 세대를 공급할 예정이며 도시정비 사업에서 2년 연속 1조 클럽 가입이 전망되고 있는 만큼‥″
주로 플랜트 사업에 집중하던 현대엔지니어링은 이처럼 최근 건축 사업에도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분양과 수주 실적이 좋을수록 다음달 앞두고 있는 주식시장 상장에서도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우진/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힐스테이트′라는 브랜드 이름을 가지려면 굉장히 힘든 것이고 만약에 현대엔지니어링이 별개의 독립된 회사였다면 그만큼 지금까지 (아파트) 사업 실적을 하기 어려웠을 텐데‥″
현대엔지니어링이 공식적으로 밝힌 상장 이유는 환경·에너지 신사업 투자금 마련입니다.
그런데 현대엔지니어링이 갖고 있는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은 무려 2조원.
상장을 통해 현대엔지니어링으로 들어오는 돈은 *3천억원(확인필요)에 불과해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이지우/참여연대 간사]
″기업 공개를 하는 이유를 보통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보는데 이 기업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현금이 많아요. 그런 상황에서 IPO(주식시장 상장)를 한다는 거는 사실 ′현금이 그렇게 필요 없는데도 IPO를 한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그런데도 상장을 하는 이유가 뭘까?
상장을 통해 현대엔지니어링의 대주주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손에 쥐는 돈은 4천억원에 달합니다.
3천억 정도를 수혈받는 회사보다도 많은 겁니다.
비결은 상장전에 기존주주가 갖고 있던 주식을 상장과 함께 팔 수 있게 해주는 이른바 구주매출입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 계획을 보면 새로 발행한 주식을 파는 ′신주 발행′은 25%에 불과하고, 기존주주가 주식을 파는 ′구주 매출′이 75%에 달합니다.
이 구주 매출 덕분에 정의선 회장이 보유주식 534만 주, 4천억 원 어치를 팔 수 있는 겁니다.
[김우찬/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내부자의 경우에는 보호예수제도가 있어서 팔지 못하게 하는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구주매출은 거의 무한정 허용을 하고 있거든요. 마찬가지의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자가 주식을 다 내다 파는 거거든요. 저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분도입니다.
출자의 흐름이 현대자동차에서 시작해 기아와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을 거친 뒤 현대모비스로 모였다가 다시 현대모비스가 현대자동차 지분을 갖고 있는 순환 구조로 돼있습니다.
10대 그룹 중 유일한 순환출자 구조입니다.
이걸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대차 지분을 많이 보유한 현대모비스가 지배구조의 정점이 돼야 하는데, 정작 정의선 회장의 모비스 지분은 0.3%에 불과합니다.
모비스 지분을 매입할 거액의 승계 자금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을 상속 재원 마련을 위한 상장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이지우/참여연대 간사]
″그러니까 ‘이 IPO(주식시장 상장)는 회사를 위한 거라기보다는 대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또 한 번 의문을 가질 수가 있는 거고. 그래서 ′아, 이건 뭔가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 혹시 승계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걸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에 대해 현대엔지니어링측은 ″구주매출은 주주 재산권 행사 수단이자 권리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항″이라고 즉답을 피했습니다.//
이렇게 ′구주 매출′ 방식으로 승계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벌은 또 있습니다.
CJ 그룹입니다.
이재현 회장의 장남인 CJ 3세 이선호 씨.
2019년 9월 미국에서 귀국하는 길에 액상 대마와 대마 사탕들을 밀반입하다 인천공항에서 적발됐습니다.
′혐의를 인정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이 씨를 귀가시키자 봐주기 논란이 불거졌고, 이 씨 스스로 택시를 타고 검찰청을 찾아가 체포되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법원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습니다.
[이선호/이재현 CJ 회장 장남]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한 마음입니다.″
(대마는 왜 가져오셨습니까?)
그런데 이 일로 CJ그룹 업무에서 물러났던 이선호 씨는 작년 1월 슬그머니 CJ제일제당으로 복귀했습니다.
지난 9월 미국의 유명 농구팀 LA 레이커스와 유니폼 후원계약 기념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며 공개 행보를 시작했고, 지난달에는 임원인 ′경영 리더′로 승진했습니다.
이른바 ′자숙 기간′을 갖는 사이 그룹 차원에서는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는 게 학계와 시장의 분석입니다.
주인공은 헬스앤뷰티스토어 1위 업체인 CJ올리브영.
전국 1천2백여 개 매장에 온라인몰까지 성장가도를 달리며 지난해 매출 2조 4천억원을 달성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본격적인 상장 준비에 착수했는데 예상 가치는 4조원에 달합니다.
신세계나 롯데쇼핑 시가총액을 뛰어넘습니다.
바로 이 올리브영의 대주주가 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와 딸 이경후 CJ ENM 부사장입니다.
[김우찬/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결국 기업공개를 하고 구주매출을 하게 되면 여기서 엄청나게 현금을 확보하고 역시 알짜배기 핵심 회사의 지분을 매집하는 거죠. 그래서 승계 목적이 없다고 부인을 할 수가 없을 겁니다.″
대주주가 되는 과정은 복잡하고 치밀했습니다.
이선호 리더와 이경후 부사장이 애당초 아버지 이재현 회장으로부터 증여받거나 사들인 주식은 방송송출업체인 CJ파워캐스트와 그룹의 정보시스템 관리업체인 CJ시스템즈 지분이었습니다.
이후 CJ시스템즈와 올리브영이 합병됐고, 합병 법인은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에 힘입어 안정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중간중간 지분 교환이 일어나고 합병법인이 다시 IT부문과 올리브영으로 분할돼 IT부문이 지주사인 CJ에 흡수되면서 남매는 CJ 주식 일부와 알짜 회사인 올리브영 주식을 차곡차곡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김우찬/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올리브영의 경우에도 사실은 원래 다른 회사와 합병이 돼 있었고 그 다른 회사는 사실 일감 몰아주기로 문제가 됐던 회사고‥ 자기 핏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배주주 만들어주고 CEO 만들어주고 그룹 회장 만들어주고. 회사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증시 상장 주관사 선정까지 마친 CJ올리브영 역시 ′구주 매출′과 ′신주 발행′을 병행할 방침입니다.
CJ 지분은 이재현 회장이 약 42%, 이선호 리더가 2.75%, 이경후 부사장이 1.19%를 갖고 있습니다.
개미들이 주식을 청약하면서 3세들에게 들어오게 될 돈은 지주사 주식 구입이나 상속을 위한 돈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우진/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만약에 구주매출이 포함된 IPO(주식시장 상장)라면 구주를 누가 파느냐를 확인을 하셔야 합니다. 이게 만약에 지배주주 일가가 개인 지분을 파는 거면 그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싸게는 안 팔겠죠.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주식이니까. 이러다 보면 공모가가 적정가격 대비 싸게 나왔을 가능성이 매우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