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독재 정권 시절, 수많은 이들이 그에게 잔혹한 고문을 당했지만,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사과도 하지 않은 채 88살 천수를 누린 뒤 숨졌습니다.
[김성학/납북어부 간첩 조작 피해자]
″양말을 벗긴 다음에, 볼펜 굵기 정도로 그런 것을 엄지 발가락 사이에 끼더라고‥ 그러고 거기에 물을 부어요. 전기가 잘 흐르게‥″
[이경일/전 언론인·고문피해자]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드니까 빨리 의식이 사라져 주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의식이 빨리 사라지지 않았어요.″
이근안이 자행했던 악랄한 고문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났지만, 그가 과거 정부에서 받았던 서훈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데요.
국가폭력 가해자들이 받았던 서훈 전반을 본격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b>■ 가해자들의 ′훈장′</b>
지난 1983년 여름, 연세대 대학원에 다니던 재일동포 3세 김병진 씨는 집에 가던 중 영문도 모른 채 건장한 남성들에게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갔습니다.
영장도 없이 감금돼 혹독한 고문과 가혹 행위를 당했습니다.
[김병진/재일동포 간첩 조작 피해자]
″발전기에서 코일 풀고 그 코일을 손가락에 감아요. 양쪽 손가락에. 그래서 레버를 돌리고 전기를 가게 하고 무슨 스위치를 누르면 의자가 밑으로 내려갑니다. ′너 이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한강에 흘려보낸다′″
그렇게 김씨는 간첩혐의를 인정했습니다.
당시 보안사는 검찰 기소도 이뤄지기 전에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을 잡았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습니다.
보안사는 김씨를 간첩으로 조작한 것도 모자라, 다른 재일동포 유학생들 중 간첩을 잡아내라며 김씨를 협박해 보안사에서 일을 시켰습니다.
[김병진/재일동포 간첩 조작 피해자]
″가족을 협박하는 거. ′네 마누라는 윤락녀로 떨어뜨리고, 네 아기는 부모가 누군지 알 수 없게 해서 고아원에 보내버리겠다′″
2년여 만에 가까스로 일본으로 도망친 그는 지난 1988년 보안사의 간첩 조작 실상을 고발하는 책을 냈습니다.
자신에게 끔찍한 고문을 행했던 이들의 이름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했습니다.
[김병진/재일동포 간첩 조작 피해자]
″피해자들은 다 실명으로 보도됐는데 사진도 나가고, 아들 사진까지‥ 100일도 안 되는 아기의 여권 사진까지 언론에 나갔어요. 피해자들은 이렇게 실명으로 나가서 사회적으로 매장됐는데 가해자들은 보호받아서 말이나 됩니까?″
그렇게 밝힌고문 조작 가해자는 보안사 대공처 수사과장 우종일, 수사2계장 김용성, 수사2계 반장 고병천 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대학생이던 재일동포 김태홍 씨도 간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역시 아무 이유없이 끌려가 35일간 감금된 상태로 가혹한 고문을 당했고, 결국 보안사의 각본대로북한의 첩보원이라고 허위 자백했습니다.
[김태홍/재일동포 간첩 조작 피해자]
″국가 비밀을 탐지했다는 겁니다. 거기 애들(보안사 수사관들)이 지 멋대로 작문을 합니다. 소설을 씁니다. ′이게 아니다′ 하니까 막 마구잡이로 두드려 팹니다.″
그렇게 무려 15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김태홍/재일동포 간첩 조작 피해자]
″24살부터 39살까지 그 15년 동안 감옥살이 했는데 아주 귀중한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못 해서 결국 사회생활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죠.″
조업 중 납북되는 경우가 잦았던 어부들 역시 간첩 조작의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전주보안대 과장으로 승진한 김용성은 지난 1967년 황해도 앞바다에서 조기잡이를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피랍됐다 귀환한 서창덕 씨를 먹잇감으로 삼았습니다.
17년이나 지난 시점에, 서씨를 갑자기 불법 구금하고는 부하 이우철과 함께 피를 토할 때까지 매질 한 끝에 허위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고 서창덕/납북어부 간첩 조작 피해자]
″′전향만 하라′. 내가 글씨를 쓸 줄 알아야 전향을 하고 뭘 하든 하지. 곤봉 있잖아요. 그것이 막 다 부러져서 여기를 지금 일곱 바늘을 꿰맸어요.″
모진 고문을 받은 피해자들의 삶은 순식간에 망가졌지만, 고문 조작 수사 당사자들에겐 보상이 뒤따랐습니다.
스트레이트가 입수한 이들의 서훈 내역.
군사 정권에서 보안사 우종일, 김용성, 고병천, 이우철 4명이 받은 서훈은 모두 13개에 달합니다.
모두 국가안보에 뚜렷한 공을 세운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국훈장을 받았습니다.
막대한 포상금과 함께 승진도 하고 본인은 물론 자녀까지도 공무원 채용, 취업 가점 등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았습니다.
[변상철/전 진실화해위 조사관·공익법률센터 운영]
″현물로 훈장을 받아서 그걸로 끝이 되는 게 아니거든요. 당시 조작 간첩으로 훈장 받았던 사람들 중에서 자녀들 8명이 가점을 받아서 공직에 나갔다라고 하는 것을 저희가 확인했어요.″
이들이 고문을 통해 조작했던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 납북 어부 서창덕씨 간첩 사건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상 조사를 통해 고문 조작 사실이 드러났고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받은 보국훈장은 아직도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서진석/고 서창덕 씨 아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왜 떳떳하게 살고 우리 아버지는 왜 불쌍하게 살아야 되는지 저는 그게 이해가 안 간다는 거예요. (훈장이) 가짜라고 판명이 됐는데 지금 20년 동안 끌고 오는지, 저는 이게 참 국가가 좀 무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병진/재일동포 간첩 조작 피해자]
″그 사람이 나를 간첩으로 만들어서 고문했다는 것이 나라에서 국가에서 칭찬하고 있다는 얘기 아니에요? 그게 용납됩니까? 피해자들에 대한 모독이죠.″
스트레이트는 정부가 서훈을 취소한 내역을 확보해 분석해봤습니다.
간첩 조작 사건임이 밝혀지면서 취소된 서훈은 63건, 하지만 과거사 조사활동과 재심 등을 통해 서훈 취소 대상으로 꼽힌 사건은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변상철/전 진실화해위 조사관·공익법률센터 운영]
″지금까지 취소된 사람 빼고도 160명 이상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무죄 받은 사건들, 또 재심에서 무죄 받은 사건들‥″
이렇게 간첩조작 가해자들의 서훈이 취소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
현행법상 서훈은 거짓공적, 즉 그 사유가 거짓임이 드러날 경우 취소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국방부, 경찰, 국정원 등 각 기관들이 서훈 사유가 거짓임을 밝히는 일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겁니다.
뒤늦게 거짓 공적인지 전수조사에 나섰지만 구체적인 공적 조서를 가지고 있지 않아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걸로 파악됐습니다.
스트레이트는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책상을 턱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사건 은폐에 앞장섰던 박처원 전 치안감의 경찰 공적 대장을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오랜 기간 여러 간첩조작 사건에 관여한 그는 대통령 표창 4건, 보국훈장 2건 등 총 13건의 서훈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경찰 문서에 남아있는 박 전 치안감의 서훈 사유는 ′국가안보유공′, ′대남간첩 침투방지′, ′간첩검거′.
이렇게 포괄적으로만 기록돼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 때문에 서훈을 받았던 것인지 알 수 없어 거짓 공적이라고 결론내리기 어렵다는 겁니다.
하지만 의지만 있었다면, 정부가 각 부처에 있는 당사자들의 인사 기록을 찾아내서 과거사 재조사 자료 등과 비교 분석해 충분히 서훈의 거짓 여부를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현/국회의원·국회행정안전위원회]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죠. 일단 진실화해위원회에 결정문이 있고 법원 판결문도 있고 각종의 서류들이 지금 있는 상황입니다. 이걸 같이 놓고 비교해 보면 딱 드러날 사안이거든요. 그런데 그 작업 자체를 지금 제대로 안 했다는 거죠.″
◀ 공윤선 기자 ▶
군사정권 시절의 이런 고문 조작 사건은 고문을 직접 실행한 이들 외에도, 고문 사실을 알면서도 피해자들을 재판에 넘겼던 검사, 그리고 유죄판결을 내렸던 판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그 어느때보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적극적인 동조로, 또는 침묵으로 국가 폭력에 가담했던 법조 엘리트들의 이름.
그리고 그밖의 모든 가해자들의 실명도 낱낱이 기록하고 공개하는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b>■ ′헌법파괴′를 기록하다.</b>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가 납북어부 서창덕씨의 간첩 조작 사건을 조사한 뒤 펴낸 보고서.
조작과 고문을 했던 수사관 김용성과, 이우철의 이름이 가려져 있습니다.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에 초점을 맞췄을 뿐, 가해자의 이름조자 남기지 않은 겁니다.
′헌법을 파괴한 이들의 실명을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이 목표를 위해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명예교수의 주도로, 서중석, 이만열 교수 등 많은 연구진이 참여해 10여년의 연구와 고증을 거쳐 반헌법행위자열전이 완성됐습니다.
[한홍구/반헌법행위자열전 책임편집인]
″고문 조작당하고 두들겨 맞은 사람들은 수두룩 빽빽하게 많은데, 가해자는 전부 다 OOO이에요. 뻔히 알면서도 OOO으로 처리가 됐어요. 국가폭력의 가해자로서의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역사에다가 아주 또렷이 새기는 그 작업이 바로 반헌법행위자열전입니다.″
정부 수립 이후, 내란·학살·고문·간첩조작 등 권력을 이용해 헌법 정신을 파괴한 312명의 실명과 행적이 담겼습니다.
역대 대통령과 정치인, 안기부, 군, 경찰 소속 공직자들이 총망라됐는데,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던 판,검사들을 전면에 배치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b>[′최악의 대법원장′으로 지탄받은 ′사법농단′의 주역]</b>
2011년 이명박 정권 말기 사법부 수장에 오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을 정치 거래 수단으로 삼은 이른바 사법농단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고 지난 1월 2심에선 일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습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오른 가장 큰 이유는 군사정권 시절의 행적 때문입니다.
1970년대 유신정권의 폭압적 통치 수단이자 훗날 위헌으로 판정받은 ′긴급조치′ 양승태 판사는 유신시절 이 긴급조치 위반 사건 재판을 맡으며당시 판사로서 가장 많은 12건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훗날 간첩 조작으로 밝혀진 사건 재판에도 6건이나 참여해 중형을 내렸습니다.
지난 1986년 큰 아버지가 조총련 소속이란 이유로 끌려가 85일동안 감금돼 고문을 받고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했던 강희철 씨.
당시 재판장이었던 양 전 대법원장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강희철/간첩 조작 피해자]
″그분이 전혀 고뇌하는 게 없어요. 공소장 읽어보면은 뻔하잖아요. ′지시받아서 진행을 하는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증거는 혹독한 고문에 못이겨 내밷은 허위자백 뿐이었지만, 당시 양승태 판사는 강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강희철/간첩 조작 피해자]
″자기의 이득을 위해서 정의를 그냥 묻어버린 거나 마찬가지죠. 내 인생을 완전히 그냥 말살시켜 버린‥ 전범이나 마찬가지 그런 사람이지.″
그는 대법원장 인사청문회 당시 자신이 재판에 관여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용의가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아직도 전혀 사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OO법무법인]
″<반헌법행위자 열전에 전 대법원장님이 포함되셔서 이제 거기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나‥> 네, 말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강희철/간첩 조작 피해자]
″나는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는데 그 사람들은 그대로 그거를 누리고 있거든요. 그 혜택을. 너무 이게 근데 웃긴 나라 아니에요? 그 사람들이 그동안 누렸던 거 잘못된 거잖아요.″
<b>[제5공화국의 대표적인 정치 판사]</b>
전두환 정권을 상대로 민주화운동을 하다 구속됐던 김근태 당시 민청련 의장.
1985년 열린 김근태 재판의 재판장은 서성 판사였습니다.
김근태 전 의장은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전기고문을 포함한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며 첫 공판에서부터 고문 피해 사실을 자세히 진술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담요 위 임에도 불구하고 발뒷꿈치가 짓뭉개졌습니다.″
공소사실 모두 고문으로 허위 자백한 내용이라고 간절히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끝내 외면했습니다.
재판장 서성 판사는 혐의사실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못박으며 김 전 의장에게 징역 7년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는 여러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도 맡았는데, 고문 조작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을 외면한 채 하나 같이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군사정권에서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대법관까지 올랐습니다.
서성 판사는 2년전 출판된 자신의 회고록에서 김근태 재판에 대해″엄정한 중립을 지키며 피고인한테 모든 기회를 줬다″면서,″당시엔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이 우리나라 실정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권법 전공)]
″일단은 검찰이나 사법부가 해서는 안 될 일들에 대한 각성이나 반성의 어떤 기준들이 스스로 만들어야 되는데 그런 게 일체 없고 견제하는 권력이, 사실상 수단이 없죠. 법조인들은 거의 철옹성이 되었고‥″
<b>[부림사건에서 통합진보당 해산까지‥ 전천후 용공조작 전문가]</b>
천만 관객을 모았던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됐던 부림사건.
지난 1981년, 평범한 교사와 대학생, 회사원 등 19명을 잡아 가둔 뒤, 모진 고문을 통해 국가 전복을 도모했다고 조작한 사건입니다.
담당 검사는 대표적 공안검사로 꼽히는 고영주 전 자유민주당 대표였습니다.
그는 보안사가 고문으로 조작한 재일동포 간첩사건도 맡아서 그대로 기소했습니다.
[김병진/재일동포 간첩 조작 피해자]
″검사 앞에서 번복해 봐야 검사는 다시 보안사에 돌려보내요. 또 고문이 시작됩니다. ′검사 앞에서 왜 부정했냐.′″
민주화 이후 검사장까지 지낸 뒤 퇴직한 그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맡으며 언론 탄압에 앞장서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독재정권 타도하자″
지금도 극우 정당 소속으로 12·3 내란을 옹호하고 이재명 정권 타도를 외치고 있습니다.
[고영주/전 공안검사]
″탄핵은 당연히 반대하고 계엄도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행정부의 기능을 마비시켰잖아요.″
고 전 대표에게 반헌법행위자열전 등재에 대한 입장을 묻자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답합니다.
[고영주/전 공안검사]
″거기에 낀 사람들은 전부 헌법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기에 못 낀 사람들이 부끄럽게 생각을 해야 될 겁니다.″
그는 또 자신이 기소했던 부림사건이, 이미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공산주의 혁명이라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헌법정신을 유린한 국가폭력 범죄 앞에서 침묵하거나 적극 협력했던 엘리트 판검사들.
반헌법행위자열전 등재자 312명 중 4분의 1 가량인 76명이 이들 판, 검사들이었습니다.
대부분 대법관 등 고위 법관, 검사장이나 법무부장관에 오르며 승승장구했고, 80%에 달하는 59명은 국가로부터 훈장도 받았습니다.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권법 전공)]
″민주화 과정에서 군대, 경찰이 나름대로 이제 통제도 되고 민주주의 인권 교육이 강화됐습니다. 그러나 사법부나 검찰은 그냥 여전히 아성으로 있었고‥″
지난 2009년 발간된 친일반민족행위자인명사전처럼, 방대한 12권 분량의 반헌법행위자열전을 완성하는 데에도 수 만 명의 시민들이 후원금을 보탰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고 민주헌정질서를 파괴했던 모든 이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단죄하는 일.
그 당연한 책무를 제 때 해내지 못하고 미뤄왔던 탓에, 또다시 12·3 내란의 빌미를 줬다는 역사의 경고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할 때입니다.
[한홍구/반헌법행위자열전 책임편집인]
″정말 아주 다양한 그 국가폭력이 자행됐거든요. 그런데 왜 그러냐 하면은 ′그래도 된다′라고 생각했던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처벌받지도 않고 사죄하지도 않고 피해자들에게 잘못을 용서를 구하지도 않은, 우리는 그런 가해자와는 단호히 작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