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북한은 왜? <수용소에 28년 갇힌 이유는?>

입력 | 2017-07-09 14:30   수정 | 2017-07-0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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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룡]
″북한 사회에 대한 궁금증을 알아보는 <북한은 왜> 시간입니다. 최근 미국인 오토 웜비어 사망사건으로 인해서 북한의 수용소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오늘은 북한의 수용소가 과연 어떤 곳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은영]
″네, 오늘 도움 말씀 주실 탈북민 최성국 씨, 그리고 임순복 씨 함께 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고주룡]
″오늘은 북한 수용소의 실태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는데요. 두 분 다 수용소에 다녀오신 경험이 있으시다고요.″

[최성국]
″네 있습니다. 저는 수용소는 아니고, 그 감옥에 세 번 갔댔고 그리고 수용소 가기 전전 단계 그 노동단련대 6개월을 했어요. 갔다 왔습니다.″

[임순복]
″최성국 씨도 감옥에 3번이나 가셨는데, 어떤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최성국]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는데 예쁘게 말하면 나름 운동가. 하하하. 이제 한국 영화를 복사해서 팔다가 한번 갔고 그리고 한국 영화 팔아가지고 처벌돼가지고 막 감시대상이 되고 하다 보니까 너무 살기 힘든 거예요. 그래서 그 가족을 탈출시켰어요. 한국으로. 그래서 또 한 번 가고. 그리고 한번은 또 탈출시킨 어머니가 저한테 연락을 보냈죠. 돈도 보내고. 탈북하라 연락도 보내고 그러니까 이 돈을 받다가 또 잡혀가지고 또 한 번 갔죠. 세 번 갔고 세 번 중에 다 빠져나왔는데 한번은 못 빠져나오고 형을 형벌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노동단련대 6개월을 하고 왔죠. 네.″

[고주룡]
″그러니까 세 번을 감옥을 들어가셨는데 두 번은 빠져나오시고 한번은 실형을 사셨다. 이 말이죠?″

[최성국]
″실형을 살은 거죠. 예.″

[구은영]
″네 그리고 임순복 씨는 수용소에 그리고 최성국 씨는 감옥에 구금됐다고 지금 이야기를 하셨는데 감옥과 수용소의 차이가 어떤 거죠?″

[최성국]
″이게 이제 감옥은 그러니까 처벌을 형 실형을 산다고 하면 노동단련대, 교화소, 수용소, 이렇게 있단 말이에요. 크게. 근데 여기에 가기 전에 먼저 감.″

[고주룡]
″보통 어떤 죄목으로 가게 되나요?″

[임순복]
″죄목이라는 게 크게 없어요. 우리는 이제 죄도 모르고 잡혀가니까 이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보면 저희 동네에서 이제 수용소 이제 시도때도없이 수용소는 뭐 정해진 기간이 없잖아요. 그러면은 이제 어느 순간에 밤에 풀차에 실려서 이제 들어와요. 니네 왜 여기 들어왔니 이렇게 물어봐요. 한국 드라마 보다가 들어온 사람들도 있고 중국 드라마도 보지 말라는 거 보다가 잡혀 들어오는 사람 있거든요. 그러니까 들어 보면 죄도 아닌 죄 말 같지 않은 죄 때문에 억울하게 수용소에 들어와서 진짜 짐승처럼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최성국]
″여기서 조금 보충한다면 비사회주의적인 거는 몽땅 다 범죄가 된단 말이에요. 이해하기 쉽자면 대한민국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반적인 일들이 북한에서는 100% 다 범죄란 말이에요. 예를 들어 말씀하셨듯이 한국 영화를 봤다거나 누구를 빌려줬다거나 대통령을 욕했다거나 이건 진짜 수용소 가야되는 거예요. 진짜 가문이 그냥 다 멸족돼야 되는 거고요.″

[구은영]
″네, 지난달이었습니다. 미국인 오토 웜비어 씨의 사망 사건으로 국제사회에서 북한 수용소에 대한 비인권적인 실태가 다시 조명됐습니다. 웜비어 씨가 감금된 곳이 정치범 수용소였다고요. 이곳은 어떤 곳입니까.″

[최성국]
″이제 북한은 외국인 수용을 따로 해요. 그 외국인을 일반 북한 범죄자들하고 같이 두지도 않고. 그런데 웜비어 씨 사망에 대해서 제가 북한에 감옥에서 경험한 바에 그대로 조금 설명 드린다면 이제 북한에서 일단 죄인이 되면 감옥에 가는 순간 죄인이란 말이에요. 그 죄인이 되면 북한 주민들은 누구나 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런데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라서 거기 습관된 웜비어 같은 경우에는 자꾸 대화하려고 하고 자기가 자기의 죄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하고 논리적으로 뭔가 설명하려고 하고 이런 행동을 취할 거란 말이에요. 근데 이런 거는 북한에서는 말도 안 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걸 완전 무자비하게 막 내려까고 치고 막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니까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이해할 수 없는 그 고통. 그러다가 끝내 그 의식을 잃고 쇼하는 줄 알고 그대로 내버려뒀으니까 깨어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한번 들어가면 한번 들어가면 정상인이 돼서 나오기 힘든 곳이 그런 감옥이고, 그리고 수용소고. 이렇게 볼 수 있겠죠.″

[고주룡]
″네, 우리 저 최성국 씨가 그 수용소에서의 그 정신적, 또 육체적인 고문 이런 걸 좀 설명해주셨는데 실제 본인이 경험하셨거나 아니면은 주변에서 이 목격하신 것들은 어떤 게 있습니까?″

[최성국]
″제가 만화에도 그려놨는데 야, 거기는 그 감옥인데 24시간 불이 있어요. 북한 다 정전인데 그쪽에는 불이 와있단 말이에요. 체제 유지 해야되니까. 고통스럽게 하려고 그래서 그 기둥 환한 방에 이런 시멘트 기둥이 있어요. 거기에 사람을 앉혀놔요. 그 고통이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게 환하고 막 환각이 들어오고 막 있죠. 그렇게 앉아 있다가 한 3일 지나면 그때는 이러다가 이렇게 딱 떨어진단 말이에요.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딱 떨어지면 밑에 기둥 밑에 물이 있어요 한, 이 정도. 근데 거기 전기가 흐르는 거예요. 확 떨어지자 막 그냥 빡 정신차려갖고 그 막 시멘트 기둥에 막 올라가는 거예요. 죽지 않을 정도의 전기란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진짜 그 옛날 기억까지 다 끌어내서 다 말해요. 그러면 죄가 없는 사람이 없어요.″

[임순복]
″나는 내가 직접 경험을 했어요. 저는 비둘기 고문이라는 걸 받아봤거든요. 이게 24시간 잠을 안 재워요. 잠을 안재우고 어떻게 하냐면 이 팔을 철창에 이렇게 묶어요. 묶으고 발은 땅에 닿는데 동동 띄워놔요. 2박 3일을 이렇게 하고 있어봐요. 여기가 다 빠져 달아나요. 그러면 댈 건 없는데 뭐 여기다 묶어놨으니까 안 한 짓도 했다고 대답을 해야 돼요. 진짜 억울하게. 진짜 지금도 생각하면 살이 떨리지만 어우, 뭐 어떻게 말을 표현을 할 수가 없어요. 너무 그때 생각하면.″

[구은영]
″네 근데 이야기를 들어보다 보면 저는 경험도 안 했고 본 적도 없지만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너무나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 북한의 모든 수용소나 감옥에서 이런 일들이 아직까지도 자행되고 있나요?″

[최성국]
″이제 일단 교화소나 수용소에 갈 때부터 민증을 박탈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박탈하면 이제부터 이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아무런 짓을 스스로 막 행해버리고 독재를 부리고 해도 그거는 법에 어긋나지 않는 거란 말이에요. 물론 형식적으로 국제사회의 눈을 봐서 때리지 말라 하는 규정은 있는데 그건 규정일 뿐이고. 실제 때려요.″

[고주룡]
″그런데 북한 당국에서는 지금 수용소 실체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데요. 북한 전역에 이런 수용소가 얼마나 됩니까?″

[최성국]
″수용소가 몇 개나 있습니까 이게 개수로 정해지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필요하다면 만들고 또 해체하고 다 모아서 또 이쪽에 하나 만들어놓고 하는 건데 최근에 그 핵실험을 할 때마다 그 기지 건설을 수용소 죄인들을 데려다가 시킨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걸 시키기 전에 먼저 그 인근의 수용소 그 건물을 만들어놓고. 건물이라는 게 그냥 대충 지어 만들어놓고 거기서부터 핵실험 장소까지 땅굴을 뚫어놓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땅굴을 통해서 이 사람들이 와서 작업하고 가고 작업하고 가고 하다가 없어진다고. 어느 순간 어디 갔는지 다 없어진단 말이에요. 그렇게 보면 수용소라는 거를 자기네가 만들고 싶을 때 만들어 놔가지고 몇 개가 있다고 규정짓는다는 거는 그건 힘들고요.″

[구은영]
″네, 북한의 대표적인 수용소 위치와 현황이 지금 지도에 나오고 있는데요. 지도를 보면 임순복 씨가 있었던 18호 수용소가 있고요. 그 위에 개천이란 지역에 14호 수용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15호 요덕 수용소, 그리고 25호, 16호 수용소가 표시돼 있습니다.″

[고주룡]
″우리 임순복 씨는 18호에 사셨다 그랬고. 그다음에 14호에는 정치범 수용소라고 말씀하셨는데 14호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입니까?″

[임순복]
″북한에서는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니까 내가 큰 잘못을 안 해도 이제 우리 서류를 다루는 사람들이 너는 14호. 너는 18호 이렇게 그 사람들이 도장 하나에 따라서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거기 때문에 제가 딱히 어떤 사람들이 들어간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마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97년도에 황정엽 선생님이 남한으로 들어오셨잖아요. 그때 직계 가족들은 14호로 다 들어갔어요. 들어갔고 그다음에 그 형제들 황장엽 선생님의 형제들이나 사돈의 팔촌 이런 형제들은 18호로 들어와가지고 그 선생님의 이제 조카들이지? 그래서 그게 이제 누구였느냐면 어 황영희하고 황영철이가 있었어요. 그분들은 저랑 같이 갱에서 일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때 당시 아 황정엽이 가족이 들어왔다 해가지고 황정엽이 간첩으로 소문났잖아요. 북한에서는.. 그래서 그 사람들 엄청 관리소에 들어가서 엄청 간첩으로 몰려가 지고 진짜 고생 많이 했거든요.″

[구은영]
″수용소화면 감옥과 같은 곳을 연상했는데 그림을 보면 돈사마을, 과수원, 보위원 마을, 그리고 학교도 있는데요. 하나의 마을을 이루네요?″

[최성국]
″겉으로 그림으로 보기에 그냥 평화로운 마을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제 저거는 감옥이 감옥처럼 안 만들었을 따름이지 그냥 다 감시하고 다 공개하고 다 탄압하고 하는 그런 마을 형태의 수용소죠! 한마디로.″

[구은영]
″네, 그리고 그림을 보면 철조망이 있고요. 강가에는 공개처형장도 보입니다.″

[임순복]
″이제 전기 철조망이 지어지고 이제 거기 이제 감시 도망갈 수 없게끔 1M에 하나씩 돼지 멧돼지 잡는 쪽 있잖아요. 그걸 갖다가 이제 박아놓는 거예요.″

[고은영]
″이 공개처형장 말로만 들었는데 이곳은 어떤 곳입니까?″

[임순복]
″저희, 우리 18호 관리소 공개처형장은 14호 하고 18호하고 경계 대동강에서 하거든요. 근데 거기가 공개처형장이 따로 있어요.″

[고주룡]
″네, 지금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공개처형 장면이 지금 나오고 있는데요.″

″반 혁명분자에게 인민의 이름으로 쏴라.″

[임순복]
″오늘 몇 시 공개처형 있으니까 다 모여. 집합시켜. 모두 집합시켜 그러면 하던 일 다 끝나고 다 모여가지고 개떼같이 몰려서 우르르르 오늘은 누구 쏘는지 뭐 때문에 쏘는지 그거 구경하러 가요. 가면서도 이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거예요. 또 사람 하나 죽어나가는구나. 이런 생각에. 근데 나는 이제 다섯 살부터 총살하는 걸 봤거든요. 18호에서는 뭐 하루 세끼 밥은 못 먹어도 총살하는 걸 봐야 되니까 수시로 갖다 쏴버리거든요.″

[고주룡]
″북한 당국이 저렇게 공개처형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최성국]
″공포정치의 기본 수단이 사람 죽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총살을 없앨래야 없앨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항상 죽일 때 보면 죄지었으면 그냥 가서 한국 영화 보니까 북한에서 한국 영화보다 깜짝 놀랐어요. 그 총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수형 하는데 커튼을 딱 쳐놓더라고요. 사람들이 못 보게. 근데 북한은 그렇게 총살할 바에야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일단 총살할 때는 모두가 다 봐야 돼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서 어떻게 무서웠다는 걸 입소문을 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치의 한 수단이죠.″

[구은영]
″네, 이렇게 계속해서 공개처형 장면을 보게 되면은 이 공포통치. 말 그대로 정말 너무나 무서워서 탈출은 꿈에도 못 꿀 것 같은데요. 그러면 수감자들은 그 안에서 어떤 생활을 하게 됩니까?″

[임순복]
″이제 아침 일과가 시작되는 게 김일성 이제 주최사상. 혁명역사나 공동사설이나 이런 게 아무튼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그런 내용을 먼저 선전교육, 강연을 하고 그다음에 종합지령이라는 걸 줘요. 그걸 주고 일일 생산과제거든요. 그 일일 생산과제 못하면 갱에서 막장 우리 같은 건 탄광이었거든요. 18호는 거의 탄광이에요. 탄광에서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하루에 14시간 16시간 일 시키잖아요. 일 시키면 먹이면서 일 시키면 차라리 할만도 한데 배고프지, 일은 강도는 높지, 할당량 못하면 또 사회 작업 여기로 말하면 잔업이라는 게 있잖아요. 사회 작업이라는 걸 시키는데 그거 안 하면 지령소 자체를 사인을 안 해줘요. 지령 대라는 데 가서 너 오늘 계획 수행했다. 집에 가라. 이런 걸 도장을 또 찍어주는 게 있어요. 그 도장을 박아야지만 퇴근을 할 수가 있어요.″

[고주룡]
″두 분은 감옥과 수용소에 있으면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어떤 거였습니까?″

[임순복]
″먹는 거요. 먹는 거. 솔직히 사람이 살기 위해서 먹고 먹기 위해서 살잖아요. 근데 일 끝나고 들어오면 오늘 우리 집에서 아궁이에서 불에서 연기가 날까? 항상 집에서 뭘 끓일까? 못 끓일까? 항상 그게 걱정이고. 이제 저도 이제 배고파서 이제 도적질을 해봤지마는 진짜 거기에 들어가면은 사람 살 데가 못 되는 그런 곳이에요. 정말.″

[최성국]
″제가 경험한 거에 대하면 배고픈 거는 당연한 거고요. 그리고 배고픔도 배고픔인데 제가 반장을 했었어요. 근데 반장을 하다가 라이벌 비슷,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 들어왔는데 이 사람을 잡아야 되니까 이 사람한테 저는 당연히 무섭게 한단 말이에요. 그럼 얘는 또 올려바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규정은 아니지만 나를 또 죄인답게 다스려야 되기 때문에 어느 순간 나를 얘 밑으로 딱 갖다놓는 거예요. 그때 당하는 탄압. 진짜 이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죄인이 죄인을 인권 침해하는 현상이에요. 이게 전국적으로 다 이렇게 벌어지고 있어요. 이게 진짜 무서워요. 그런 게 고통스러웠어요. 진짜 살아남은 게 다행일 정도로.″

[구은영]
″네, 북한 수용소에는 사람이 없다. 인권이 철저하게 무시된 곳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북한이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감행하고 있는 공포정치에 대해서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도움 말씀 주신 두 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