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생생 통일현장] 함경도에서 온 각잡기의 달인

입력 | 2020-07-04 08:56   수정 | 2020-07-0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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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화요일.

우비를 단단히 여며 입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용인에서 자전거 잘 타기로 소문난 오늘의 주인공, 탈북민 노경미 씨~

″저 자전거 하루도 없으면 안 되니까요. 저의 발이에요.″

대체 빗속을 뚫고~ 어디를 가는 걸 까요~

경미 씨가 도착한 이곳은~ 인근에 위치 한 오피스텔. 경미 씨의 일터입니다.

″계단 복도 지하주차장, 그 다음 분리수거장, 여기 제가 청소해야 돼요.″

경미 씨는 청소대행전문가인데요.

매일 새벽, 이 오피스텔을 청소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하네요.

지하 3층, 지상 5층의 이 큰 오피스텔을 어떻게 혼자 청소하냐고요~
청소 인생 10년~!! 경미 씨만의 청소노하우가 당연히 있죠~

[노경미/탈북민: 이 청소라는 게 요령이거든요. 청소용품 다 들고 다니면 힘들잖아요.
철수세미는 마포에 같이 붙여서 다니다가
(얼룩은)이 철 수세미로 지워야 지지 안지거든요. 머리를 쓴 거죠.]

와 아이디어네요~
2시간 만에 청소 끝~경미 씨~청소하기 너무 힘들지 않나요~

[노경미/탈북민: 탈북 할 때 그 정신이면 아무것도 아니죠
우리 목숨 걸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 보다 더 힘들겠어요?]

새벽 청소를 마치고 이제 퇴근... 하는가 싶더니
(다급)아니 경미 씨! 여긴 경미 씨 집이 아니잖아요?!

[노경미/탈북민: 이 집을 제가 (청소)10년 했거든요.
저한테 (비밀)번호를 다 알려주고
이렇게 주인 없어도 청소 다하고 나 혼자 문 닫고]

이곳은 경미 씨의 두 번째 일터입니다.
경미 씨는 특히 가정집 청소전문가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요.

한번 보면 모두가 반한다는 경미 씨만의 정리 노하우 덕분!
일명~ 각 세우기 전법인데요.

″양말도 각을 지어야 되고 옷도 각을 지어야 돼요.
하하. 각 각. 그러면 깔끔해 보여요″

″군대 다녀오신 거 아니시죠?″

″아니요~″

티셔츠 한 벌 접는 것도~ 딱!딱! 절도 있게~!!

이러니 어떻게 다들 경미 씨를 찾지 않을 수 있겠어요~

[노경미/탈북민: 어떤 집들은 처음에 한심하거든요.
내가 정리정돈하고 깨끗해지면 이제 오지마세요.
우리 필요할 때면 쓸게요. 한단 말이야.
그랬다가 벌써 한 달이 지나가면, 개망탱이 되면 또 불러요. 하하하하]

그런데 궁금하네요. 경미 씨는 어떻게 이 일을 하시게 된 건가요?

″나이가 60대를 넘어섰잖아요. 청소 일이 그래도 제일 적합하고 밑천도 안 들고″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청소일.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직접 전단지를 붙이며
홍보를 시작했는데요~

성실, 신뢰, 가성비를 내세운 전략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노경미/탈북민: 전화가 엄청 많이 왔어요. 하루 저녁에 30집 전화를 받았어.
그 집을 내가 하나하나 다 다녀봤어요.
다음에 내가 튕기며 일자리를 잡은거예요.]

이제는 고정적으로 일하는 곳만도 무려 10군데~!!

″적어 안 놓으면 기억 못 하겠더라고요. 너무 여러 집 많이 하니까″

경미 씨, 이제 세 번째 일터로 가는 건가요~

″이제 가르치러 가야돼요.″

또 어디를 가나 했는데~ 여긴 경미 씨 집 이네요?

″할머니 잘 다녀오셨어요″

″그래 지원이 잘 있었어~″

경미 씨를 반겨주는 어여쁜 손녀~가 바로, 오늘의 학생.

″우리 지원이 어제 배웠던 거 아코디언 한 번 해볼까″

북한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경미 씨는 오후엔 손녀만의
특별선생님이 된답니다.

[최지원/손녀: 할머니가 아코디언 배워 주고 해 달라는 거 다 해주고
그리고 사달라는 거 사주고]

[노경미/탈북민: 이쁘죠. 나는 딸이 하나예요. 무남독녀예요.
이거가 나한테는 진짜 아닌 게 아니라 너무도 이쁜 새끼야]

경미 씨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 가족...

사실 이 한 장의 가족사진을 찍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1998년, 북한이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던 고난의 행군시기
생계를 위해 딸과 단 둘이 중국으로 건너간 경미 씨.

[노경미/탈북민: (제가)가정보모로 팔린 거예요.
야(딸)는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에 일할 수도 없으니까 잘 사는 집에 가 있다가
엄마가 돈을 벌어서 다시 북한으로 나갈 때 그 때 같이 가면 좋지 않냐
갈 때 데리고 가라 하면서 전화번호를 줬어요.
(헤어진 후에) 전화번호를 누르니까 없는 전화번호라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경미 씨는 딸을 찾기 위해 북송의 위협이 있는
중국을 떠나 남한 행을 선택했고

남한에 정착해 딸에 대한 그리움을 지우듯 청소로 지탱해 온 12년... 만에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요.

[노경미/탈북민: 여보쇼 하니까 노경미 씨 맞으세요? 딸 이름이 뭐예요?
선생님 놀라지 마세요. 흥분하지 마세요 하는데
저 한번만 바꿔주세요. 전 생사를 모르니 한마디만 하겠어요.
하니까. 엄마 하더라고.]

18살에 헤어져 30살에 다시 만난 딸.

그러니 가족 생각만 하면 없던 기운도 생길 수 밖 에요~

남들이 모두 퇴근하는 시간~손녀까지 싣고 어디론가 신나게 달리는 경미 씨.
집근처 병원 청소로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노경미/탈북민: 직업에 귀천이 있어요? 내가 좋다면 좋은 직업이잖아요.
직업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이 아니죠. 안착 된 일자리에서
성실하게 꾸준히 일 하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오늘도 경미 씨와 자전거는 열심히 달립니다.

″여기 와서 시집보내서 손녀 딸 손주 다 보고 지금은 열심히 사는 걸로
이 사회에 보답하려고 그저 사는 거죠.″

″저는 또 달려보겠습니다.″

경미 씨의 인생이 쌩쌩 달리는 자전거처럼 언제나 신명 넘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