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필국 앵커 ▶
차미연 앵커. 우리나라에서 주한미군이 가장 많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 차미연 앵커 ▶
주한미군요. 경기도 평택 아닌가요?
◀ 김필국 앵커 ▶
네. 지금은 평택으로 많이 이전됐죠? 그런데 과거엔 동두천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은 미군 대부분이 옮겨가면서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상현 기자가 찾아가봤습니다.
◀ 리포트 ▶
기찻길 바로 옆 골목 사이로 수많은 상점이 밀집돼 있고, 클럽들의 네온사인은 밤마다 그 화려함을 뽐냅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기지가 들어서자 달러를 벌어들이려고 형성됐던 기지촌, 동두천의 옛 모습들입니다.
″이곳이 과거 주한미군 최대 기지촌이었던 동두천 보산동입니다. 최근 수년간 많이 바뀌었고, 또 바뀌고 있다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지금부터 구석구석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낙서처럼 벽에 그린 그림, 이른바 그래피티였습니다.
한 유명 맛집 간판 위엔 기지촌 여성들의 아픈 역사를 표현한 거대한 그림이 들어섰고, 전철 교각엔 6개 대륙의 인물을 그려넣어서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이 지역의 특색을 표현했습니다.
생소한 그림에 처음엔 부정적 여론도 있었지만 지난 5년간 8개 나라에서 30여명의 유명 그래피티 작가들이 꾸준히 참여했고, 지금은 동네 곳곳을 ′지붕없는 미술관′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최기영/경기문화재단 책임학예연구사]
″동두천이 갖고 있었던 것이 이전에는 좀 부정적인 이미지였어요. 하지만 그러한 그림들을 통해서 새로운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저희는 판단을 했고, 그게 5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그래피티를 통해서 이 도시를 ′아, 재미있는 도시구나′라고 해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주한미군 위문공연으로 시작된 미 8군쇼, 그리고 기지촌의 수많은 클럽들.
어려웠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 너도나도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폭력, 윤락 등의 문제가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 대중음악의 발상지가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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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포(신중현) ′빗속의 여인′ ′커피한잔′)
특히 1960년대엔 한국의 락음악을 태동시켰습니다.
(키보이스 ′그녀의 입술은 달콤해′ ′해변으로 가요′)
″과거 1층과 2층에 미군클럽이 있던 건물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뮤직센터로 탈바꿈했는데요, 어떤 곳인지 한번 들어가보겠습니다.″
먼저 1층엔 시민들의 공연이나 각종 발표회가 열리는 다목적공간이 들어섰습니다.
2층엔 수많은 가수들과 그룹사운드들의 음반으로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자리했고, 과거 클럽 종업원들의 숙소였던 3층은 녹음실과 연습실로 꾸며져 음반작업과 각종 라이브방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전상규/두드림 뮤직센터장]
″과거의 어찌 보면 좀 슬픈 역사들, 아픈 역사들, 그 역사의 동전 뒷면을 보면 그렇기 때문에 있을 수 있었던 문화적 집결 이런 것들도 가능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슬픈 역사가 있었지만 그 슬픈 역사 덕분에 혹은 때문에 저희가 여기에서 많은 음악인들이 모여 음악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니까요.″
미술과 음악, 여기에 거리 곳곳에 들어선 여러 공방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로 하여금 이곳을 찾게 하는 유인책이 되고 있습니다.
[정숙향/공방 운영 서양화가]
″기대는 처음 안하고 있었는데, 한분 두분 오셔서 이 동네에 이런 공방들이 많네요 하면서 체험도 하고 가시고요, 일부러 서울에서도 많이 오시는 것 같아요″
수십년간 자리를 지켜온 토박이 상인들은 미군이 떠나간 상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장인의 솜씨를 바탕으로 ′한국사람′ 장사를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강성수/50년 양복집 운영]
″운영하기 위해서 가게를 몇군데를 냈어요. 손님을 이 안으로 끌어들이는거지..점포만 하고 전화번호 적어놓고 자리 목 좋은 자리에다가.. 내가 맞춤양복을 한다..그렇게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선전을 많이 하고 있죠...그런 것들로 일감을 보충하고 있어요.″
땅거미가 내려앉는 시간.
동네엔 음식거리도 펼쳐집니다.
안녕하세요? 메뉴가 뭐에요 이게?
(큐브 스테이크요)
햄버거, 스테이크부터 국수 떡볶이 마라탕 등 세계 음식을 한 곳에서 맛볼수 있는 포장마차 거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오충호/햄버거 판매상인]
″손님들이 굉장히 위생적이라든가 또 거리두기 그런 것에 대해서 염려하시지만 그래도 믿고 찾아주시고 또 이렇게 오픈된 곳에서 장사할 수 있기 때문에 또 나름대로의 또다른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야외공연같은 여러 행사가 중단돼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입소문을 타 찾아주는 사람들은 끊이질 않습니다.
[전중배/동두천 관광특구 상인연합회장]
″많이 행사를 하면 또 많이 알려지고 여기가 과거에 그러니까 미군을 위한, 그 미군에 의해 형성된 도시잖아요. 그래서 그런 맛도 있고 멋도 있고 그래서 그걸 최대한 살려서 여기 먹거리나 볼거리를 갖다가 제공을 하고 한국 사람 많이 유치하려고 지금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동두천은 이제 모두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입니다.
[김종권/동두천시청 전략사업과장]
″여기를 문화의 공간으로 해서 매주 금요일 토요일 공연, 뮤직센터에서 공연도 하고 야외에서 하면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월드푸트 스트리트를 통하여서 먹거리와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그런 문화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우리의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동두천 미군기지, 그리고 그 기지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