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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상징 38선의 흔적을 찾아서
입력 | 2022-01-01 09:12 수정 | 2022-01-0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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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남북분단의 시작이었던 38선, 잘 아시죠?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그어진 휴전선과의 차이를 잘 모르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요.
새해를 맞아 생생통일현장에서 2주 연속으로 38선의 흔적을 찾아가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이상현 기자가 그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 리포트 ▶
강원 영동지역이 폭설에 파묻혔던 지난 주말.
동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7번 국도변, 양양지역에 있는 38선 휴게소를 찾았습니다.
북위 38도에 자리잡은 눈덮힌 38선 표지석.
해안가 조형물 앞엔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연숙/경기도 수원]
″강원도쪽으로 가끔 여행을 가끔 와요. 이리로 지나가죠.″ (이 폭설에 38선에서 촬영하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아이고 감회가 새롭네요.″
1945년 8.15 해방 직전, 미국과 소련이 일본 점령지의 전후처리를 위해 설정했던 임시 군사분계선인 북위 38도선.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이 선을 넘어 남침했고 같은해 인천상륙작전 이후로 반격에 나섰던 국군이 10월 1일 처음 돌파해 북진한 곳이 바로 강원도 양양의 38선이었는데요.
이 날은 훗날 국군의 날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제1회 국군의날 기념/1956년 10월 1일]
″이날 의장대의 시범훈련에 이어서 거행된 3군 장병들의 위풍있는 분열식은 자라나는 국군의 힘을 마음껏 과시하는 것이었습니다.″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시작되자 남북은 한치의 땅이라도 더 빼앗기 위해 38선 주변의 주요 고지를 두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게 되는데요.
결국 지금의 강원도 북부지방을 수복한 대신 개성 등 황해도 남쪽지역을 빼앗긴채 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됐고, 그때 그어진 휴전선이 기존의 38선을 대체하며 70년째 군사분계선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남북분단의 상징인 38선은 이렇게 국토의 동쪽 끝 동해안에 인접해 있습니다. 위도 38도를 기준으로 한반도를 가르고 있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국토의 서쪽으로 향해보겠습니다.″
양양 38선 표지석에서 위도 38도를 따라 서쪽으로 조금 가면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시골마을이 하나 나타납니다.
38평화마을이라 이름붙여진 강원도 양양군 잔교리.
38선이 통과하는 마을이어서 한국전쟁 전까진 뒷산에서 인민군의 대남방송이, 앞산에선 국군의 대북방송이 함께 들렸다고 합니다.
[박광표/양양 잔교리 주민]
″소련군이 여기 와서 점령을 했거든요. 맨 처음에.. 근데 며칠 있다가 아군들이 미군과 들어와서 여기가 38선이다 이랬다고. 원래 소련군이 욕심을 내서 여기를 차지하고 있다가 뺏긴거지.″
당시 경찰 지서 자리엔 마을회관 건물이, 국군의 방어포대 자리엔 조그마한 정자와 밤나무 한그루가 들어섰지만, 일제강점기때, 동해선 철로를 떼다 만들었다는 마을의 종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채 아직도 건재한 소리를 울려댔습니다.
[김순규/양양 잔교리 주민]
″비상시엔 땡땡땡땡 이렇게 하면 화재같은거나 산불이 났을때 주민들이 모이고.. 마을총회같은 것 할 때는 이렇게 더디게..″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해온 38평화마을.
하지만 산과 바다, 계곡이 어우러진 덕분에 오히려 휴양과 관광 목적의 외지인들이 몰려들었고 여느 시골마을과는 달리 주민 수가 늘어 지금은 100가구 가까이가 살고 있습니다.
[김행웅, 시경호/서울 출신 잔교리 주민]
″여기 너무 좋잖아요.″
″산 바다, 또 이렇게 조용하게 눈 경치 멋있잖아요. 얼마나 좋아요.″
새하얀 설경의 38평화마을을 뒤로 하고 다시 서쪽으로 향하면 강원도 인제군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인제에서의 38선은, 먼저 9년전 복합리조트와 함께 문을 연 자동차 경주장을 지나게 되고요.
지역의 명물이 돼 있는 백색의 자작나무 숲도 통과합니다.
더 서쪽으로 소양강 상류에 다다르면 또다른 38선 표지석이 나오고, 그 옆에선 38선 가스충천소에 이어 또하나의 38선 휴게소와 38카페를 만나게 됩니다.
정확히 북위 38도였던 이곳.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위도 38도, 38선은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저 소양강쪽으로 흐르게 됩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군 부대와 비행장 등이 들어서 있었고, 38교라는 이름의 작은 다리가 있었지만 70년대 소양강댐 건설과 함께 38선의 과거 흔적은 수몰됐다고 합니다.
대신 그 옆쪽에 38대교라는 이름의 커다란 다리가 하나 놓여졌는데요.
다리 건너편으론 큼지막한 태극기 아래 38이라는 숫자를 꾸며놓았고, 여려 조형물과 함께 수몰지역의 38선 표지석 등도 옮겨와 38공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김순섭/인제 관대리 주민]
″고향이 이북인 사람들이 좀 많이 오시고..그때 상황을 회상하면서 왔는데 그 모습은 없고 이젠 다른 곳으로 돼 있으니까 거기에 아쉬움을 많이 표출하시죠.″
그 옆으로 평화롭게 흐르고 있는 소양강.
6.25전쟁이 발발하자 자연적인 방어선으로도 활용됐다는데요.
북한군의 남침을 지연시킨 사흘간의 치열했던 전투로 핏물로까지 변했다는 이 강에서도 38선은 유유히 흘렀고, 수많은 사연과 한이 서려있는 그 선의 표시는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그 38선을 따라 다음주엔 저 소양강 너머 춘천과 경기도쪽으로 향해보겠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