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상현

'할아버지 전투지' 손자들이 함께 걷다

입력 | 2022-07-30 07:55   수정 | 2022-07-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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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코로나 19 때문에 한동안 중단됐던 남북접경지 안보체험 프로그램이 요즘 조금씩 재개되고 있는데요.

최근 남북 출신 청년들이 함께 그 길을 걸으며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할아버지가 6.25 전쟁 참전용사였던 외국인 청년도 함께했다는데요.

같이 땀을 흘리면서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되새겨본 그 현장을 이상현 기자가 찾아가봤습니다.

◀ 리포트 ▶

마치 화재그릇 모양을 닮았다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던 강원도 양구 해안면의 분지, 펀치볼.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남북의 고지쟁탈전이 펼쳐졌던데다 1990년 북한 땅굴이 마지막으로 발견됐던 곳이어서 우리의 중요한 안보체험장이 되어 왔는데요.

최근엔 청년들에게 그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서흥원/강원도 양구군수]
″안보관광은 이제 어르신들, 나이드신 분들의 관광이 아니고 젊은 친구들도 같이 호흡하면서 진행할 수 있는 그런 안보관광이 되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 펀치볼에 10년전 73km 길이로 조성된 둘레길은 지난해엔, 국내 처음으로 지정된 국가숲길에 포함되기도 했는데요.

코로나19 여파로 2년간 출입이 통제됐다가 최근들어 조금씩 다시 열리고 있습니다.

[최창식/(사)DMZ편치볼숲길 사무국장]
″군 부대 지뢰지대가 곳곳에 있어서 저희들이 항상 숲길 등반지도사가 동반해요. 자율탐방이 안되고..″

전쟁의 상흔이 가득한 그 둘레길 탐방을 위해 모처럼 수십명의 청년들이 찾아왔습니다.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제4땅굴같은 안보체험이 시작되는 양구 통일관 앞입니다. 이곳에서 DMZ 펀치볼 둘레길도 시작이 되는데요 그럼 청년들과 함께 그 둘레길을 같이 걸어보겠습니다.″

한 북한인권단체의 통일걷기 행사에 참여한 남북 출신의 청년들인데요.

2014년부터 서부전선과 낙동강전선, 제주도, 백령도 등을 탐방해왔던 이 통일걷기의 올해 탐방지는 동부전선.

[차동길/(사)물망초 ′통일발걸음′ 단장(예비역 준장)]
″아무래도 젊은 세대들이 생각할때 통일에 대한 의식이 과거와 달리 많이 희미해지잖아요. 그래서 젊은 세대들에게 통일의식을 깨우쳐주는 것이 근본 목적이었어요.″

서울에서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청년들은 강원도 양구로 넘어와 먼저 파로호의 인공섬, 한반도섬을 둘러본뒤 펀치볼 둘레길 도전에 나섰습니다.

태극기를 앞세운채, 양 옆으로 지뢰경고 표시가 이어지는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고, 또 내려가고..

″여기는 지뢰가 많은 지역이에요, 확인된 지역이에요.″

한여름 폭염 속의 강행군이었지만 땀방울 하나하나는 초면의 친구들, 특히 남북 출신의 청년들을 하나로 묶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장유미/탈북 대학생]
″함께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도 함께 하니까 너무도 즐겁고 좋은거에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게 쉽지 않잖아요? 이런 자극을 받고 다시 예전에 가졌던 그런 마음들을 다시 좀 되새겨보면서..″

[이종현/경기도 김포]
″처음엔 많이 서먹서먹했는데 사람들이랑 얘기도 많이 해보고 탈북민들이랑도 많이 얘기를 해보니까 많은걸 배우는 것 같고.. 몰랐던 것도 많이 알수 있는 경험이 된 것 같아서 뜻깊었던 것 같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도착한 중간 기착지.

누구 할 것 없이 다들 표정이 밝아집니다.

″아, 물이다 물이다 물이다!″
″도착! 도착!″

지뢰경고판과 군사용 참호들이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 삼삼오오 둘러앉았고, 처음 접해보는 야전식량으로 밥을 만들어 먹으며 격의없는 대화도 주고받습니다.

[김승협/탈북 대학생]
″제 밥 망쳐가지고 ㅎㅎ″
(왜 망쳤어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다 망치면 분위기 안 좋은데 제 것만 망쳐가지고 (분위기가 좋아요).. 지금 안 익어서 생쌀을 씹고 있습니다.″

청정 숲속에서의 꿀맛같은 식사와 휴식을 마치고 다시 시작된 민간인통제구역에서의 산행.

″여기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민간인통제선 북방지역이고 민간인이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하는 지역이어서 그나마 이렇게 깨끗합니다.″

어렴풋이나마 북한의 산하를 직접 살펴보고 전쟁의 상흔이 가득한 산길을 걷는 것 만으로도 가슴 벅찬 한걸음 한걸음입니다.

[서정혜/서울 동작구]
″′이렇게 가까이 북한이 있다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기 넘어가면 바로 북한이라고 하셔가지고″

산행을 마치고 치열했던 남북의 고지쟁탈전 역사가 담겨있는 전쟁기념관을 둘러본뒤 청년들이 향한 곳은 폐교 건물을 활용해 만들어진 숙소.

한 방에서 남북청년이 함께 밤을 지새우며 속깊은 대화도 주고받습니다.

[김지한/탈북 대학생]
″(작년에도) 당연히 재밌었지만 올해엔 진짜 좋은 형들도 많이 만났고 진짜 재밌었습니다.″

이곳에선 특별한 청년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천용사인 필리핀 청년과 그 친구들이었는데요.

할아버지가 전쟁때 양구에서 찍은 사진들을 가져와 사진 속 장소를 찾아가보고, 남북의 청년들과 함께 참전기념비에서 헌화와 묵념도 하면서 평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로렌스 비안손/필리핀 참전용사 손자]
″처음에 갔을 때는 좀 슬픈 마음이 있었는데 가서 보고 나니까 할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고지전 전적비를 찾아다니며 잡초를 제거하고, 태극기를 게양하고, 그렇게 참배를 이어간 남과 북, 그리고 외국의 청년들.

각자의 출신은 다르지만 70여년전 할아버지들이 치열하게 싸웠던 그 자리에서 이제는 서로를 의지하고 응원하며, 한걸음 한걸음.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고 있습니다.

″통일! 발걸음!″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