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5-12 17:21 수정 | 2020-05-12 18:04
적자만 수천억…우울한 항공업계 실적발표
내일 대한항공의 1분기 실적이 발표될 예정입니다. 업계에선 2천억 규모의 영업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지난 2015년 3분기 이후 18분기 동안 이어져온 영업 흑자 행진이 중단되는 것은 물론, 적자 폭도 ′역대급′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국제선이 90% 이상 중단된 상황이 실적에도 그대로 반영된 겁니다. 화물 부문이 꾸준한 수요를 보이며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지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정도에 불과할 뿐입니다.
15일로 예정된 아시아나항공의 1분기 실적은 더 심각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입니다. 3천억원 안팎의 영업 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우리 나라 대형 항공사 두 곳의 1분기 적자만 5천억원에 달하는 셈입니다.
저비용항공사의 사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주 제주항공이 예상보다 악화된 657억원의 적자를 발표했고, 다른 항공사들도 줄줄이 수백억원대의 ′마이너스′ 성적표가 예상돼, 우울한 실적발표 주간이 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2분기가 더 걱정″…″회복 2년 걸린다?″
1분기 실적도 최악이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실제로 2월까지는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제선 노선에서는 비교적 정상적인 운항이 이뤄졌지만, 3월 이후 국제선 운항은 거의 멈췄습니다.
월별 운항 일정을 공개하고 있는 대한항공이 6월 국제선 운항을 일부 재개했지만, 현재까지도 186개 국가/지역이 입국금지나 제한을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실제 이용객이 얼마나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항공사들 역시 운항 재개를 하면서 예약을 받고는 있지만, 실제 운항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렇다 보니, 2분기 실적은 더 안 좋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가 항공사들 역시 황금연휴 기간 국내선 반짝 수요가 있었지만, 국내선의 경우 수익성이 낮을 뿐 아니라, 최근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다시 커지면서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들어 졌습니다.
결국 본격적인 하늘길이 열리기 위해선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이 전반적으로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 시점을 예견하기도 어렵고, 코로나19가 많이 안정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여행 수요가 급반등할 것이냐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전망이 적지 않습니다. 얼마 전 에드 바스티안 미국 델타항공 CEO는 ″항공업이 코로나19를 회복하는 데 2~3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버핏도 손 뗀 항공업계…줄도산 우려도
오늘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콜롬비아 아비앙카 항공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아비앙카는 중남미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고, 네덜란드 KLM 항공사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항공사입니다. 앞서 호주 2위 항공사인 버진오스트레일리아도 파산보호 신청을 했습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코로나19로 올해 전 세계 탑승객 수가 지난해에 비해 80% 이상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미국 여행객 수요는 3월 이후 95%까지 줄었습니다. 보잉과 에어버스 등 항공기 제조업체의 타격도 큽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항공업계와 유관 산업 종사자 2500만명이 일자리를 잃는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얼마 전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역시 4대 미국 항공사 주식을 매입했다가 큰 손실을 본 뒤 ′실수′를 인정하고 전량 처분했습니다.
그렇다고 항공사의 도산을 그대로 두고 볼 수도 없어, 각국 정부는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자국 항공사를 살리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항공업과 연관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 세계 GDP의 3~4%에 달하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기 때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보잉에만 170억 달러, 우리 돈 20조원 이상 규모의 지원을 책정했고, 프랑스와 네덜란드 정부도 에어프랑스와 KLM 항공에 각각 10조원 이상의 구제금융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자구 노력은 하지만…″
우리 정부 역시 항공업계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국책은행을 통해 대한항공에 1조 2천억, 아시아나항공에 1조 7천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이 이미 결정됐습니다. 기간산업안정기금도 마련될 계획입니다. 정부가 일관되게 밝힌 지원의 전제는 항공사의 자구 노력이었습니다.
대한항공은 내일 이사회에서 최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할 계획입니다. 한진그룹의 지주사이자 대한항공의 대주주인 한진칼도 14일 이사회를 열고 대한항공의 유상증자 참여 방안을 의결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한진칼은 현재 지분율 29.96%를 유지하기 위해 약 3천억원의 대금을 마련해야 합니다. 자금 사정상 한진칼도 유상증자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지만그럴 경우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문제가 걸립니다. 이 때문에 자회사인 정석기업과 칼호텔네트워크 등의 지분을 매각하거나 담보 대출을 받는 방법으로 자금을 마련할 것이란 예측이 나옵니다. 물론 조 회장이 ′백기사′를 찾아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할 수도 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백기사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입니다. 어찌됐든 유상증자에 성공하면 당장 대한항공의 숨통은 잠시나마 트일 겁니다.
대한항공이 기내식 등 사업 부문을 매각할 것이란 예측도 나왔지만, 내일 이사회 안건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포함됐다고 해도 규모가 크지 않아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매각하기로 결정한 시가 5천억원 규모의 종로구 송현동 토지와 제주 서귀포 파라다이스호텔, 미국 LA 윌셔그랜드센터 등도 처분한다는 방침이지만, 현재의 경제 상황, 부동산 거래의 특성을 고려하면 빠른 시간 안에 성사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문제는 올해 생존에 필요한 자금에 비해 자구책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실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대한항공이 올해 갚아야 할 금액은 회사채, 차입금 등을 합해 4조원 규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정부의 추가 지원을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나마 대한항공은 팔 자산이라도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나항공보다는 나은 편입니다. 희망이라고 한다면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진행해 자체적으로 자금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겠지만, 분위기는 점점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습니다.
저비용항공사들은 정부의 지원이 대형항공사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볼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도 구조조정 규모, 체불임금 처리 문제 등에 이견이 커 언제 마무리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지원은 하지만…깊어지는 고민
유례 없는 위기에, 언제 회복될 지조차 불확실한 답답한 상황. 하지만 항공사들이 현재까지 제시한 자구책으로 위기를 돌파하긴 어려워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일차적으로는 항공업이 아무리 외부 조건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해도, 오랜 기간 영업흑자를 거두던 시기에 왜 기초체력을 조금이라도 튼튼하게 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남습니다.
항공업의 중요성을 감안하더라도 모두 어려운 이 시기에 항공업계에 무한정 돈을 쏟아붓는 건 정부에게도 큰 부담입니다. 자칫 아시아나, 이스타항공 인수도 더 지연되거나, 최악의 경우 불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정부의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