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준희

[알려줘! 경제] '구구단 임대주택'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

입력 | 2020-09-12 09:32   수정 | 2020-09-12 13:28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임대주택 당첨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strong>

옆집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리′가 들려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제보자가 한 말입니다. 지은 지 8개월밖에 안 된 ′신축 아파트′에 이런 일이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지만, 경기 고양시의 해당 임대아파트에 직접 가보니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옆집 사람과 벽을 사이에 두고 ′구구단′을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엠빅뉴스] ″옆집 휴대폰 알람에 잠 깬다″ 방음 안 되고 복도에 금가고 천장에 물 새는 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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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닙니다.

경기 남양주시의 한 행복주택에는 전자키로만 열리는 보안시스템 바로 옆에 창문도 없이 뻥 뚫린 복도가 있어서 성인 키면 손쉽게 ′침입′할 수 있고,
서울 동대문구의 한 매입임대주택에는 지난달 일주일 새 두 차례나 물이 집에 들어찼는데, 그때마다 관리사무소는 전화를 받지 않아 애먼 119에 전화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경기 평택시의 한 국민임대아파트에는 1년 전부터 베란다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10차례 넘게 LH에 수리를 요청했지만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1년이나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LH가 임대주택 건설과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는 차고 넘쳤습니다.

LH는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판매상품′인 분양주택에는 약 5억 원을 들여 새 브랜드를 달아주는 등 전혀 다르게 짓고 관리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돈이 부족하다는 LH</strong>

LH도 분양주택보다 임대주택에 돈을 덜 들인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분양주택은 좀 돈을 들여 지어도 이윤을 붙여서 파니까 이익이 남지만, 임대주택은 정부 지원금이 적어 지을수록 적자가 커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정부는 1년에 공공임대주택 재정지원에 4조 원을 씁니다. 임대주택 건설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겁니다. 이 ′건설비′는 정부가 정하는데 2018년 기준으로 평당 742만 원입니다.
LH의 불만은 정부가 ′건설비′를 너무 낮게 잡고 있다는 겁니다.

평당 742만 원만으로는 공공주택을 절대로 짓지 못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실제 드는 비용을 공개했는데 국민임대 기준으로 894만 원입니다. 정부 지원단가보다 20%나 높죠. 결국, 지원단가를 최소 20%는 높여야 겨우 수지가 맞는다는 얘기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분양주택 사업비 공개 못 해″</strong>

이렇게 정부 지원을 늘려달라며 ′임대주택 사업비′는 투명하게(?) 공개하는 LH,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분양주택’ 짓는 데 얼마가 들었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LH에 직접 공개를 요청한 일부 건축비 즉, 문고리, 장판, 벽지 등 마감재 14개 비용을 따져봤더니 분양주택이 임대주택보다 40%나 더 들었습니다.
하지만 LH는 분양주택의 전체 건설비는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경실련도 이걸 공개하라고 작년에 행정소송까지 냈는데 여전히 묵묵부답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임대주택보다 분양주택 건설비가 훨씬 높아서 임대주택 세입자들이 문제를 제기할까 봐 공개를 못 하는 걸까요. 아니면 반대로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의 건설비 차이가 실제로는 거의 미미해서 실상은 ′돈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 공개하지 못하는 걸까요.

이유가 뭐든 LH 입장에서 임대주택 사업비와는 달리 ′분양주택 사업비′는 감추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건 분명해 보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임대주택사업 손익′도 쉬쉬</strong>

LH가 감춰왔던 건 또 있습니다. 바로 ′임대주택사업′의 손익입니다. LH는 원래 ′보금자리주택′이라는 계정에 분양주택과 임대주택 손익을 합쳐서 회계를 작성해왔습니다.

그러던 2013년 ″임대주택 건설로 발생하는 손익도 정확히 모르는데 어떻게 적절한 지원을 하느냐″는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공공임대주택 재정지원의 주요쟁점, 장경석)가 나왔고, 이로인해 한국토지주택공사법 개정안이 2015년 통과되면서 ′임대주택사업 전반′과 그 밖의 사업(주택·토지 분양 등)으로 회계를 나눠야 하는 의무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건 그동안 이렇게 구분된 손익계산서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한 번도 공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LH에 이유를 묻자, ″법에는 회계를 나누라고만 했지 공개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어딘가 요구가 있으면 제공하려고 했는데 그동안 MBC 말고는 요구한 사례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MBC가 처음 보게 된 이 자료에는 LH가 지난해 임대주택 건설로는 ′1조 6천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지만, 토지와 주택 분양 등으로는 ′4조 4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전체로는 무려 2조 8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남긴 겁니다.

LH가 굳이 ′공시′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참고로 2013년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언급돼 있습니다.

″분양주택사업과 임대주택사업부문 간 회계구분이 시행될 경우, LH공사가 분양주택부문에서 분양이익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공개하게 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LH공사가 건설하는 분양주택의 분양가격 인하 등의 요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 따라서 LH공사는 임대주택사업만을 위한 구분회계시스템의 구축에 소극적으로 임할 가능성이 있음″
그런데 공공기관인 LH가 이렇게 돈을 남겨서 뭐하냐고요? LH는 정부 경영평가에서 최근 3년 연속 A등급을 받았습니다. 이 같은 경영실적 등을 바탕으로 직원 1인당 성과상여금도 2017년 1천554만 원에서 2018년 1천703만 원, 지난해에는 1천851만 원으로 꾸준히 올랐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임대주택이 버림받는다면?</strong>

물론 LH가 처한 상황이 녹록지는 않습니다. 중소기업 자재 사용이 의무화돼있어 때로는 시세보다 더 비싼 값에 자재를 구입해야 하고, 임대주택은 짓는 비용 못지않게 관리 비용도 많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LH는 2009년 출범 이후 10년째 매년 적게는 5천억 원, 많게는 2조 7천억 원의 순이익을 내왔습니다. 임대주택에 투자할 여력이 없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도 ″정부 지원도 점점 늘려가겠지만, 임대주택 품질 문제는 LH 자체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기사 반응에 ″이러니까 영끌하지…″ 라는 말이 적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살고 싶은′ 그런 임대주택이 많다면 집을 살 생각을 덜 할 텐데, ′아무도 살고 싶지 않은′ 임대주택만 넘쳐나니까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저질 임대주택이 사라지지 않고, 결국 임대주택이 버림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너도나도 영끌에 나서 부동산 시장 불안의 한 요인이 되는 건 물론, 임대주택 기피현상이 더 강해져 새 임대주택을 짓는 일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보다 사회가 지출해야 할 비용이 훨씬 커지는 셈입니다.

반대로 임대주택이 너무 잘 지어져서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고, 오히려 주변 민간아파트 주민들까지 해당 아파트의 편의시설을 즐기러 올 정도가 되면 어떨까요. 부동산 시장의 전세·매매 수요를 양질의 공공임대가 최소한 어느 정도는 흡수할 수 있을 겁니다.

이르면 다음 달 나올 임대주택 종합대책에 임대주택의 양이나 대상에 대한 대책뿐 아니라 품질에 대한 대책이 반드시 담겨야 할 이유, 그래서 ′구구단 임대주택′이 우리나라에서 사라져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뉴스데스크] 옆집과 ′구구단′…대충 짓는 임대주택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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