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정은

[외통방통] 비료공장에서 우라늄을 만든다고?

입력 | 2020-05-04 16:06   수정 | 2020-05-04 16:39
전세계를 궁금하게 만들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북한 방송은 평안남도 순천시의 인비료공장 준공식에서 김 위원장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걷는 모습을 이른바 ′롱테이크 기법′으로 친절하게 보여줬는데요.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이 만성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는만큼 식량난 해소, 자력갱생의 의지를 보인 행보였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건강이상설 이후 김 위원장의 첫 대외활동이 혹시 ′군사활동은 아닐까′ 가슴 졸이던 통일부 당국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후문입니다.

비료공장 사진 속에 숨겨진 우라늄?

그런데 이 장면을 보고 해외의 일부 전문가들은 다소 독창적인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비료공장이 이중 목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안킷 판다, 미국 과학자연맹 선임연구원)′, ′비료공장 준공식 사진에 어쩌면 우라늄이 있을지도 모른다!(조슈아 폴락, 미국 미들버리연구소 연구원)′는 겁니다.
2018년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데 합의했습니다. 이 합의가 있었기에 6.12 북미정상회담이, 또 결렬로 끝나긴 했지만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었는데요. 이 합의대로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정말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있는만큼 북한이 새로 핵 관련 시설을 준공했는지 여부는 비핵화 협상을 뒤흔들만한 아주 중요한 ′팩트′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매우 현실성 떨어진다′고 일축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Q. 비료공장에서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재료를 만들 수 있다?
A. 과학적으로는 YES, 가성비로는 NO.

우리는 보통 인산, 칼륨, 질소가 섞인 복합비료를 만들어 농작물 재배에 사용합니다. 북한은 아직 복합비료 생산 기술이 부족해 ′인′비료를 생산하는 걸로 추정되는데 그 과정에서 중간생산물인 ′인산′이 나옵니다. 앞서 언급한 미국 전문가들은 이 인산에서 우라늄을 추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요. 원자력 전문가인 이춘근 박사(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광석에서 우라늄이 추출되는 비율을 ′우라늄 품위′라고 한다. 북한의 대표적인 우라늄 채굴 광산인 평산에서 암석의 우라늄 품위는 0.3에서 0.5% 수준으로 추정되지만 인산의 우라늄 품위는 0.001% 이하일 정도로 훨씬 낮다. 평산의 광산을 두고 굳이 품위가 훨씬 낮은 인산비료로 우라늄을 분리할지 의문이다.″

평산 광산에서 돌 1천kg을 캐야 우라늄 3~5kg을 분리해낼 수 있는데, 인산 1만kg에서는 우라늄이 채 1kg도 안 나온다는 뜻입니다. 과학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지만 제재로 경제가 어려운 북한 입장에선 더더욱 가성비가 떨어지는 방법이라는 거죠.

6자회담을 이끌었던 천영우 전 청와대 수석도 ″북한은 평산과 박천에서 우라늄을 정련해 옐로우 케이크라 불리는 우라늄염(U3O8)까지 제조하는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비료공장에서 굳이 우라늄을 추출할 필요가 없거니와 추출한다 해도 북한의 우라늄 재고량에 큰 변화를 주기는 힘들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마치 사탕수수가 널린 쿠바에서 쥬스를 만들어 설탕을 분리해낸다는 논리와 같다″고 일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들버리 연구소′라는 간판 때문인지 이 뉴스는 주말 내내 포털사이트 앞면에 걸려있었습니다.

인포데믹? 정보 사대주의?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 논란이 ′인포데믹 : 잘못된 정보가 전염병처럼 번지는 현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해외 유력 매체의 보도와 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검증없이 받아쓰는 관행을 두고 ′정보 사대주의′를 반성하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CNN이 처음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보도했던 날, 많은 기자들이 CNN 뉴스의 소스를 궁금해했습니다. 이 날 한 정부 당국자는 ″해외 전문가가 CNN기사에 팩트가 없고 미국정부에 물어도 확인되는 내용이 없다며 전화로 오히려 김위원장의 안위를 묻더라″ 전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가짜뉴스를 보도한 CNN은 사과 한 마디 없이 ″북한 정보는 블랙홀과 같다″고 눙치며 슬쩍 상황을 모면하려는 분위긴데요. 여기에 동조했던 언론과 탈북민 출신 당선인들 모두 단단히 교훈을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가짜 정보에 혼란스러워하며 들썩이는 동안, 평소 해외 언론을 열심히 읽는다는 김정은 위원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본인이 죽은 것 같다는 가짜뉴스에 전세계가 춤추는 걸 보며 흐뭇했을까요, 어쩌면 앞으로 비핵화 협상에 나서면서 어떻게 언론플레이를 해야할 지 힌트를 얻지는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