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나세웅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이 미국 로비액 세계 1위 국가가 됐다고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이 최근 보도했습니다.
2016년 이후 한국의 대미 로비자금이 1억6천551만 달러로 2위 일본(1억5천698만 달러), 3위 이스라엘을(1억1천839만 달러) 제쳤다는 겁니다.
″막대한 자금을 쓰고도 한미 관계는 물론 미·북 관계도 실패한 것으로 판명돼 우리나라가 ′헛돈′ 쓰는 호구가 됐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한국이 미국 로비 세계 1위?
먼저, 보도의 출처는 미국의 비영리 정치 자금 추적 시민단체인 ′책임정치센터(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 홈페이지입니다.
미국에선 이익단체가 정책 과정에 관여하는 ′로비′가 합법입니다. 대신 얼마나 돈을 쓰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반드시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시민단체나 기업 뿐 아니라 외국 정부와 기관도 보고 의무가 있는데, 6개월에 한 번씩 미국 법무부 시스템(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 FARA)으로 등록해야 합니다.
′책임정치센터′는 미국 법무부가 의회에 제출하는 보고서를 분석해서 통계를 냈다고 했습니다.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대미 로비 자금이 급등했다고 지목된 2017년 보고서를 찾아봤습니다.
실제 2017년에 한국 정부와 공공기관은 2016년보다 8배나 많은 금액을 신고한 것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우선 코트라는 상반기에 2천482만4천396달러를, 하반기에는 2천141만787달러를 쓴 것으로 신고했는데요.
″시카고와 워싱턴 DC 등 미국 내 12개 지부에서 미국 기업에게 한국 측을 연결시켜주고 시장조사를 하는 등 한미간 양자 무역을 촉진했다″고 돼 있었습니다.
이 금액이 모두 로비 자금인걸까요?
코트라 측은 ″상식적으로 코트라가 직접 미국 정부를 상대로 로비자금을 쓸 이유가 없다″며 딱 잘라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는 전시회를 할 때 현지 홍보 업체에게 지급한 마케팅 비용, 장비 업체에 지급한 수수료 등이 모두 포함된 일상 활동비라는 것입니다.
황당한 실수도 발견됐습니다.
부동산 임차료, 인건비 같은 경상 운영비는 로비 자금 신고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코트라 실무자는 미국에서 사용한 모든 예산을 총액으로 신고했습니다.
게다가 2012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는 코트라의 미국내 각 지부의 비용을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2017년엔 신고를 합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로비액이 문재인 정부 들어 급등한 것처럼 착시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KBS도 로비기관?
미 법무부 보고서에는 KBS 미주 법인 역시 등장합니다.
2017년 1천368만384.16 달러를 사용했다고 신고했는데, 미국에 위성으로 KBS 뉴스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활동을 벌였다고 돼 있습니다.
역시 우리 생각하는 로비 자금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외교부 역시 이 통계가 잘못됐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정부의 로비 활동하고는 관계없는 공공기관의 운영자금까지 모두 로비자금으로 잘못 신고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워싱턴 로비 회사 쓰는 건 개발도상국 방식일까?
조선일보는 로비 자금이 급증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로펌이나 컨설팅 회사에 돈을 주고 로비를 맡기는 것은 돈 낭비일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개발 도상국이나 사용하는 가장 초보적인 기법″이라고 비판했는데요.
그러나, 일본은 유명 로펌인 에이킨 검프를 써서 미국의 무역 투자 정책 결정 과정에 로비를 했다고 보고 했습니다.
또 홍보회사 BCW에는 외교 사안을 다루는 의회와 행정부 인사들에 대한 ′대관′ 업무를 맡겼습니다.
일본의 경우 로비를 맡기는 주체도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미 일본 대사관은 물론 본국의 총리관저, 오사카와 후쿠오카 시정부까지 미국 홍보회사를 고용해 공공외교에 나섭니다.
독일 역시 주독 미군시설과 관련해 로비 회사를 쓴 것으로 최근 보고했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나라들이 로비 회사를 고용해 통상과 무역 등 자국의 이익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미국 정책 결정 과정에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로비 회사들이 몰려 있다는 백악관 근처 K스트리트가 아직도 건재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