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김준석
코로나 감염 공포에 노출된 노동자들
지난 3월 말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역.
역 중앙홀에서 근무중이던 47살 벨리 무징가 씨에게 한 남성이 다가왔습니다.
이 남성은 왜 여기 서 있느냐고 물었고, 무징가씨는 일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 남성은 ″나는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이라고 말하더니 침을 뱉고 사라졌습니다.
무징가 씨와 함께 근무중이던 동료는 마스크는 물론 당시 아무런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고, 며칠 뒤 두 사람 모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호흡기 관련 기저질환이 있던 무징가 씨는 며칠 뒤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무징가씨의 남편은 ″아내는 좋은 사람, 좋은 어머니, 그리고 좋은 아내였다. 배려심이 많아서 (일하던 중에도) 모든 사람을 돌보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징가 씨의 사촌은 철도 당국의 처사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무징가는 평소 근무하는 매표소가 안전하다고 믿었다″면서 ″철도 당국이 무징가를 아무런 장비 없이 중앙 홀에서 일하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무징가 씨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됐고, 결국 보리스 존슨 총리까지 나서 유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사망한 무징가 씨가 일하는 동안 벌어진 일은 너무나 끔직한 일입니다. 정부와 의회는 무징가 씨의 가족과 함께 할 것입니다.″
영국 경찰은 이제서야 전담 수사단을 꾸리고 무징가 씨에게 침을 뱉고 달아난 남성 검거에 나섰습니다.
영국, 보건의료 노동자들조차도 마스크 부족
무징가 씨의 사망과 관련해 영국 운송노동조합(TSSA)은 ″호흡기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코로나19에 매우 취약하다″면서 ″이런 사람들은 집에서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당국이 무징가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면서도 늑장대처를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런던교통공사, TfL (Transport for London) 소속 노동자 42명과 철도 역무원 10명이 코로나19로 숨졌습니다.
영국에서는 코로나 최전선에서 일하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조차 보호장비가 없어 코로나19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10년 전에 제조된 마스크를 쓰거나 쓰레기봉투와 스키 고글을 쓰고 일하는 경우까지 목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BBC는 지난달 말 영국정부가 코로나 유행에 대비해 안면 보호구를 포함한 개인보호장비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2009년 당시 개인보호장비 비축시 재난대응장비세트에 필수품목이 포함되지 않아 부족한 장비를 구매해야 한다는 경고를 정부가 무시했다고 BBC는 지적했습니다.
출근 재개 노동자들 안전 보장안 내놔야
영국 정부는 경재 재개를 앞두고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사업장은 사회적 거리를 유지를 위한 안정 장비를 마련해야 하고, 고용주는 안전한 노동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수준의 내용에 불과해 노동자들의 불안감을 떨쳐내지는 못했습니다.
영국노동조합회의는 ″영국정부가 노동자들의 안전보장 방안을 내놓지 않은 채 일터 복귀를 강요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조합측은 ″경제 활동 재개를 원한다면 정부는 모든 사람을 위한 충분한 개인보호장치를 마련하고, 고용주가 무시할 수 없는 규정을 만들라″고 요구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출퇴근을 책임져야 하는 운송노동조합 역시 ″운송노동자들을 총알받이로 만들었다″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경제 재개 조치는 단계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영국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내세웠던 ′집에 머물라(Stay at Home)′던 슬로건도 ′경계를 유지하라(Stay alert)′로 변경하면서 경제 재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공포의 출근길 될 것…시민들 ″걱정″
영국 정부는 수요일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22만 9천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3만 3천명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가디언지는 사망자가 공식집계보다 더 많은 4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상황은 이렇지만 경제는 재개되기 시작했고 영국의 지하철과 버스는 출근하는 통근자들로 다시 붐비고 있습니다.
그러나 출근을 해야 하는 시민들은 불안한 마음을 호소합니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런던의 통근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신뢰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마스크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거리 유지를 할 수가 없습니다.″
″기차에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하지만 누가 바이러스를 지닌채 기차에 탑승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