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6-03 15:20 수정 | 2020-06-03 15:21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미국 내 시위가 격화되면서, 곳곳에서 상점 약탈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주요 도시에서 야간 통금이라는 이례적인 조치가 내려졌지만 피해를 막을 순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 교민들이 운영하는 상점들도 약탈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3일 오전 9시 기준) 99건의 피해가 접수됐습니다.
대낮 약탈에도 속수무책…″CCTV로 지켜볼 수 밖에 없어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박경식 씨.
평소처럼 가게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데, 갑자기 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나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고 말합니다.
″매장에 손님이 있어서, 손님하고 일하는 친구들을 다 내보냈어요. 문을 닫고 혹시나 싶어서 한두 시간 지켜봤죠. 차량이 100여 대 넘게 오더라고요″
경찰이 순찰을 돌면서 감시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한 무리의 군중들이 경찰이 나타나면 사라졌다가 경찰이 자리를 뜨면 다시 나타나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점점 더 많은 차와 사람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박 씨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가게 밖으로 일단 피신했습니다.
″집에 와서 웹캠으로 가게 상황을 지켜봤어요. 8시 30분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물건)들고 나가고. 밤 12시쯤 뉴스에 바로 옆 가게에 불이 난 게 나오더라고요″
CCTV로 약탈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면서도 박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가게에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갔습니다. 흑인이 많았지만 백인도 합세했습니다. 태연하게 물건을 고르며 서로 낄낄대는 백인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친구, 뭐하고 있어?″
″지금 쇼핑하고 있지. 그러는 넌 뭐하는데?″
결국 박씨의 가게는 깨끗이 털렸습니다.
박 씨의 옷가게 인근에서 30여 년 힙합 패션 상점을 운영해 온 김원겸 씨는 창고까지 털렸습니다.
일군의 무리가 옷과 신발 등 팔아야 할 물건이 쌓여있던 창고까지 싹쓸이 해 간 겁니다.
새벽엔 누군가 불까지 질렀습니다. 김씨의 가게는 기둥만 남고 모두 전소됐습니다. 미국에서 평생 일군 삶의 터전이 일순간에 사라졌습니다.
″하루 아침에 30년 터전 잿더미″
김 씨는 피해 상황을 묻는 기자에게 ″물건 다 털리고 가게 전소되고, 그 정도″라며 애써 덤덤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약탈이 밤에 일어난 게 아니고 한낮에 그랬어요. 낮 12시 반에 와서 저녁 9시까지 가져갔어요. 그러고 나서 새벽에 불을 질러서 아침에 나갔더니 완전히 기둥만 남고 내려 앉았더라고요.″
김 씨는 아내가 계속 눈물을 흘려서 달래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있어 재기는 어렵고 은퇴해야 할 것 같다″며 씁쓸해했습니다.
경찰 ″도와줄 수 없어…빨리 도망가라″
약탈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경찰의 보호를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시위 진압에 모두 동원돼 경찰이 올 수도 없다고 합니다.
한 미용용품 상점 주인은 약탈꾼들이 몰려오자 경찰에 신고했는데, ″너도 빨리 도망가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흑인 상대 영업하는 미용용품점 집중 공격
7만 명의 교민이 있는 필라델피아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50여 곳이 약탈 피해를 입은 것으로 신고됐습니다. 치안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방위군이 투입됐지만 한인 상권 밀집 지역에는 배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흑인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미용용품점들의 피해가 컸습니다. 아예 차량을 몰고와서 상자째 물건을 싣고 가는 일이 속출했습니다.
샤론 황 필라델피아 한인회장은 ″통행 금지가 무색하게 약탈이 되고 있다″면서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라고 현지 사정을 전했습니다.
한인 피해 현지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인 상점들의 피해가 현지 언론에 소개 되기도 했습니다. CBS 시카고는 1980년대 시카고로 이민와 의류 상점을 운영하는 김학동 씨의 약탈 피해를 보도했습니다.
′시티 패션′이라는 의류 상점을 운영하는 김 씨는 ″20~30명이 몰려와서 약탈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1992년 LA 폭동의 직격탄을 맞았던 LA 한인들은 더 불안한 심정입니다.
LA에서는 휴대전화 매장과 주류 매장 등 5곳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주류 매장을 운영하는 서승관 씨는 아침에 출근해보니 가게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고 피해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28년 전 LA폭동 당시, 자경단을 꾸려 총을 들고 가게를 지켜야 했던 기억이 자꾸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거 우리 다시 경계 근무를 서야 하냐, 옛날처럼. 지붕 위에 올라가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0년 소환 된 ′루프 코리안′
1992년 LA 폭동 당시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한 한인들이 지붕 위로 올라가 자기 방어에 나섰습니다.
서승관씨의 인터뷰 내용은 바로 그 때 상황을 설명한 겁니다.
그런데 최근 SNS에 ′루프 코리안′이란 제목으로 당시의 사진들과 함께 관련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지금 미니애폴리스에 루프 코리안이 필요하다며 마치 한국 교민들을 마치 폭력 시위대에 맞서는 용병쯤으로 여기는 내용들입니다.
이런 SNS 글들이 자칫 또 다른 인종차별로 번지지는 아닐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LA 한인타운엔 장갑차와 군대 투입
그나마 다행인 건 1992년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했던 상황과 달리 LA 한인 타운에는 주 방위군 수십 명이 장갑차와 함께 배치됐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순 없습니다.
로라 전 LA 한인 회장은 ″심리적으론 조금 안정이 됐지만, 또 한편으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걱정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얼마나 더 상황이 지속될 지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했습니다.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지지 움직임도
다른 한편에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에 지지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애틀랜타에선 선교 단체가 시위대에게 간식을 나눠주면서 지지를 표시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단체는 ″시위가 시작된 이유에 공감하는 한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LA 교민들도 평화적인 시위에는 공감을 표하고 일부 참여하고 있습니다.
LA에 20여 년 거주해온 김미라 씨는 ″인종차별에 문제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번에는 ′우리가 인종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구나′라고 느끼고 있다″며 ″히스패닉은 히스패닉대로 아시안은 아시안대로 (공감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쪼록 이런 교민 사회의 우려와 지혜, 경험들이 한데 모여 이번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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