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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Now] 산에서 WiFi 찾는 아이들, 자전거에 칠판 싣고 달리는 교사

입력 | 2020-06-20 09:01   수정 | 2020-06-20 09:51
학교 대신 하루 두 번 산에 가는 아이들

페루 수도 리마의 외곽지역.

초등학교 나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계단 하나 없는 흙언덕을 줄지어 오릅니다.

저마다 손에는 노트가 한 권씩 들려있습니다.

어느 정도 올라왔다 싶은지, 아이들이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하늘 높이 치켜듭니다.

인터넷 연결이 되는 곳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등산을 하게 된 건 지난 3월부터 진행된 온라인 수업 때문입니다.

″언덕 아래서는 신호가 잡히지 않아요. 우리는 숙제를 보내고 다운받기 위해 언덕에 올라와요.″ (마리아 타파라, 학생)

집 안에서는 인터넷 연결이 안 돼 숙제를 다운 받을 때 한 번, 숙제를 다 하고 올릴 때 한 번, 이렇게 하루에 두 차례씩 인터넷이 되는 곳을 찾아 산을 올라야 한다는 얘깁니다.

현재 페루에서는 80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고 있지만, 이중 39%만이 인터넷 연결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전거는 칠판을 싣고

볼리비아에서도 매일 산을 오르는 이가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굽이진 산길을 내달리는 한 남자.

자전거에 묶은 수레엔 흰 칠판이 실려있습니다.

수레까지 매달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이 남자는 학교 선생님입니다.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자, 자신의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마을에서 마을로,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겁니다.

자전거를 멈춰 세우는 곳은 어디든 교실이 되고, 책상과 의자만 있다면 야외도 훌륭한 교실이 됩니다.

길가에 쭈그려 앉아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도 허다합니다.

″여기 가족들은 교육을 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해요. 인터넷에 접속할 수도 없고, 왓츠앱에 접속할 수 있는 휴대전화도 없지요. 만약 그들이 이런 것들을 갖고 있다고 해도,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숙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설명해 줄 수 없어요.″ (윌프레도 네그레테, 교사)

볼리비아의 학생들은 코로나19로 벌써 두달 넘게 수업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교육이 전부이다 보니, 부모의 교육격차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이어집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겠어요? (칸데랄리아 바예요스, 학부모)

오늘도 아이의 아버지는 ′길거리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옆에서 차를 수리하고, 엄마는 한 뼘 물러서 이 광경을 지켜봅니다.

이렇게라도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건 자전거를 타고 방문 교육에 나선 선생님 덕분입니다.
전세계 90% 학생 등교 못 해…교육불평등 심화

유네스코에 따르면, 전세계 190개 국에서 약 16억 명의 학생들이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세계 교육기관에 등록된 학생 중 90%가 넘는 학생들이 몇 달 동안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이번 봄학기의 모든 교육과정을 온라인 원격수업으로 전환했는데요.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 앤 컴퍼니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온라인 수업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것보다 학습 효과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온라인 수업조차 의무교육으로 제공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미국 28개 주에서 초중고 학생들의 52%만, 온라인 수업이 의무 교육입니다.

결국 48퍼센트의 미국 학생들은 학교가 다시 문을 열때까지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온라인 수업이 의무인 주에서도 상당수의 학생들이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고서는 만약 2021년 1월까지 학교가 문을 열지 않을 경우 평균적인 원격 교육을 받은 학생은 3~4개월, 이보다 낮은 질의 원격 교육을 받은 학생은 7~11개월,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하면 12~14개월의 학습 손실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빈곤층 가정의 교육 격차 더욱 벌어져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부유층과 빈곤층 가정의 교육 성취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온라인 원격수업의 성패는 좋은 컴퓨터와 인터넷 연결, 공부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에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또 아이들의 학습을 도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교육을 받았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부모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가정에 격리된 상태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 영향은 단기간에 그치지 않는다는게 더 큰 문제입니다.

BBC는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인지능력과 감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사회성 발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무엇보다 교육격차는 미래의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일자리를 잃은 사람 중에는 교육을 적게 받은 노동자들이 더 많았는데요.

미국의 5월 전체 실업률은 13.3%였는데, 고졸 노동자의 실업률은 15.3%였고, 대졸자의 경우는 7.4%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환경이 그나마 좋은 편인데도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원격 수업과 등교 수업을 병행하느라 매일매일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조부모들이 아이를 돌보는 경우나 한부모, 맞벌이 부모의 경우 어린 아이들 스스로 온라인 수업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 학교가 문제냐며 몇달, 아니 1년 쯤 공부 안해도 괜찮다고 넘겨버리기엔 지금 이 시간의 학습 손실이 어쩌면 아이들의 평생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 매일 산을 오르는 아이들의 열정과 집집마다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선생님의 열정만큼 지금 우리는 코로나 시대 교육불평등, 교육격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