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진욱

[알려줘! 경제] 행운도 갈취하나…'로또 1등 당첨자'의 황당 사연

입력 | 2021-05-28 15:56   수정 | 2021-06-15 15:41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1. 보고도 믿기지 않는 제보</strong>

27일 새벽 1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로또 1등 당첨금을 찾기 위해 서울 서대문에 있는 농협 본점에 갔는데, 농협 직원이 비밀번호를 구두로 불러달라고 했고 그저 당연히 받아야 할 당첨금을 받는데 은행에서 금융 상품 가입을 집요하게 요구했다는 것이죠.

첫 번째는 제보자가 로또 1등 당첨자였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로또 1등 당첨자가 당첨금을 받는 과정에서 겪은 황당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날이 밝은 뒤 제보자를 만나러 갔습니다.

취재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로또 1등 당첨자를 직접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2. 만기 1개월, 29억원의 적금 통장</strong>

드디어 제보자를 만났습니다.

진짜 로또 1등 당첨자인지 확인부터 했습니다. 제보자는 로또 1등 당첨의 증거인 통장을 보여줬습니다.

열었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통장 숫자, 29억 원이 찍혀있더군요. 당첨금 43억 원에 세금을 뗀 금액입니다.
문제는 다음입니다.

제보자가 보여주는 또 다른 통장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적금 금액 29억원, 만기는 1개월입니다.

당첨금을 찾으러 갔다가, 직원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개설해야 했던 적금 통장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29억원을 받게 된 제보자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통장을 만들어야 했을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제보자는 조용히 가서 당첨금을 찾아오고 싶었습니다.

당연합니다.

갑작스레 큰 돈이 생긴 게 기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과 귀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당첨금 수령은 무려 3시간이 걸렸습니다.

1등 당첨금은 반드시 NH농협은행 서대문 본점에서만 찾을 수 있고, 그 곳의 3층에는 로또 1등 당첨금을 지급하는 전용 창구가 있습니다.

전용창구라 함은 특정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졌을텐데요.

제보자는 이 곳에서 2시간을 기다렸고, 당첨금을 받는데 또 1시간을 허비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3 행운을 갈취하는 자들은 누구인가</strong>

대체 이렇게 시간이 걸린 이유가 뭘까요?

제보자에 따르면 농협은행 직원은 처음에 5억 원짜리 보험 상품 가입을 요구했습니다.

가입할 때 1억 원이 넘는 돈을 내고, 매달 천만 원이 넘는 보험료를 3년간 내야 하는 상품입니다.

해당 보험 설명서를 봤는데, 그렇게 비싼 보험 상품이 있다는 걸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국내 한 대형 보험회사의 상품이었던 것이죠.

보험 자체에 가입할 생각이 없었고, 더더욱 이렇게 비싼 보험을 들이미는 농협 직원을 보고 제보자는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제보자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농협 직원은 숨김없이 그대로 불쾌한 내색을 보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사에는 다루지 않았지만, 이 보험 상품은 농협 상품이 아니었습니다.

국내 한 대형 보험 회사의 상품이었던 것이죠.

농협은행은 다른 금융 기관들과 연합해 로또 당첨자를 상대로 자신들의 금융 상품, 혹은 다른 금융 회사의 상품을 대신 팔아주는 일을 했었다고밖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설마 아무 돈도 받지 않고, 다른 금융 회사들을 위해 이런 수고를 한 건 아닐 겁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4 NH농협은행이 로또 당첨자를 대하는 방식</strong>

제보자는 말했습니다.

제보자가 당첨금을 받기 전, 또 다른 1등 당첨자 2명이 있었는데 이분들도 당첨금을 받는데 2시간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농협은행은 당첨자에게 당첨금만 지급하면 되는데, 1명당 1시간씩 붙들고 앉아서 대체 무엇을 한 걸까요?

NH농협은행은 복권 기업인 ′동행복권′의 의뢰를 받아 당첨자들에게 당첨금을 지급하는 업무를 합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습니다.

그런데도 당첨자를 상대로 이런 영업을 해서 추가로 돈을 버는 게 과연 정당한 일일까요?

농협은행이 로또에 당첨된 건가요?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5 농협은행 ″고객 자산관리 서비스 차원″</strong>

농협은행에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답변이 황당합니다.

원래 당첨자를 상대로 돈을 어떻게 관리할지 자산 상담을 해주는데, 제보자를 상대한 은행 직원이 과잉친절을 베풀었다고 하더군요.

그랬습니다.

농협은행은 모든 당첨자에게 ′서비스′라는 이름 아래 금융 상품 영업을 해왔다고 스스로 밝힌 겁니다.

그리고 긴장된 상태로 당첨금을 찾으러 온 당첨자들, 외부 노출을 꺼리는 그들의 심리 상태를 악용해 상식 밖의 영업을 해왔던 것이죠.

진정한 서비스는 당첨자들이 자신들에게 찾아온 행운을 안전하게 들고 갈 수 있게 배려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이번 사건 때 제보자는 농협은행 직원 때문에 당시 농협은행에 방문했던 사람들에게 당첨자라는 신분이 노출되는 상황까지 처했습니다.

농협은행 직원이 사람들이 다 있는 곳에서 마치 들으라는 듯 제보자에게 로또 당첨 여부를 물었기 때문이죠.

농협은행에 있어 로또 당첨자는 배려해야 할 상대가 아닌 그저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던 겁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6 제보자에게 감사드립니다.</strong>

로또 1등에 당첨된다는 것 자체가 아주 드문 일인 만큼, 제보자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이번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을 겁니다.

외부 노출을 꺼리고, 어쩌면 꺼리는 게 당연한 로또 1등 당첨자의 특성을 악용한 농협은행의 영업 행위는 계속됐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기사에는 쓰지 못했지만, 이 부분을 궁금해하는 댓글이 많아 제보자가 밝힌 1등 당첨 노하우를 아주 잠깐 소개드립니다.

(물론 아래의 사항들이 실제 당첨 확률을 높인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제보자는 ″반드시 1등에 당첨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15년간 로또를 샀습니다.

번호는 자동이 아닌 수동으로 직접 입력했다고 합니다.

취재가 끝난 뒤 제보자와 악수를 하고 헤어졌는데요.

회사에 돌아와 취재내용과 함께 로또 1등 당첨자의 통장을 제 손으로 직접 만져본 소감을 말했습니다.

갑자기 선배가 제 손을 덥석 잡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