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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타는 중국, '반도체 비리' 사정 본격화

입력 | 2022-10-03 10:01   수정 | 2022-10-03 10:01
중국의 사정당국은 최근 반도체 관련 비리를 다잡고 있습니다.

중국 매체들은 지난달(9월) 26일, 라이온펀드의 총책임자가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라이온펀드는 2003년 12월 설립된 공적자금관리회사입니다. 지난해 말 운용 자금 규모가 327억 위안(약 6조5천억 원)이고, 대부분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투입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서 지난달 16일,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국가감찰위원회(기율·감찰위)는 화신투자관리의 런카이 부총재를 심각한 기율·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심각한 기율·법률 위반’은 통상 무거운 부패 혐의를 뜻합니다. 화신은 3천400억 위안(약 68조 원) 규모의 국가 반도체 펀드를 운용하는 국유기업입니다.

런카이는 화신투자관리의 서열 3위 간부로, 국유은행인 중국 국가개발은행 부총재와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의 비상임 이사도 겸직하고 있습니다.

기율·감찰위는 지난 8월에도 화신투자관리의 류양 총경리 등 국가 반도체펀드의 전현직 고위직 인사들을 줄줄이 조사했습니다.

중국의 ‘반도체 비리’ 사정은 자금 분야에서 끝나진 않았습니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주무 장관인 샤오야칭 공업정보화부장은 비위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지난 7월 낙마했습니다. 국가가 거액을 투입한 반도체 산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낙마 이유라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중국, 미국에 맞서 ‘반도체 굴기’ 재정비></b>

반도체 관련 펀드와 정부 조직에 대한 사정이 동시다발로 이뤄지면서, 중국이 자금 운용과 조직, 반도체 산업의 두 기둥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중국으로선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 시대, 중국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날로 거세지는 미국의 견제에 맞서야 하는데, 기술 경쟁의 시금석인 반도체에서 밀리고 있어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그럼 미국 vs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은 어떨까.

“미국은 반도체의 설계와 생산을 함께 수행하는 종합반도체 기업과 팹리스(설계전문기업)를 중심으로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비교적 빠른 성장세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공급 비중이 작고 눈에 띄는 기업도 매우 드물다. 중국을 대표하는 SMIC의 2019년 매출은 31억 달러로 미국 Intel의 4.3%에 불과했다.” (한국 산업연구원 보고서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우리의 대응 전략> 2021. 10. 15)

한마디로 고성능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은 아직 미국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겁니다.
<b style=″font-family:none;″><미국, AI칩 중국 수출 금지..반도체 굴기 봉쇄></b>

미국 상무부는 지난 8월 26일, 미국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와 AMD에 인공지능(AI)용 최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중단하라고 통보했습니다. 해당 반도체는 머신러닝 등에 필수 부품입니다.

엔비디아는 슈퍼컴퓨팅과 인공지능에 사용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반도체 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아직 개발 초기 단계입니다. 중국 전문가들도 “중국 제품은 AI 분야에서 엔비디아 반도체를 대체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미국산 반도체가 없으면 중국 기업들은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타격을 받습니다. 특히 수많은 이미지와 음성 인식 같은 빅데이터 처리 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스마트 자동차 같은 인공지능 적용 분야에서도 연쇄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엔비디아도 타격을 입습니다. 엔비디아는 중국에서 이미 해당 반도체 4억 달러(약 5천700억 원)어치를 수주했는데, 그만큼 매출 손실이 예상됩니다. 엔비디아가 만일 중국 시장을 잃으면 장기적 손실이 매출의 10%에 달할 거란 전망도 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중국의 꿈, 반도체 굴기 기로에></b>

미국은 반도체 제품 뿐만 아니라 제조 장비의 중국 수출도 통제하고 있습니다.

미국 상무부는 올해 초부터 첨단 반도체를 제조하는 미국산 장비를 중국에 팔지 못하도록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도체 제품과 장비 양쪽에서 중국을 봉쇄하는 겁니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 취임 후 2015년부터 기술 강국 계획을 실행했습니다. 시진핑 시대 중국의 꿈, 중국몽. 중국은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구호와 함께 ‘중국제조 2025’를 추진해 왔습니다.

‘중국제조 2025’는 반도체, 로봇, 전기차 등 10대 핵심 산업을 30년에 걸쳐 육성해, 궁극적으로 미국을 따라잡는다는 국가 주도 산업 고도화 전략입니다. 그 1단계가 2015~2025년입니다.

미국은 대내적으로 반도체 지원법 ‘칩스 포 아메리카(CHIPS for America Act)’로 자국 내 반도체 제조업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론 이른바 ‘칩4 동맹’(한국·미국·일본·대만)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반도체 제품, 제조 장비, 글로벌 공급망 등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을 고립시켜 기술 추격을 막으려 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미국산 고성능 반도체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면서, 중국 군사용으로 쓰일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도체가 미국이 중국에 대한 우위를 유지하는 경제안보의 핵심이라고 본 겁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기술 우위를 이용해 개발도상국을 탄압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 반도체 전략의 핵심을 이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영원히 산업망의 하단에 묶어두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