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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건
빼꼼히 문 열더니 상자만 '툭'‥소방서 찾아온 '풀빵 천사'
입력 | 2023-02-23 16:40 수정 | 2023-02-2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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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저녁 7시 반쯤.
모자를 눌러쓴 노부부가 웬 종이상자를 들고 원주소방서를 찾아왔습니다.
빼꼼히 당직실 문을 연 노부부는 이 상자를 놓더니 곧바로 나가버렸습니다.
기름때가 잔뜩 묻어 있는 흰 상자엔 꼬깃꼬깃한 첫 원짜리와 오천 원짜리 지폐가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김현준 소방관/원주소방서]
″상자에 돈이 든 것을 발견하고 쫓아가서 안 받으려고 이렇게 잡았는데 ′이게 웬 돈이냐′ 여쭤보니까…″
노부부는 쫓아간 소방관들의 손을 뿌리치고 ″소방관들에게 보탬이 되기 바란다″면서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이 상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여러 사람들의 손글씨가 써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소방 파이팅″ ″다치지 말고 조심히 일하세요″라며 응원을 전하는 메시지들이었습니다.
상자에 든 돈은 모두 570여만 원이었습니다.
사실 이 노부부는 올해 처음 소방서를 찾아온 게 아닙니다.
지난 2015년부터 해마다 찾아와 9년간 기부금 2천8백여 만 원을 전달했습니다.
끝까지 자신들이 누군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한 노부부는 단지 원주 시내에서 풀빵 노점을 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려졌습니다.
[김현준 소방관/원주소방서]
″익명을 꼭 당부하셨거든요. 매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선행으로 남길 바란다고, 이 기부금이 좋은 곳에 쓰이길 희망한다고 이렇게…″
그래서 소방관들은 이 노부부를 ′풀빵 천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원주소방서는 이 익명의 독지가가 전달한 기부금으로 그동안 취약계층에 소방시설을 보급하고,
순직하거나 일하다 다친 소방관들을 위한 특별위로금을 주는 데 써왔습니다.
[김현준 소방관/원주소방서]
″저희의 노고를 알아주신 것만으로 감사한데 이렇게 또 선행을 베푸시니까 저희들도 더욱 열심히… 항상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주소방서는 ″추운 겨울에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훈훈한 마음을 느꼈다″며 ″기부자의 격려에 부응하기 위해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데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