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PD수첩팀

[PD수첩] 10번의 법적절차, 학교를 떠나지 않는 학교폭력 가해자

입력 | 2023-03-21 22:40   수정 | 2023-03-21 22:40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전학처분 취소를 위해 10번의 법적절차 진행‥대법원까지 간 경우는 이례적
- 11개월 간 학교를 떠나지 않은 학교폭력 가해자, 피해자는 우울증상에 자살사고까지 동반‥</strong>

21일 밤 PD수첩 <검사아빠 정순신과 학교폭력>에서는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 폭력 사건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정순신 변호사는 국가수사본부의 본부장으로 임명되었으나, 28시간 만에 자진 사퇴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들이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다닐 때 저질러온 학교 폭력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인 정군과 같은 학교 졸업생들의 증언을 기반으로 아직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정군의 행적을 추적했다.
정군은 피해 학생 A군을 1학년 초부터 괴롭힌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군은 A군에게 ‘빨갱이 XX’, ‘넌 돼지라 냄새가 난다’, ‘더러우니까 꺼져라’와 같은 폭언을 계속해서 내뱉으며, 후배들 앞에서 A군을 무시하거나, 동아리에서 퇴출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모욕을 가했다.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정군과 A군에 대해 알고 있는 같은 학교 졸업생을 만나볼 수 있었다. 당시 피해 학생에게 도움을 주지 못해 죄책감을 느꼈던 이동우(가명)씨는 이번 일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동우씨는 피해 학생 A군에 대해 ″처음에는 말을 잘 받아주는 좋은 친구였는데, 언제부터는 지속적으로 말이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다른 졸업생 강준호(가명)씨는 ″정군과 A군은 같은 기숙사 방을 쓰면서 처음에는 친한 사이였지만, 언제부터는 싸우는 경우가 많아졌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졸업생 임정민(가명)씨는 함께 정치동아리를 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취재 과정에서 총 117장의 학교폭력심의위원회 회의록과 판결문을 입수했다. 2018년 3월, A군이 학교폭력 피해를 신고한 이후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A군은 1학년 5월경부터 정군이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중 하나는, 식사시간이 되어 A군이 급식실에 밥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정군은 A군에게 ″왜 돼지XX가 인간이 밥 먹는 곳에 오냐? 너는 사료나 먹어야지. 구제역 걸리기 전에 꺼져″라고 말하는 등 무시하기 일쑤였다고 했다. 학교의 사안조사보고서에는 정군이 A군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발언을 수차례 했다는 친구들의 증언을 확인할 수 있었다. A군의 피해 진술에 대해 정군은 ″작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말실수를 하면 제가 크게 창피를 주고, 많이 먹으면 놀리기도 했습니다″라고 밝히며, 친구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민사고 학교폭력심의위원회 회의에는 정군의 아버지인 정순신 변호사도 참석했다. 당시 정순신 변호사는 서울 중앙지검의 현직 검사였으며, 회의에서 아들의 행동이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입학 당시 상위 30%였던 A군의 내신 성적은 학사경고를 받을 정도로 떨어졌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또한, A군을 진단한 담당 의사는 A군의 상태가 불안하며 우울증상과 자살사고가 동반되어 집중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는 정군에게 퇴학 직전 징계단계인 강제 전학 조치를 내렸다. 2개월 후, 정군의 부모는 전학을 취소해 달라고 강원도 교육청에 재심을 신청했다. 이날 A군은 회의에 참석하여 피해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진술을 해야 했다. 그런데 정작 재심을 신청한 정군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정순신 변호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판사 출신인 송모 변호사가 회의에 참석했다. 최종적으로 강원도학생징계조정위원회는 정군의 전학 조치를 취소시켰다.
정군이 전학을 가지 않게 된 이후, 피해 학생인 A군은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고 밝혔다. A군은 당시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저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 정군이 변호사를 선임해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우긴다는 것, 애들이 그걸 듣고 웃고 떠들면서 저는 정말 악마 같았어요.″
A군의 부모는 강원도 학교폭력심의위원회에 다시 재심을 요청했으며, 학교폭력심의위원회에서는 정군의 강제전학 조치를 확정했다. 그러자 정군의 부모는 전학을 가는 대신 여러 번의 법적 절차를 밟았다. 법원에는 전학처분 등 결정에 대한 집행정지와 이를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국민권익위원회에도 전학처분에 대한 집행정지와 행정심판을 신청하기도 했다. 결국 최종심이 대법원으로 간 끝에 전학조치 처분이 맞다는 최종 판결을 받았다. 정군의 전학조치를 취소하기 위해 밟았던 법적 절차는 총 10차례였다. 제작진은 정순신 변호사의 입장을 어렵게 들을 수 있었다. 정 변호사는 ″제 자식 입장만 생각한 어리석은 부모의 마음으로 인해 행정쟁송 절차를 진행했던 부분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으며, 피해 학생과 그 가족 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라고 밝혔다.
최종적으로 정군은 3학년을 앞둔 2학년 말, 반포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학교폭력징계를 받은 정군이 정시로 서울대에 입학한 사실이 공정하게 처리된 결과인지 논란이 일었다.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학교폭력 징계 기록이 졸업 후 2년까지는 남아있어야 하지만, 정군은 졸업과 동시에 삭제가 되었다. 이는 정군의 부모가 학교폭력 기록 삭제 심의를 신청한 것이었다. 지난 3월 9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는 정군의 징계기록 삭제를 심의한 회의록과 위원명단을 공개할 수 없다는 반포고 교장에게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다. 또한, 서울대에 입학한 정군에게 몇 점의 감점 조치를 취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검찰 출신이 경찰 수사의 총책임자가 된다는 것부터 논란이 있던 상황에서, 아들의 학교폭력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부실을 비판하는 여론이 더욱 거세졌다.
취재 중, 민족사관고등학교의 한 졸업생이 PD수첩에 익명으로 편지를 보냈다. ″네가 A군에게 저지른 일은 너 스스로의 잘못만이 아니라, 죽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할 정도의 고통을 겪은 친구를 돕지 못한, 우리들마저 침묵이라는 죄에 빠뜨린 일이었다.″ 학교폭력의 진정한 해결책은 무엇보다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고, 폭력이 발생했다면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이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